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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돌아와요, 동베를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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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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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뒤 흉물스런 빈집들만 즐비… 민간 차원의 재건축 프로젝트가 떠나간 발길을 다시 부른다

사진/시상식 이후 Soziale Stadt 2000 홍보 차원에서 진행된 라디오 방송 녹화 장면. 왼쪽에서 두 번째가 카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0여년 전 그날의 감동이 무뎌진 그 자리에 해결되지 않은 통일의 숙제들이 어둠을 드리우고 있다. 베를린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흉물스런 건물들이 도시의 상처를 드러낸다. 듬성듬성 보수를 마친 집들도 눈에 띄지만 주변 ‘유령의 집’에 둘러싸여 그 가치를 발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 이후 옛 서독으로 향하는 긴 이주행렬이 휩쓸고 간 뒤 고객을 잃어버린 상점들은 문을 닫아버렸다. 게다가 한 차례 부동산 업체들의 농락도 있었다. 플랜츠라우어베어크 지역의 경우 통일 직후 정부의 개보수 보조금을 노린 부동산업자들이 주택들을 앞다투어 헐값으로 사들였으나 정작 개보수에 주춤거리며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 지역은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으로서의 가치가 급속히 떨어져 투자자본들이 등을 돌리고 말았다.

정부지원금까지 끌어들여

사진/플랜츠라우어베어크구의 빈집. 45가구가 살 수 있는데 현재 살고 있는 가구는 3가구뿐이다.
그간 건설업체와 손잡고 건물을 개조·보수함으로써 동베를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노력해온 시정부도 이제 힘에 부쳐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옛 동독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책정된 이른바 ‘통일비용’은 도로나 교육시설 등 기타 사회간접자본에 집중적으로 투자되면서 이미 가용능력을 초과한 지 오래이다. 또 이제 민간투자가는 어느 누구도 동베를린의 방치된 집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통일 직후부터 신설돼 나름대로의 연구를 진행해온 각종 위원회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월11일에 열린 ‘Soziale Stadt 2000’ 시상식은 버려진 주거공간에 생기를 불어넣고 삶의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애써온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자리였다. Soziale Stadt는 지난 96년부터 건축전문가와 주택업체 그리고 노동자단체 등 민간단체들이 주축이 돼 추진해온 독일 전역에 걸친 도시복구 프로젝트이다. ‘개선돼야 할 것은 떠나는 사람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구호 아래 단순한 물리적 수리·보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인 주거환경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Soziale Stadt 2000’ 시상식은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열려왔다. 이 시상식은 또한 건물 개보수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발굴하고 홍보함으로써 관련 전문가와 단체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나아가 적극적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 5년간 상금 한푼 없이 진행돼 이 행사는 2001년 마침내 400밀리언마르크(2500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확보함으로써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101개의 프로젝트가 경연한 이번 Soziale Stadt 2000 시상식에서 대상은 ‘마리의 놀이터’라는 프로젝트가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위험구역으로 낙인찍혔던 동베를린 노이쾰른구 롤베어크 지역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되돌려놓았다. 이제 이 지역은 찌든 먼지와 부식물을 벗겨낸 건물에 칠해진 분홍빛이 은은하다. 환하게 조명을 갖춘 도로는 보행자를 반기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빨간색 자전거 전용도로를 맘놓고 씽씽 달린다. 건물들 사이엔 다양한 놀이시설과 모래사장을 갖춘 놀이터가 어린이들을 부른다.

이러한 변화의 뒤에는 외국인 및 실업자를 포함한 지역주민들과 경제·정부단체간의 탄탄한 네트워크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청, 사회청과의 공조를 통해 실업상태의 주민이 직접 건설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일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주거지역 내 터키 여성들을 위한 독일어과정을 상설했고, ‘어린이급식소’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아침식사도 제공하고 있다.

베를린 근교에 있는 인구 15만의 쉬텐달시의 경우, ‘문화 활동’을 도시재건과 결합시킨 노력을 인정받았다. 본격적인 보수작업 이전에 대대적으로 외부에서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각종 상설 전시회가 오랜 기간 방치된 빈집들에서 개최되었고, 비디오프로젝트, 연극, 춤, 모델수업 등이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냈다. 이런 활동이 점차 활기를 띠어가자 주민들이 도시 재개발 사업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을 새롭게 발견하고 지역주민들에게 소속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마리의 놀이터’ 프로젝트의 언론담당관인 카린의 설명이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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