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발 태생연도’와 ‘수입연도’를 구분해야 하는 중고차의 천국
일보 직전의 랜드로버를 사서 아프리카 도로를 즐겁게 달리다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이곳은 새 차가 없다. 아니 모두 새 차다. 중고차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중고차를 수입한 날짜부터 연수를 헤아린다. 그래서 꼭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장발 태생은 몇 년인가? 그리고 언제 수입돼 탄자니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거의가 중고차인 탓에 15년 된 차는 보통이고 대부분 20년 이상 된 차가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그런데도 차가 놀랄 만큼 성능도 좋고 칠도 새것이다. 비밀은 수입차가 대부분 일본산이라는 데 있다. 일본 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수출되는 모든 중고차는 새것처럼 노후한 부품도 바꾸고 칠도 다시 하고 비닐포장도 해서 국경을 넘는다. 공장발 태생 10년이라도 새 차를 사기에는 능력이 부치는 이곳에서는 ‘new’라고 하며 떠들고 다닐 만하다. 그래서 “일본 차는 적어도 3년은 고장 안 나고 문제없다”며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좋아하고 자랑한다.
부르다 내가 지칠 택시여 세원 엄마와 의논해 우리도 차를 한 대 구입했다. 필요할 때마다 가끔 빌려 쓰는 차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콜택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는 택시 운전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부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급할 때 부르면 단골손님이니 만사 제쳐놓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집을 향해 오다가도 더 멀리 가는 손님(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손님)이 있으면 그 손님을 목적지까지 다 데려다주고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온다. 그러고는 차가 너무 막혔다거나 고장이 났다며 씩 웃어버리니, 혹시나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하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택시를 하루 빌리는 값이 6만원이고 아무리 짧은 거리도 한 번 타면 무조건 5천원을 내야 한다. 그래서 500원도 안 되는 바나나 한 다발을 사러 가기 위해 왕복 1만원을 쓰는 일도 있다. 결국 우리는 없는 돈을 쪼개서 낡은 영국산 랜드로바 공장발 1987년, 수입연월 1996년생, 그러니까 18년이나 된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사기로 결정한 뒤 처음 우리가 탈 차를 대면하는 순간 차의 상태 때문에 입이 딱 벌어져버렸다. 랜드로바는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고, 지붕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은 낡아서 이곳저곳이 덜덜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폐차비 내랄까봐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만, 판매하는 사람은 그래도 엔진과 기어는 최고라고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차를 400만원이나 달라 한다. 그래도 쓸 만큼 쓰고 팔아도 300만원 정도는 충분히 다시 받을 수 있다니, 참 요지경 세상이다. 워낙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이며 30년 정도는 너끈히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새 차 아닌 새 차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백인과 마사이족의 ‘골동품’ 선호
이곳에서도 이렇게 오래된 차는 백인과 마사이 부족 외에는 아무도 안 탄단다. 백인이야 ‘앤티크’를 좋아해서 외장은 고치지 않더라도 차의 부속을 계속 수리하며 제 멋에 탄다. 하지만, 마사이족은 정말 돈은 없는데 차가 필요하니 탄다고 한다. 인도인과 흑인은 최신형을 선호한다나? 물론 최신형은 이제 막 6년 된 중고차를 수입한 것이다. 아루샤 도시 전체에 공장에서 갓 나온 새 차는 단 한 대뿐이다. 그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아루샤 유일의 최고 최신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차를 사고 첫 운전을 했다. 차 성능이 어땠냐고? 약간의 매연이 나오고 소리가 커서 그렇지 정말 멋진 차였다. 다만 한국 차의 반대편에 붙어 있는 기어며 도로의 차선 때문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해보는 수동식도 매끈하게 잘 안 됐다. 신호등도 없고 차선도 없는 도시라 저쪽에서 차가 오면 적당히 천천히 가고 내가 방향을 틀려고 신호를 주면 적당히 기다려줬다. 차가 적은 탓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니 오히려 신호등보다 편했다. 속력을 많이 낼 수 없는 도로라서 달려봐야 시속 60km가 최고였다. 하지만 천천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아루샤를 속속들이 배우고 있다. 낡은 랜드로바를 타고 지나가면 여기저기서 마사이족처럼 낡은 차를 좋아하는 새로운 ‘오너 드라이버’의 탄생을 축하해준다. 느리고 소리도 많이 나는 차지만 발이 생겨서 너무 좋다.
