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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죽거나 아프거나 하쿠나 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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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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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아이 보며 ‘노 프로블럼’ 연발하는 의사 때문에 겪은 고초
아프면 이를 빼버리는 아프리카의 ‘엄청난’ 의료수준에 놀라다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peace@ktrwa.or.kr

결국 우려했던 일이 닥치고야 말았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물품 마련을 위해 머물렀던 케냐 나이로비의 한 놀이터에서 윤재가 다친 것이다. 허술한 놀이터의 어디서 어떻게 떨어졌는지 오른쪽 팔이 아프다며 울기 시작했다. 조금씩 부어오르는 팔에 김밥 말 때 쓰는 대나무를 부목으로 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래도 좀 크다는 나이로비 병원, 몇 년 전 탄자니아에서 세렝게티 다큐멘터리를 찍던 문화방송 직원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세렝게티에서 이곳 케냐 나이로비 병원까지 이송돼 치료받았다던 그 병원. 동아프리카에서 케냐의 나이로비만 한 곳이 없다더니, 결국 우리 역시 이 병원 신세를 지고 마는구나. 하필이면 토요일 저녁,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내 손으로 아이의 깁스를 풀다


낯선 땅에서의 병원행. 아이와 함께 가는 응급실은 묘한 기분을 갖게 했다. 온전히 나에게 맡겨진 아이에 대한 책임, 하지만 의학적 지식도 영어도 짧은 나는 내내 두려웠고 무력감을 느꼈다. 처음 찍은 엑스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막 기계를 들여놓은 듯 새것인데, 작동법을 모르는지, 어찌된 영문인지 찍혀 나오지 않았다. 과연 이곳에서 아이를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른 기계로 찍은 두 번째 엑스레이 사진을 확인하니, 두 곳에 금이 갔다. 약간의 금이라 2~3주면 완치될 수 있다고 한다. 부기가 빠지면 다시 깁스를 하기로 하고 집으로 왔다.

아루샤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아이 팔의 금은 그대로였다. 결국 다시 팔꿈치 위쪽까지 감싸는 깁스를 했다.

월요일, 다시 완전깁스를 하기 위해 찾은 병원, 나더러 엑스레이 사진을 찾아오라고 한다. 같은 병원에 있을 텐데, 환자에게 엑스레이 사진을 찾아오라고? 응급실에서 한 반깁스를 다시 해달라고 했더니 ‘괜찮다며’(No problem) 3~4주 뒤에 풀면 된다고 한다. 그래 까짓것 팔이 부러진 것도 아니고 금 간 것 정도를 가지고. 이게 액땜이려니 하고 나는 마음을 다스려 다음날 짐을 꾸려 탄자니아로 향했다. 병원에서 해준 삼각붕대가 자꾸 풀려서 서울에서 사온 등산용 헤어밴드를 붕대 겸 팔걸이로 썼다. 미장원에 못 갈 것을 대비해 머리를 묶고 정리하려고 산 헤어밴드였는데 정말 깁스하고 있는 내내 헤어밴드 덕을 봤다.

탄자니아의 아루샤. 3주를 기다려 깁스를 풀러 갔을 때 나는 경악했다.

아이가 오른손을 다쳤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내 손이 필요했다. 나 역시 힘들고 피곤했다. ‘이제 일주일’ ‘이제 3일’ 하며 3주가 빨리 지나가길 기다린 터였다. 드디어 3주, 물어물어 괜찮다는 병원을 소개받아 갔다. 병원에 가면 당연히 엑스레이를 찍고 상태를 판단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곳에선 병원과 엑스레이센터가 분리돼 있어 환자가 직접 엑스레이를 찍어서 병원에 와야 한다고 했다. 탄자니아 아루샤에 하나뿐인 엑스레이센터에 갔다. 엑스레이가 필요한 환자들이 모두 오는 곳이기 때문에 꽤 붐볐다. 순서를 기다려 엑스레이를 찍고 보니, 손목의 금은 완치됐지만 팔의 금은 그대로였다. 케냐 나이로비 병원에서 깁스를 팔의 금이 간 곳까지 하는 바람에 팔의 금은 그대로인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걸 ‘테러블하다’고 하나! 결국 다시 팔꿈치 위쪽까지 감싸는 깁스를 했다. 나이로비 병원에서 깁스를 다시 해달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노 프로블럼’을 연발하더니. 아, 아프리카의 의료 수준이여! 이게 바로 애들 데려가 고생시킨다는 얘기인지. 간호사는 멀뚱히 서 있고, 정말 ‘부시맨’처럼 생긴 흑인 의사가 직접 깁스를 해준다. 더러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에 ‘아이 돈트 언더스탠드’(I don’t understand)를 연발하는 동양 여자에게 침착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준다. 그들의 친절에 정말 감사한다.

그렇게 다시 2주 뒤 사람들이 없을 만한 시간에 엑스레이센터부터 들러 사진을 찍었다. 필름을 들고 다시 병원에 갔는데 지난번 의사가 자리에 없다. 이곳 의사들은 매일 진료하는 곳과 날짜가 달라서 내일 오전에야 이 병원에 온다고 한다. 엑스레이 사진 하나 체크하는 데 꼭 그 의사가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의사를 소개받아서 들어갔다. 의사는 한참 엑스레이 필름을 보더니 “(담당의사가 아닌) 나로선 깁스를 풀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 정말 엑스레이 사진 하나 판독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의사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음날 다시 전 의사를 만났더니 아이이기 때문에 1주일 더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팔에 금 간 걸로 6주라. 이젠 나도 거의 포기상태다. 윤재의 팔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5주 동안 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반깁스 상태에서 바람 많고 온통 흙길인 이곳에서 들어간 먼지로 아이 스스로 냄새가 난다고 괴로워했다.

나이로비 병원처럼 큰 병원도 의료수준은 형편없었다. 의사는 '노 프로블럼'을 연발했지만 아이의 팔은 낫지 않았다.

“아이야, 이를 잘 닦아라”

일주일을 다 채우지 않은 금요일 저녁, 나는 가위로 아이의 깁스를 떼어냈다. 완전깁스가 아니라 어떤 부분은 붕대만 있기 때문에 가위로 쉽게 잘라낼 수 있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열악한 의료시설 때문에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가 아프면 무조건 뺀다고 한다. 가깝게 지내는 아프리카 사람 두 명 모두 이가 3~4개씩 없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각각 20대 중반과 30대 후반이다.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고, 통증을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아픈 이를 빼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윤재가 한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금 간 팔이야 깁스만 하면 괜찮아지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특별히 이를 잘 닦으라고 신신당부한다. 다른 건 몰라도 치통은 다른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들고, 정말 여기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달나라에 간 지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프다고 이를 뺀다. 여기는 어디인가? 모든 것이 문제없다고 말하는 아프리카,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아루샤. 하쿠나 마타타(No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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