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잠복기간 38년인 ‘조용한 시한폭탄의 공포’에 떨고 있는 공공기관들
30~40년 지난 석면 사용 건물들이 해체 시기 맞아 위험 피할 길 없는데…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anmail.net
일본 텔레비전은 석면(이시와타·아스베스트) 문제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지난 9월 문부과학성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공립학교 142개교에 석면이 비산할 위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1월30일에는 “전국 유치원, 초·중학교 등 교육기관 4923개 시설 위험” “병원, 보육원 등 의료 사회복지시설 586개소가 대책 없는 상태” “전국 580개소에 출입금지 명령” “석면 제거와 비산 방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시설이 6617개소를 웃돈다”는 조사 결과가 쏟아지면서 국민들의 불안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아이들이 공부하고 뛰노는 학교와 보육원,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병원과 전철 역사, 시민회관·자치시설 등의 공공시설이 석면 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가즈오의 필사적 노력과 구보타의 고백
석면 문제는 지난 6월, 대기업 구보타가 종업원과 주변 주민의 피해를 공표한 데서 불거졌다.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 1954년부터 95년까지 수도관이나 건설자재 등 석면 제품을 생산한 구보타의 옛 간자키 공장을 중심으로 반경 1km 내에서 과거 3년 동안 석면이 원인으로 보이는 암의 일종인 중피종으로 인한 사망이 50가구가 넘었다. 환자단체의 사무국 후루카와 가즈오(57)는 석면이 원인이라는 것과,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 30년이 지난 지금 중피종에 걸린 사례 등을 모아나갔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이 대기업 구보타가 사망자를 밝힐 수밖에 없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구보타의 발표 이후 오사카, 나라, 사이타마 등 전국 각지의 공장 주변에서 주민이 사망한 사례가 잇달아 드러났다. 환경성은 1970년부터 2010년까지 공장의 노동자를 포함한 사망자가 2만5천 명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면 문제는 석면을 직접 취급하고, 석면 제품 생산과정에 종사한 노동자만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면적이다. 가나가와현에서는 3명의 석면 작업자 부인이 사망했다. 그외에도 공장 주변의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 주변 지역 주민들이 석면 피해에 노출됐다는 사례가 연이어 보고되고 있다.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석면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여름방학 중 전국에서 실시된 제거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개학이 늦어지기도 했다. (사진/ EPA)
석면은 ‘조용한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들이마시고 나서 몇십 년 뒤에 발병하기 때문이다. 후생노동성 전문가 검토회는 2001년까지 3년간 중피종으로 노동재해가 인정된 93명의 병례를 분석한 결과 “석면 흡인에서 발병까지 평균 잠복기간이 38년, 평균 발병확인 연령이 61살”라고 보고했다. 그래서 문제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많이 늦게 된다.
실제로 석면 피해의 심각성은 최근에야 지적된 것이 아니다. 일본 진폐 및 아스베스트의 최고 권위자인 에비하라 이사무는 이미 1900년 초반부터 석면에 의한 건강 피해를 지적하는 논문이 발표됐다고 말한다.
석면의 주요 수출국이었던 캐나다가 석면의 발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캐나다의 기업들은 과학자들을 내세워 석면이 안전하다고 국제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유럽연합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생산 수출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국제소송을 걸었고, 여기에서 캐나다가 패소했다.
일본은 1975년 노동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석면의 분무살포 부착 작업을 원천 금지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정부는 “대체할 것이 없다” “관리하면서 사용하면 안전하다”는 기업의 주장에 굴복했고 함유율 5% 이하의 공사에는 석면 사용이 계속 묵인되었다. 석면 수입량은 금지된 이후에 더 늘어난다. 1980년 후반 수입량은 최고에 달했고 1993년까지 매년 20t을 넘었다. 결국 석면으로 인한 노동재해가 잇따르고 주민들의 피해가 거듭되면서 2004년 청석면과 갈석면은 물론 백석면의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빌딩 급증한 1960~70년대에 대량 사용
일본 국내에 지금까지 수입된 석면의 양은 약 1천만t. 그중 90%가 건축자재로 쓰였다. 천연광물인 석면은 내화·단열·흡음의 특성에 값까지 싸서, 건물의 철골이나 천장, 벽에 시멘트와 함께 섞어 분무식 도장 공사가 주로 행해져왔다. 빌딩과 가옥이 급증한 1960~70년대에 석면이 대량으로 사용됐다.
