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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읍참마속’한 블레어, 속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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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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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청탁 문제로 사임한 만델슨 북아일랜드 장관… ‘이념적 동지’ 잃은 블레어의 고민

사진/인도인 국적 신청 상황을 문의한 일 때문에 중도하차한 만델슨 전 북아일랜드 장관. 그는 블레어의 이념적 동지였다.(SYGMA)
영국 노동당 정권의 실세가 한 인도인의 영국국적 신청 상황을 이민국에 전화로 문의한 일 때문에 장관직에서 쫓겨나고 정치생명까지 끊길 처지에 놓였다. 문제의 정치인은 피터 만델슨 전 북아일랜드 장관.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를 수렁으로 몰아넣은 인도인은 현 노동당 정부 인사들과 매우 친밀한 사이인 부호 스리찬드 힌두자. 노동당이 새 천년을 맞아 야심차게 추진한 밀레니엄 돔에 100만파운드를 기부했던 사람이다.

노동당 내 권력투쟁으로 확대

1998년 중반 피터 만델슨 당시 통상산업 장관은 힌두자의 부탁을 받고 이민국을 총괄하는 오브라이언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힌두자의 국적 신청 처리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문의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더이상의 문의나 압력은 없었다. 그런데 2년 반이 지난 올 1월20일 <옵서버>는 만델슨 장관에게 그 당시 상황을 문의하였다. 만델슨 장관은 그 일을 통상적인 다른 민원과 똑같이 하급 실무자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간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블레어 총리관저에도 똑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이민국의 전화기록에서 만델슨과 오브라이언의 전화통화 기록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러자 만델슨은 오브라이언과의 전화통화를 시인하면서도 그것은 압력이 아닌 통상적인 문의였다고 해명했다.


노동당 안팎에서 만델슨과 그를 감싸고 도는 총리관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1월23일 총리관저의 알라스테어 캠벨 대변인은 기자들 앞에서 만델슨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이것은 만델슨을 버린다는 의사표시였다. 수요일 아침 총리관저를 찾은 만델슨 장관은 블레어 총리와 1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눈 뒤 북아일랜드 장관직 사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건의 끝은 아니었다. 만델슨은 그 주말 <더 타임스> 일요판에서 자신은 결백하며, 자신이 결백함을 증명할 시간도 없이 노동당 내부에서 사임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같은 일요일 저녁 잭 스트로 내무장관은 한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이 터지기 전 자신이 직접 만델슨에게 2년 반 전의 일을 상기시켰음을 밝히고, 기억을 잘 못해 언론에 초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만델슨의 주장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만델슨이 ‘정말로’ 힌두자의 민원을 하급 실무자에게 넘겼으며 전화는 매우 통상적인 것이었다는 실무자의 증언이 노동당 내부 조사과정에서 무시됐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은 노동당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점차 성격이 변질되고 있다.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튀어나온 만델슨 스캔들은 만델슨이 현재의 노동당에 어떤 존재였던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결코 간단한 사건이 아니다.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젊고 잘생긴 이 정치인은 미래의 총리 후보로 꼽혀 왔다. 1980년대 중반, 당시 야당이었던 노동당의 언론담당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그는 항상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돼 왔다. 만델슨은 패배의식과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는 노동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결단코 개혁밖에 없다는 소신 아래 당시 블레어 의원과 의기투합해 노동당 내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노동당(New Labour)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새노동당의 이념이 전통적인 노동조합 중심의 노동당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는 노동당 내부 이념 투쟁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1994년 존 스미스 당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새 당수를 뽑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당시 노동당의 언론담당이었던 그는 공개석상에서 블레어 의원이 유력한 당수 후보라고 말함으로써 블레어와 각축전을 벌이던 고든 브라운 현 재무장관에게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적이 되었다.

총선이 두려워지는 블레어

만델슨은 노동당이 지금보다 더한 우경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제3당인 자유민주당과의 합당까지 생각하고 정강정책을 조율하고 있었다. 또 대유럽정책에서 볼 때 그는 적극적 유럽통합론자로서, 유럽연합과의 조속한 통합을 역설해온 소신파이기도 하다.

블레어 총리에게는 노동당의 5거두- 브라운 재무, 스트로 내무, 블런킷 교육장관, 캠벨 대변인, 그리고 만델슨- 중에서 만델슨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98년 말, 다른 스캔들(대출 관련)로 통상산업 장관직을 사임했던 만델슨을 블레어 총리가 9개월 뒤 다시 내각으로 불러들이는 위험을 감수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블레어 총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쪽으로는 도덕적으로 자격 미달인 사람을 다시 중용해 이같은 사단이 빚어졌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고, 만델슨에게 동정적인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어렵다고 아까운 인재를 내팽개친 바보로 비쳐지고 있다.

하지만 블레어에게 진실로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이상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참모를 잃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장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 다음 총선까지 만델슨 없는 블레어가 이룰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이냐는 비관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옥스퍼드=주미사 통신원 lames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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