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스핑크스와 클레오파트라, 이시스와 오시리스… 고고학 혹은 신화로 다가오던 이집트. 그 오래된 나라 여자 하나가 지난해 이맘때, 대한민국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끼어들어 연대서명을 했다. 이집트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던 나왈 엘 사다위. 24년째 집권을 놓지 않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견제 앞에 총선 몇 달 전, 무소속 후보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1980년 그녀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에 여섯 살 소녀 시절 겪었던 악몽을 고발했다. 아직 영국의 식민통치 시절이던 1931년, 나왈은 이집트 시골 마을에서 아홉 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낼 만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관습의 칼날은 피할 수 없어, 혼몽한 꿈결에 칼 가는 소리를 들으며 끌려나와 다리 사이 여린 살점을 난도질당해야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간 그녀, 1952년 나세르 혁명으로 사회주의가 도입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파격적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자기 정체성을 키웠다.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를 일삼는 가부장 사회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남성들을 질타하는 한편 여성 스스로의 자각과 의식 전환에 대해 계몽운동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잠시 달콤한 땀의 대가를 맛보기도 했다. 일찍이 이런 과정을 거친 덕인지 이집트는 한국에 비해 월등하게 양성평등의 실천이 앞선 면모가 많다. 하지만 악습의 위력 앞에 지나간 혁명은 무력할 따름. 의사가 된 그녀, 여자 몸은 노출금지 품목이라 옷 위로 주사를 찔러야 하는 악습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이후 국립보건원 원장이 된 사다위는 1969년 가정폭력과 일부다처제, 근친상간과 피임법 등의 내용이 담긴 계몽실용서 <여성과 성>을 출간해 논란의 불을 지피지만, 결국 몰매를 맞고 파면당한다. 덕분에 13억 무슬림 인구의 절반 자매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튼실하게 대변하는 큰언니를 갖게 되었다. 순결한 영혼은 수난을 통해 단련되는 법, 그녀는 글쓰기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오래된 새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를 더욱 키운 인물은 사다트. 당시 한반도에는 박정희가, 이집트엔 사다트가 있었다. 이집트의 ‘고독한 파라오’는 그녀를 불온하고 불순한 반정부 인사 3천 명 중 하나로 지목해 ‘시인학교’에 처넣고 몇 달 만에 총탄에 스러지니 곧 출소한 나왈 엘 사다위는 1983년 <여죄수의 회고>라는 책을 들고 비타협적인 참여작가로 거듭난다. 관습과 법, 과학과 신화, 정치와 종교 곳곳에 박혀 있는 조작된 진리를 향해 저돌적이고 선동적인 화법으로 질타를 날리는 그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신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암살 후보 서열 1순위다. <나일강의 암사자> <이브의 감춰진 얼굴> <차도르> 등 이슬람 여성의 억압 상황을 고발하는 책들은 나오는 족족 판금되기 일쑤였다. 고희가 넘었어도 숱 많은 그녀의 백발은 아직도 헤자브나 차도르 속에 구겨넣을 수 없을 만큼 뻣뻣하고 풍만하다.

1980년 그녀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저널 <미즈>에 여섯 살 소녀 시절 겪었던 악몽을 고발했다. 아직 영국의 식민통치 시절이던 1931년, 나왈은 이집트 시골 마을에서 아홉 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낼 만큼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관습의 칼날은 피할 수 없어, 혼몽한 꿈결에 칼 가는 소리를 들으며 끌려나와 다리 사이 여린 살점을 난도질당해야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간 그녀, 1952년 나세르 혁명으로 사회주의가 도입되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파격적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자기 정체성을 키웠다.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를 일삼는 가부장 사회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남성들을 질타하는 한편 여성 스스로의 자각과 의식 전환에 대해 계몽운동이 펼쳐지는 현장에서 잠시 달콤한 땀의 대가를 맛보기도 했다. 일찍이 이런 과정을 거친 덕인지 이집트는 한국에 비해 월등하게 양성평등의 실천이 앞선 면모가 많다. 하지만 악습의 위력 앞에 지나간 혁명은 무력할 따름. 의사가 된 그녀, 여자 몸은 노출금지 품목이라 옷 위로 주사를 찔러야 하는 악습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다. 이후 국립보건원 원장이 된 사다위는 1969년 가정폭력과 일부다처제, 근친상간과 피임법 등의 내용이 담긴 계몽실용서 <여성과 성>을 출간해 논란의 불을 지피지만, 결국 몰매를 맞고 파면당한다. 덕분에 13억 무슬림 인구의 절반 자매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튼실하게 대변하는 큰언니를 갖게 되었다. 순결한 영혼은 수난을 통해 단련되는 법, 그녀는 글쓰기로 스스로를 치유하며 오래된 새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를 더욱 키운 인물은 사다트. 당시 한반도에는 박정희가, 이집트엔 사다트가 있었다. 이집트의 ‘고독한 파라오’는 그녀를 불온하고 불순한 반정부 인사 3천 명 중 하나로 지목해 ‘시인학교’에 처넣고 몇 달 만에 총탄에 스러지니 곧 출소한 나왈 엘 사다위는 1983년 <여죄수의 회고>라는 책을 들고 비타협적인 참여작가로 거듭난다. 관습과 법, 과학과 신화, 정치와 종교 곳곳에 박혀 있는 조작된 진리를 향해 저돌적이고 선동적인 화법으로 질타를 날리는 그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신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암살 후보 서열 1순위다. <나일강의 암사자> <이브의 감춰진 얼굴> <차도르> 등 이슬람 여성의 억압 상황을 고발하는 책들은 나오는 족족 판금되기 일쑤였다. 고희가 넘었어도 숱 많은 그녀의 백발은 아직도 헤자브나 차도르 속에 구겨넣을 수 없을 만큼 뻣뻣하고 풍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