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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끝없는 초원, 드디어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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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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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 엄마’답게 아프리카의 와일드 라이프에 단박 끌려 결정
출발 다가올수록 한번도 말리지 않는 남편을 원망도 해봤지만…

▣ 구혜경/ 방송작가·세원, 윤재 엄마 peace@ktrwa.or.kr

나는 시골 촌년이다. 초등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졸업했지만 누구의 시구처럼 내 삶의 8할은 시골에서의 추억들로 가득 차 있다. 시골 읍의 수의사집 딸이었지만, 외가가 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농사를 짓고 있어서 나는 외갓집 동네 오빠들과 뒷동산으로 소 꼴을 먹이러 다녔다. 소나무에 메어놓은 그네를 탔고, 무덤가에 핀 패랭이꽃과 할미꽃을 꺾어서 꽃병에 꽂았다. 냇가로 멱을 감으러 다녔고, 따뜻해진 돌을 귀에 대면 귀에 들어간 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오는 날이면 무당개구리가 헤엄치는 것을 지켜봤고. 철길에 올려놓은 병뚜껑이 납작해지면 그것으로 딱지를 쳤다. 감꽃이 떨어지면 목걸이를 만들었고, 학교 운동장에서 별을 셌다.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각박한 도시생활과 늘 쫓기는 일 속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나이로비는 추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것들을 해줄 수 없을까 꿈꿔왔다. 늘 서울 근교, 자연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갈까 하는 궁리를 했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자연 속의 삶이란 별장 생활 같아 보였다.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자연을 아이들에 주고 싶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호 엄마의 제안은 반갑고도 엄청난 것이었다. 아니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것이었다. 자연, 그것도 때묻지 않은 아프리카… 와일드 라이프(wild life)….

케냐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로 떠나기 위한 차량 점검. 단단히 채비를 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을 안고 국경을 건넜다. (사진/ 구혜경)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려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비상용 약품을 준비하기 위해 찾은 병원 의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왜 그렇게 더럽고 시설도 좋지 않은 곳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냐며 타박이다. 안면이 있는 의사 한 사람은 당장 비행기를 취소하라고 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한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멍하니 있다가 처방전 쪽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지인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캐나다나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도 아니고 하필이면 왜 아프리카냐고 묻는다. 이왕이면 더 좋은 문물을 경험하고, 영어 연수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얘기다. 내가 원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이고,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란 것이 내 생각이었다.

여러 종류의 모기약에서부터 항생제와 비타민, 감기약, 이가 생겼을 때 퇴치할 약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약을 챙기니 한 상자다. 해외여행이라고 해봤자 신혼여행이 전부인 나는 밤마다 만리장성을 쌓았다가 허물었다가를 반복했다. 갈 날은 다가오고 어느 날은 정말 무모한 내 계획에 대해 한 번도 가지 말라고 잡지 않는, 왜 가느냐고 말리지 않는 남편을 원망했다. 혹시 아이들 중 하나가 말라리아에… 체체파리에… 내가… 혹은 누군가가… 그렇담 그렇게 의사들에게 호언장담하던 내 얘긴 뭐가 되나. 떠나기도 전에 나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탄자니아, 한 번도 내 인연의 끈이 닿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곳이다. 막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서 국립공원이 많은 나라로 소개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 산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은 신이 나 있다. 둘째 윤재는 “아프리카가 너무 궁금해”를 연발한다. 그러곤 “나는 영어말을 하나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한다. 말은 배우면 되고 그 사람들도 우리말을 못한다고 얘기해주니 안심한다.

7월25일 인천공항을 떠났다. 동아프리카의 관문인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물건을 좀더 구입해 탄자니아로 가기로 했다. 나이로비는,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메트로폴리스다. 필요한 물건이 대부분 있고, 가격도 적당하기 때문에 사파리나 킬리만자로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케냐 나이로비에서 물건을 구한다.

나이로비에 사는 교민으로부터 우간다에서 가져온, 우리 쌀과 비슷한 10kg짜리 쌀 6포대를 샀다. 다른 건 없어도 쌀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걸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몇 달 살다 온다고 하니 지인들 대부분이 짐 많겠구나 하곤 그래도 여름옷만 가져가면 되겠네 했다. 아프리카 하면 흔히 연상하는 것이 더운 날씨니까. 나 역시 그랬다. 케냐의 나이로비는 적도에서 남쪽으로 140km 떨어져 있어서 아주 더울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해발 1700m 위에 도시가 있어서 높은 산에 올라간 것처럼 덥지 않다. 아니 오히려 춥다. 나이로비에서 물품을 준비하는 내내 우리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담요와 온풍기를 사고, 밤엔 겹겹이 옷을 입혀 아이들을 재웠다. 높은 산에서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간다에서 가져온 쌀 6포대를 사다

물품 구입을 끝내고 차 트렁크와 지붕에 잔뜩 짐을 실은 우리는 케냐 나이로비를 떠나 국경도시 나망가로 향했다. 우리는 나망가에서 다시 아루샤까지 덜컹거리는 길을 달려야 한다. 아루샤는, 그러니까 우리 두 가족이 새로 보금자리를 차릴 곳이다. 인구 약 15만 명의 킬리만자로의 남서쪽 80km 기슭에 있는 고원 도시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 아루샤까지는 4시간. 하지만 아이들도 있고, 짐도 많아 2시간 정도 더 걸릴 것을 예상했다. 늘 비행기를 타고 건너는 게 국경인 줄 알았는데, 육로로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라 묘한 느낌이었다. 케냐 출국신고와 탄자니아 입국신고를 차례로 하고, 우리는 탄자니아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직 길만 있을 뿐, 집도 없고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오로지 끝없는 초원만 펼쳐진 길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과 묘한 떨림 또한 함께 있었다. 나는 신이 내 편이길 기원하며, 아프리카의 제네바라는 아루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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