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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날개비’ 내리는 초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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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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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폭우에 뒤척이며 눈을 떠 보니 온 마당 천지에 날개개미가…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야생의 법칙이 살아있는 아프리카를 느끼다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이곳에 와서 좋은 점이 무엇일까? 서울과 무엇이 다를까?

탄자니아의 아루샤, 진정코 멀게만 느껴지던 이름이다. 분주했던 한 달이 지나고 나자 생활로 접어들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던 많은 것들이 이곳의 사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며 나도 그렇게 적응되어갔다.


코끼리·코뿔소는 국립공원에만

이곳에선 아침을 여는 소리가 난다. 6시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뿌옇게 새벽이 오는 느낌이 들다가 갑자기 눈이 부실 만큼 환한 태양빛이 쏟아진다. 커튼이 없는 탓에 빛을 이길 재간이 없어 눈을 뜨지만, 그보다 먼저 ‘짹짹’ 새소리에 이미 시끄러워져 반쯤 깨어 있는 상태다. 전기에 의지하지 않고 사는 이곳 사람들 습관 탓에 어두워지는 저녁 7시쯤 되면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지만 아침은 무척이나 분주하다. 부산히 움직이고 인사하는 소리가 집 밖에서 왁자지껄 들려오고 소나 양 풀 먹이러 몰고 가는 부지런한 목동 소리도 ‘음매음매’ 소리와 섞여 들려온다. 도시의 중심 도로만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그 외는 비포장도로여서 어느 곳이나 풀이 자라므로 아침 일찍 가축 몰고 다니는 어린 목동을 보는 것은 이곳만의 풍경이기도 하다.

난 아프리카에 와서 코끼리가 나무를 부러뜨리고 코뿔소가 씩씩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방안 침대에서 뒤척거릴 꿈을 꿨지만, 이런 동물들은 국립공원 안에만 살고 있고 심지어 사파리에서도 차 안에서만 보는 것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다. 언뜻 평화로운 듯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냉정한 야생의 법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 사파리에 나선 한 아이가 잠시 숙소 근처에서 내렸다가 표범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은 아루샤를 떠들썩하게 했다.

개미들이 쌓은 흰개미집. 탄자니아의 마사이족은 흰개미집을 움막 재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맹수가 사는 국립공원과는 달리 어느 곳이나 생활 생태계가 살아 있는 이곳은 작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청명한 하늘을 쳐다보면 하얀색과 검은색 사이의 수많은 오묘한 빛깔의 구름이 변화무쌍하게 하늘을 장식한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같은 말로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힘들다. 어떤 과일은 먹을수록 더 달아지기도 하고 어떤 과일은 더 씁쓸해지기도 한다. 두껍고 얇고 까칠까칠한 다양한 촉감의 잎사귀들, 단맛이 나는 여러 가지 색깔의 들꽃들, 저녁이면 찾아오는 고슴도치. 얼룩말은 흰 바탕에 까만 줄일까? 까만 바탕에 흰 줄일까? 만화영화의 동물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현실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자연이 훼손되기 전, 도시화가 되기 전은 이러했겠지!

밤새 폭우가 쏟아진 어느 날 아침 뒤척이며 잠을 설치다 새벽에 일어나 방문을 여니 ‘으악!’ 소리가 절로 난다. 온 마당 천지에 나비가 가득 날아다니며 날갯짓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보던 메뚜기떼의 습격이 생각난다.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고 가는 빗줄기를 긋고 있는데, 나비들 속을 헤치고 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발 앞에 떨어져 죽은 나비를 자세히 보니 세상에 ‘날개개미’(교미기의 여왕개미와 수개미)다. 지금 짝짓기 비행을 하고 있는 거다.

조금도 줄지 않던 날개개미가 30분쯤 지나자 반으로 줄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온 마당에 이미 떼어놓은 날개가 수북하다. 날개개미는 나무 밑이나 땅 아래 몸을 내리고 파닥파닥 힘찬 날갯짓을 한다. 20~30분 뒤 날갯짓이 좀 둔해지는가 싶더니 순간적으로 날개를 툭 떨어트린다. 물기와 어우러져 반짝이던 날개는 방금 전까지 하늘을 날던 것인데, 이제는 진흙창에 섞여 더러워지고 개미는 초라하게 변해 앞더듬이로 기어서 길을 찾는다.

하고 많은 좋은 날씨를 다 놔두고 왜 빗속에 이 난리일까? 추측하기 쉽지 않다. 그 폭우 뒤에 비행을 하는 이유는 짐작건대 땅이 부드러워져서일 것이다. 평소 건조한 기후 탓에 수분 없이 단단한 땅은 비가 오고 나니 무르기 그지없었다. 비행 뒤 지쳐서 힘도 없었을 텐데, 축축한 땅속으로 금세 사라진 것을 보면 말이다.

사진으로 전할 수 없는 파노라마

하지만 왜 한 구멍에 두세 마리씩 들어가는지, 그리고 여왕개미치고는 너무 작다는 의문도 들었다. 짝짓기 비행 뒤 수놈은 떨어져 죽는다는데 그 하늘을 뒤덮을 만큼 많은 개미 중 한 마리도 죽은 개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많은 동식물, 곤충 책을 가져온 덕에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다른 많은 궁금증은 결국 이곳 책방에서 영어로 된 책을 사서 읽으며 해결할 수 있었다(이 나이에 팔자에 없는 영어 공부하느라 죽을 맛이다).

소를 몰고 가는 마사이족 목동들이 아루샤의 아침을 깨운다.

내가 본 것은 흰개미인데 시기에 따라 거뭇한 색깔을 띠고 있으며 봄에 짝짓기를 한다.(지금 이곳은 봄이다). 암컷 수컷 같은 수가 무리를 이루어 날다가 땅 위에 내리며 날개가 떨어뜨리고 각각 짝을 찾아 적당한 장소에서 구멍을 파고 교미한다. 여왕개미는 산란을 시작하면 배 부분이 커지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여왕개미 모양이 되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생생히 전하고 싶은데 전할 길이 없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그 화려한 비행은 간 곳 없고, 새벽빛의 보슬비는 선명하지 못한 화면의 점들만으로 보여질 뿐이다. 수북이 마당 가득 쌓여 있는 날개는 셀로판의 얇은 느낌을 전하지 못한 채 그저 흙에 붙어 있는 이물질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접사렌즈로 찍었으면 잘 표현이 됐을까? 하지만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바람소리와 함께 실려온 풀내음이며 들릴 듯 귓전에 다가왔던 날갯짓 소리는 결코 전할 수 없을 것이다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 이런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널려 있어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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