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닥터 지바고>를 썼던 러시아 페리델키노에서 보낸 하루
▣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이른 아침 모스크바의 가을 바람이 내 심장을 스쳐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키에프스키역으로 향했다. 수많은 러시아인들의 여행 행렬에 묻혀 페리델키노로 향하는 내 가슴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 찼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썼던 페리델키노, 내 마음은 느린 기차를 재촉하고 있었다. 페리델키노로, 페리델키노로….
반시간 뒤, 열차는 숲으로 뒤덮인 아담한 시골역인 페리델키노역에 도착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은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오솔길이었다. 누군가 가리킨 손가락 방향으로 마냥 걸음을 옮겼다. 마주치는 러시아 촌부들에게 그냥 ‘파스테르나크’라고 하면 그들은 손가락으로 길을 가리켰다.
파스테르나크가 말년에 고독한 최후를 보냈던 ‘다차’(시골집)로 가는 길은 세상과 완전히 결별한 듯 세상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새 울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바람에 사뿐히 떨어지는 노란 잎사귀들이 발 밑에 드리웠다. 바람에 휘둘려 떨어지는 잎사귀들은 가을의 장관을 연출하면서 이방인을 맞아주었다.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박해받은 시인이었기에 집도 작은 오막살이 정도일 것으로 상상했지만 문 앞의 전경은 시야를 시원하게 터주었다. 몇 그루의 사과나무와 푸른 잔디가 우거진 넓은 정원, 목조가옥 두 채가 드러났다. 정원을 가로지르던 발걸음을 잠시 멈춰서자, 러시아의 가을 낙엽과 함께 시인의 영혼이 더 가까이 느껴졌다. 그의 다차는 러시아의 긴 겨울과 맞서기에는 외떨어진 너무나 외로운 곳이었다.
그의 서재로 올라갔다. <닥터 지바고>를 탄생시킨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그의 산책 코트와 장화도 보존돼 있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그의 책상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었다. 그곳을 지키는 러시아 노파의 언성에도 아랑곳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 밖에서는 이방인의 용감한 침범을 축복이라도 하듯 낙엽들의 축포가 터지고 있었다. 파스테르나크의 영혼이 기쁨에 겨워 춤추듯 창 밖은 화려한 가을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시인의 서재에는 온갖 문학집들이 꽂혀 있었다. 예이츠, 프로스트, 릴케, 특히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이 내 시선을 놓지 않았다. <닥터 지바고>의 전세계 번역출판물도 꽂혀 있었다. 물론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지만. 외로움과 고독의 짙은 향내가 진동하는 그곳에는 그의 그림자가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파스테르나크의 다차는 그의 시 ‘겨울밤’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집을 뒤로하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가까운 곳에 조그만 샘터가 있었다. 모스크바 사람들이 물을 나르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 시절, 그의 발걸음이 닿았을 곳, 이곳에서 명상에 사로잡혔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다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동묘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난한 자들의 공동묘지, 가장 구석진 자락에 그가 묻혔다. 그의 무덤은 위대했다. 그렇게 소박하고 예술적인 무덤은 여태껏 본 적 없다. 하얀 비석에 새겨진 그의 옆얼굴만이 그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곳엔 이미 러시아인 노부부가 벤치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시인의 무덤에서는 별 말이 필요 없었다. 한참 비석을 바라보던 노부부가 내게 보드카를 강권했다. 보드카 잔을 들어 함께 파스테르나크의 하얀 비석을 향해 건배했다. 파스테르나크를 위해 건배! 곧바로 우리는 그가 좋아했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가버린 그지만 그의 영혼이나마 우리의 노래를 듣기 원하면서.
살았을 때는 홀로 외로이 울었지만 이제는 매일 그의 삶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그려진 하얀 비석 앞에서 그를 위해 운다. 살았을 때 울 수 없었던 그를 위해 이제 내가 울고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장례식에는 많은 군중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