이제 그로부터 30, 40년이 지나 석면을 사용한 건물이 해체 시기를 맞으면서, 해체·분쇄하는 과정에서 석면 비산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석면 제거에 드는 비용은 1㎡당 2만~3만엔이나 하므로, 석면을 제거하지 않고 해체하는 일이 업자들 간의 묵인하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더 안일한, 잃을 걸 뻔히 알고도 고치지 않은 기업과 정부는 국민의 추궁과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현재 일본 정부는 석면에 관한 관련 각료회합에서 “석면에 대한 노동재해 확정으로부터 누락된 노동자, 공해 지역으로 확정되지 않는 공장 주변의 구제 및 석면에 의한 중피종 환자와 유가족 의료비, 유족 일시금 등의 지급”을 골자로 하는 신법 대강을 마련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급부 금액은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의 호소와 국민들의 석면 공포 앞에서, 정부와 기업은 아직 ‘주판알 튀기기’만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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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20년 늦었는데 한국은…”
[인터뷰_에비하라 이사무 이사장]
빨리 공공기관의 실태파악과 함께 피해자들의 병력 추적해나가야
NPO법인 직업성질환·역학리서치센터의 에비하라 이사무(64) 이사장. 그는 진폐·석면 분야의 일본 최고 권위자다. 그는 석면을 직접 취급한 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 공장 주변의 주민은 물론, 석면이 다량 사용된 학교와 상점 건물의 석면에 노출되어 발병한 폐암 및 중피종(흉막이나 복막에서 발생하는 악성 암)의 사례들을 다년간 진단해왔다.
석면의 가장 큰 위험성은 무엇인가.
=발암성이다. 폐 속에 흡입되면 폐암, 흉막 복막의 악성 종양, 그리고 악성 중피종을 일으킨다. 특히 악성 중피종은 극소량만 흡입해도 발병된다. 통상적으로 석면을 직접 원료로서 생산한 사람은 폐암 발생 비율이 약 10배 높다. 직접 취급한 노동자의 가족, 옷을 세탁하는 부인이 중피종을 일으킨 예도 있다. 석면 제품 생산공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악성 중피종에 걸린 경우도 있다. 공장의 반경 2km 내에 사는 사람은 폐암 발병 비율이 5~7배가량 높다. 건축할 때 석면 가공제품의 절단, 전기공, 해체 등의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5~6배에 이른다. 석면 천장이 있는 전국 초·중·고교의 학생과 교사, 석면 천장이 있는 창고 등에서 다년간 일해온 노동자들에게도 악성 중피종이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연간 약 800명이 석면으로 인해 사망한다. 다년간 역학조사한 결과다. 65살까지 한정해 조사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직접 석면을 취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6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건강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일본 사회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최근에야 주변 주민에게도 문제가 된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노동자가 아니니 노동재해 대상도 되지 않는다. 구제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일본의 석면 피해자와 그 가족 및 노동조합이 이를 요구에 동의하고 있다. 일본 전체 인구의 2할에 해당하는 1천만 건설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에 관한 노동재해로서의 보장, 그리고 주변 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한국의 학교나 지하철역 등의 석면은 고형으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석면이 사용된 지붕, 외장재, 단열재 등이 지금도 일반 가정에까지 남아 있다. 고형이지만 낡고 금이 가면 해체 작업 때에 날아서 흩어질 위험이 있다. 학교나 전철역의 석면 노출은 심각한 문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라도 주의하여 해체해야 한다. 일본은 건축자료 리스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회사명, 제조사명, 상품명 등과 그 안에 석면이 몇% 함유돼 있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어떤 건축자재에 어느 정도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는지 밝히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다.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
한국의 석면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일본은 국제사회의 상식을 알리는 데 20년이나 늦었다. 그리고 이제야 석면을 제거하고 있다. 한국은 더 뒤처져 있다. 앞으로 학교와 공공기관의 석면 실태 파악을 비롯해, 건설 노동자와 그 가족, 주변 지역 피해 주민의 병력을 추적해나가야 한다. 국가기관의 책임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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