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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물좀…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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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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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루파의 꿈에 그리던 자연생활, 아이들 싸움에 지쳐 “우리 따로 살자!”
비싼 월세의 집을 구했지만 지하수 쓰는 옆집은 물 한 탱크도 못 판다고

▣ 김정미/ 여행전문가·지호, 지민 엄마 babingga@hotmail.com

세렝게티 국립공원, 킬리만자로산을 갈 때 거쳐갈 수밖에 없는 탄자니아의 소도시 아루샤에 보금자리를 텄다. 그 소원이던 아프리카. 하지만 상상하고 꿈꿔오던 자연 생활은 아직 저 멀리에 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함께 지내는 두 가족 생활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탓이다.

정원사·가정부 두니 갑부 된 기분


세원 엄마의 둘째 윤재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힘도 세고 덩치도 크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나의 둘째 지민이는 같은 나이지만 여성적 성향에 잘 울며 잘 넘어진다. 그래서 매일 윤재에게 치여서 지민이의 울음이 그칠 새가 없다. 속상해서 윤재가 지민이를 때리면 지호가 형이니 대신 윤재를 때려주라고 했다. 지호에게 얻어맞고 윤재가 지민이를 때리는 버릇은 거의 없어졌지만 이제 지호가 문제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때렸다며 자기도 때린다. 이제 4명의 아이들은 약간만 스쳐도 때렸다고 서로 화를 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앙금이 없어서 울고불고 싸우고 나서도 금세 낄낄거리고 논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이 넷이 몰려서 노는 상황에 난 거의 ‘폭발 직전’이다. 누군가 ‘앵’ 하고 울면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말로는 내 아이처럼 똑같이 대한다고 하지만 남의 애 야단치기가 쉽지 않다. 혼내고 나서도 뒤통수가 개운치 않다. 혼을 내도 5분이 채 조용하지 않은 생활. 끊임없이 질러대는 아이들 소음에 귀가 먹먹해 잠시라도 넋 놓고 조용히 쉬고 싶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수도에 줄 서서 물을 받는 아루샤 주민들. 좋은 집들에도 물 공급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사진/ 김정미)

이해심 많은 세원 엄마 덕택에 직설적인 나의 성격이 용케도 크게 안 싸우고 간신히 버텨온 것 같다. 하지만 이게 계속 간다면 서로 이해가 될까?

“우리 따로 살자!”

통보에 가까운 나의 제안에 세원 엄마는 이해는 하지만 섭섭한 눈치다. 밤새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 같다. 의욕이 앞서 앞뒤 재보지 못하고 빠듯한 경비로 출발했고, 이미 항공료·차량·숙박 등으로 많은 돈을 지출했다. 나 또한 여행을 많이 했지만 한 곳에 정착해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생각 외의 지출을 계산하지 못했다. 특히 집값이 문제였다. ‘중간 가격’이 없어서 좋은 집은 한 달에 월세가 50만원 이상 나가는 반면, 원주민이 사는 집은 우리돈 2만~3만원이면 한 채를 빌릴 수 있다. 돈에 맞춰서 원주민 집에서도 살 계산을 해봤지만,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수도에서 줄서서 물을 받아와야 한다. 아무리 열악한 상황을 짐작하고 왔더라도 하루 내 줄 서서 몇 동이의 물을 받아서 살 수는 없다. 현지인은 물 얻으려 하루의 반을 소비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막상 살려고 가보니 안전이 문제다. 어쨌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들보다는 값지고 좋은 것들 아닌가. 시계와 카메라, 전자사전, 좋은 신발과 튼튼한 가방…. 옷가지 몇 개와 냄비 서너 개가 살림살이의 전부인 그들에게 나는 표적이 되겠지.

좋은 집이 몰려 있는 곳은 한 곳밖에 없어서 세원 엄마 집 근처에 새집을 구했다. 덩그러니 큰 정원이 있는 근사한 집. 피부 하얀 사람이 이사를 온다는 것은 곧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당이 있으니 정원사가 필요하다며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 달 월급 3만원.

도둑이 많아서 문도 열어주고 밤새 집을 지켜줄 ‘보디가드’ 역할 할 사람이 또 필요하단다. 정원사 일까지 겸하기로 하고 한 달에 4만원 주기로 했다. 집안일 해주는 가정부도 구했다.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어 흙먼지가 날리니 몇 시간만 입어도 옷이 흙투성이다. 현지인 집에서 일하면 한 달에 2만원이라는데 나에겐 4만원 달란다. 왜 비싸게 부르냐고 물으니 백인들은 돈이 많으니 많이 받아야 한단다. 이곳은 피부가 하야면 무조건 백인이라고 한다. 3만5천원에 집 청소, 빨래, 요리를 해주기로 하고 고용했다. 한 달 7만5천원에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 두 명을 고용하고 나니 갑부처럼 느껴진다.

옆집 문지기 꼬셔서 물 빼돌리다

이 집도 물 공급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커다란 물탱크가 마당에 묻어져 있어 가끔씩 공급되는 물을 저장해두고 쓰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요즘은 건기다. 특히 물 공급이 뜸해서 열흘에 한 번씩 수도가 나오는데, 나는 탱크에 저장된 물을 아껴써도 일주일 이상 쓰지 못하니 나머지 며칠은 바가지 물로 피난민처럼 산다.

그래서 돈 있는 집은 정부가 공급하는 수돗물을 안 쓰고 지하수 파서 자기네만 ‘펑펑’ 쓰는데, 마침 옆집이 지하수 파서 쓰는 집이라 물 한 탱크만 팔라고 했다. 그러나 문 꽝 닫고 들은 척도 안 한다. 그 집 문지기를 잘 꼬셔서 “주인 없는 시간에 물을 좀 주면 돈을 주겠다”고 하니 3만원 월급 받는 문지기가 신이 나서 고무 호스를 연결해 물을 퍼준다. 한 탱크 받고 3천원을 주니 입이 헤 벌어지며 언제든 부탁하란다.

모든 것이 풍족한 한국과는 많이 다르지만, 자! 이제부터 아루샤 생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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