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팔아 내전한 콩고 대통령 카빌라는 누가 죽였나… 다국적 기업들은 이권 향방에 촉각 세워
1965년 4월 체 게바라는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콩고의 민족자존과 이익이 위니옹 미니에르와 같은 다국적 기업과 식민종주국 벨기에 등 서구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처참하게 농락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콩고 민족주의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콩고로 건너가 카빌라를 만났다. 그러나 6개월간 아프리카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체 게바라 회고록의 행간에는 혁명지도자로서의 카빌라의 의지와 자질에 깊은 실망감과 회의가 배어 있다.
체 게바라의 혜안?
이 회고록에 카빌라는 실제 전투에는 참여할 의지와 실천적 노력도 없이 술과 여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로 묘사돼 있다. 체 게바라는 카빌라가 대중적 지도자로서의 잠재적 자질을 갖춘 것은 인정하면서도 혁명지도자로서의 실천적 덕목과 행동하는 의지가 결여된 데 대하여 깊은 환멸감과 회의를 피력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결여하고 있으면 혁명의 대의에 결연한 혁명가라 할지라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그렇다고 지도자적 자질을 갖추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혁명지도자가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지도자는 결연해야 하며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강고한 이념적 무장과 혁명의 대의에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다. 아직까지 카빌라는 이러한 자질 중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아직 혈기왕성한 젊은이임을 고려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정황으로 판단컨대 그가 이러한 자질을 보여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모부투 장기독재를 청산하고 집권한 카빌라가 지난 1월16일 총에 맞아 암살됐다. 아직껏 암살의 정확한 동기나 배후세력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대통령궁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이틀 뒤에 야 정부관리가 그 사망사실을 공식 확인함으로써 수많은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군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우간다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으나 우간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평화회담에 응하려는 카빌라의 의도에 불만을 품은 앙골라의 음모라는 추측도 나오고, 군부와 측근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 진행에 불안을 느낀 자들이 선수를 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좀처럼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던 카빌라는 지난해 말 영국와의 인터뷰에서 암살음모에 대해서 전혀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었다.
지난 97년 5월 무려 32년간 봉건군주처럼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콩고를 철권통치해오던 모부투를 권력에서 축출시키고 카빌라가 수도 킨샤사에 입성했을 때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를 해방자, 희망의 정치를 펼칠 국민적 영웅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과 기대는 절망으로 급변했다.
권력 승계한 아들의 능력도 의문
카빌라는 모부투의 독재와 전횡을 그대로 답습했다. 권력의 핵심에 친·인척을 포진시켜 권력을 사유화하고 정당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감을 증폭시켰을 뿐만 아니라 경제를 파행으로 치닫게 했다. 체 게바라의 혜안이 증명된 셈이다. 카빌라가 집권할 수 있도록 군사지원과 재정지원을 한 우간다와 르완다는 카빌라가 집권 뒤 동부지역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던 후투족 민병조직들을 지원하자 콩고반군세력을 지원하고 나섰다.
콩고반군세력은 현재 국토의 절반 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우간다와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반군세력과, 짐바브웨·나미비아·앙골라 등 인근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의 전투가 계속되면서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 최대의 분쟁지역이 됐다.
카빌라는 정부군을 도와 반군과 교전중인 짐바브웨, 나미비아, 앙골라 정부에 엄청난 지하자원과 천연자원의 이권을 제공해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제주권을 저당잡힌 신세로 전락시켜버렸다. 군대를 파견중인 짐바브웨의 경우 다이아몬드와 금을 채광해 파병비용과 무기구입에 충당하고 있다.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우간다의 경우도 콩고내전에 개입한 이후 금 수출이 10배로 급증하는 등 상당한 이권을 챙겨왔고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의 동생인 살림 살레 장군은 우간다가 지원하고 있는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서 항공화물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부 카탕가지방은 구리, 코발트, 아연, 우라늄과 같은 전략자원의 보고로서 일찍부터 다국적 기업은 물론 이해당사국간의 치열한 각축장이 돼왔다. 현재 이스라엘계 회사가 다이아몬드를, 미국과 캐나다계 회사들이 구리, 코발트, 아연을 캐내고 있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뒤 카탕가주의 분리독립이 외국인 용병의 개입, 식민종주국 벨기에와 서구열강의 암묵적 묵인 하에 시도된 것도 카탕가주의 방대한 지하자원이 그 원인이었다. 카빌라가 집권하고 나서 정부지출의 80% 이상이 반군진압을 위한 군비로 지출되었는데 이러한 군비는 외국계 회사들에 광물 채광권을 주는 방법으로 조성됐다.
카빌라가 암살된 뒤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권력을 승계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과연 그가 군부와 반대세력을 장악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반군세력들은 조셉 카빌라가 민주적 절차없이 군주체제에서처럼 부자간 권력세습을 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특히 조셉 카빌라는 투치족인 어머니와 카빌라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동부지역 투치족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수도 킨샤사와 서부지역의 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그가 탄자니아에서 성장해 영어와 스와힐리어에는 능숙한 반면 킨샤사의 주요한 언어인 링갈라어와 공용어인 불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도 전 국민을 아울러야만 하는 정치지도자로서의 한계로 지적된다.
진일보한 평화협정 가능할까
일부에서는 카빌라의 암살을 계기로 교착상태에 빠진 평화회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길 조심스럽게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교전당사국의 첨예한 이해관계와 각 정파, 반군세력의 반목으로 실질적인 평화협정의 이행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 지난 1999년 잠비아 루사카에서 반군을 지원중인 르완다와 우간다,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는 짐바브웨, 앙골라, 나미비아 등 교전당사국들이 유엔평화유지군의 파병, 외국군대의 철수 등 평화정착을 위한 평화협정에 서명했으나 카빌라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이행되지 않았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광물자원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외국계기업들은 카빌라의 장례식에 조문인사를 파견하는 데도 다소 신중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국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향후 권력의 향방이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카빌라 정부와 맺은 채광권이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고, 혼란 상황에서 노다지를 캐러 달려들었다가 자칫 쪽박을 찰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의 혼란스런 정치상황은 사바나초원에서 쓰러진 동물을 뜯어먹으려고 공중을 선회하고 있는 한 무리의 독수리를 연상케 한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사진/암살된 카빌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AP연합)
모부투 장기독재를 청산하고 집권한 카빌라가 지난 1월16일 총에 맞아 암살됐다. 아직껏 암살의 정확한 동기나 배후세력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대통령궁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이틀 뒤에 야 정부관리가 그 사망사실을 공식 확인함으로써 수많은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군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우간다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했으나 우간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평화회담에 응하려는 카빌라의 의도에 불만을 품은 앙골라의 음모라는 추측도 나오고, 군부와 측근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 진행에 불안을 느낀 자들이 선수를 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좀처럼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던 카빌라는 지난해 말 영국

사진/생전의 카빌라. 그는 32년간 절대권력을 행사해왔다.(SYGMA)

사진/권력을 승계받은 조셉카빌라(왼쪽에서 두번째). 과연 그가 군부와 반대세력을 장악할 능력이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