메모: ‘아프리카, 불편하지만 좋은 것’- 냉장고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고기도 없고, 맛깔나게 보이려고 달아놓은 빨간 등도 없지만, 오후 2시 도살장에서 갓 나온 신선한 고기는 4~5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뻘건 속살을 들어낸다. 백화점에서 전세계 과일을 사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오렌지 따로, 망고 따로, 바나나 따로 사야하는 일이 다리도 아프고 원하는 만큼 하루에 나오지 않아서 짜증도 난다. 하지만 농약 없이 뜨거운 햇살만 받고 자란 과일을 기대하는 마음에 신선함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배우고 산다.
일보 직전의 랜드로버를 사서 아프리카 도로를 즐겁게 달리다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이곳은 새 차가 없다. 아니 모두 새 차다. 중고차를 수입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중고차를 수입한 날짜부터 연수를 헤아린다. 그래서 꼭 두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장발 태생은 몇 년인가? 그리고 언제 수입돼 탄자니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거의가 중고차인 탓에 15년 된 차는 보통이고 대부분 20년 이상 된 차가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그런데도 차가 놀랄 만큼 성능도 좋고 칠도 새것이다. 비밀은 수입차가 대부분 일본산이라는 데 있다. 일본 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수출되는 모든 중고차는 새것처럼 노후한 부품도 바꾸고 칠도 다시 하고 비닐포장도 해서 국경을 넘는다. 공장발 태생 10년이라도 새 차를 사기에는 능력이 부치는 이곳에서는 ‘new’라고 하며 떠들고 다닐 만하다. 그래서 “일본 차는 적어도 3년은 고장 안 나고 문제없다”며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좋아하고 자랑한다.

18년 된 중고 랜드로버. 아루샤에선 이 정도면 새 차 대접을 받는다. (사진/ 구혜경)
부르다 내가 지칠 택시여 세원 엄마와 의논해 우리도 차를 한 대 구입했다. 필요할 때마다 가끔 빌려 쓰는 차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콜택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는 택시 운전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가 부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급할 때 부르면 단골손님이니 만사 제쳐놓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집을 향해 오다가도 더 멀리 가는 손님(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손님)이 있으면 그 손님을 목적지까지 다 데려다주고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온다. 그러고는 차가 너무 막혔다거나 고장이 났다며 씩 웃어버리니, 혹시나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거나 하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택시를 하루 빌리는 값이 6만원이고 아무리 짧은 거리도 한 번 타면 무조건 5천원을 내야 한다. 그래서 500원도 안 되는 바나나 한 다발을 사러 가기 위해 왕복 1만원을 쓰는 일도 있다. 결국 우리는 없는 돈을 쪼개서 낡은 영국산 랜드로바 공장발 1987년, 수입연월 1996년생, 그러니까 18년이나 된 차를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사기로 결정한 뒤 처음 우리가 탈 차를 대면하는 순간 차의 상태 때문에 입이 딱 벌어져버렸다. 랜드로바는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고, 지붕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은 낡아서 이곳저곳이 덜덜거렸다. 한국 같았으면 폐차비 내랄까봐 아무도 안 가져가겠지만, 판매하는 사람은 그래도 엔진과 기어는 최고라고 침 튀겨가며 열변을 토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차를 400만원이나 달라 한다. 그래도 쓸 만큼 쓰고 팔아도 300만원 정도는 충분히 다시 받을 수 있다니, 참 요지경 세상이다. 워낙 부품을 구하기도 쉽고 현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이며 30년 정도는 너끈히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새 차 아닌 새 차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백인과 마사이족의 ‘골동품’ 선호

아루샤의 과일 노점들. 백화점 쇼핑에 익숙한 서울 엄마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줬다. (사진/ 김정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