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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력대란, ‘보이지 않는 손’의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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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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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최악의 전력난에 시달리는 캘리포니아주… 전력공급 시장화가 전기가격 폭등 조장

사진/불야성을 이룬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야경.(GAMMA)
지난 1월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력예비율은 고작 1.5%에 달해 다시 한번 제한송전과 예고없는 단전의 위험에 시달렸다. 지난해 여름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전력수급 상황이 겨울들어 더욱 악화되자 주정부는 아예 지난해 12월부터는 사흘이 멀다 하고 긴급경계령을 발동했고, 급기야는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마저도 취소시켰다. 2차대전 때조차도 없던 일이다.

전력수급만이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도 폭등해서 일부 지역은 1년 전에 비해 2∼3배 비싼 요금을 물고 있다. 심지어는 집 월세보다도 전기요금이 더 나오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미국사회에서는 정말 들어보기 힘든 에너지절약 구호가 사방에서 쏟아져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이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 더 정확히는 에너지 낭비국인 것은 틀림없다. 전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사람들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30% 이상을 쓰고 있다. 겨울철에는 히터와 에어컨을 동시에(보온과 환기를 위해) 틀어놓는 광경도 드물지 않다. 그래도 캘리포니아는 ‘절약’하는 지역에 속한다. 1인당 전기소비량은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8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물론 캘리포니아의 1인당 전기생산량이 50위라는 점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재난으로 끝난 생산자·배급자의 분리


사진/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어느 주보다도 전력소비량이 많다. 전력시장에 주정부의 개입을 추진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데이비스(왼쪽).(SYGMA)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은 단지 수요-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규제완화-시장논리의 도입’이라는 의제가 깔려 있고, 지난 98년부터 시행된 사상초유의 실험인 ‘전력공급의 완전시장화’는 2년 만에, 현 주지사 데이비스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한 실패”이자 “재난”으로 판정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전력의 75%는 민간 전기회사를 통해 공급된다. ‘전기개혁’이 시행되기 이전에도 전력부문은 이미 민영화돼 있었다. 지난 98년의 시장화조치가 취한 가장 급진적인 개혁은 생산자와 배급자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2개의 거대 전기회사에는 전력망의 독과점을 인정했지만 발전분야는 철저하게 경쟁의 틀 안에 짜넣는다는 것이었다. 이 조처에 따라 이들 전기회사가 소유한 발전소를 매각하거나 인접한 다른 주의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사들여 전기생산을 ‘시장화’했다.

그 근거는 시장옹호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독과점 상태의 전기회사가 이윤을 보장받기 때문에 비용절감 ‘노력’을 덜 기울인다는 것(주 정부와 계약을 통해 어느 정도의 이윤을 보장받으므로 끊임없이 과잉생산상태를 유지한다는 비난), 그리고 환경운동(캘리포니아주는 워싱턴주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환경운동이 활성화된 지역이다)의 요구에 따라 개인들이 전기회사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청정·대체에너지원의 확대(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대체에너지의 80%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구매된다. 그 가격은 일반 화석연료 전기보다 월등히 높다)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주는 배급자와 생산자 사이의 장기계약을 특혜의 여지가 있다며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생산된 모든 전기가격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해산물 팔듯이 경매를 통해 이루어지게 됐다. 배급회사는 여기서 형성된 가격으로 전기를 사들여 각 가정에 공급하도록 됐다. 4년간의 경과규정을 두어 이동안의 가정전기요금은 주정부와 협상하도록 했지만 샌디에이고와 같은 일부 ‘급진적’인 도시들은(샌디에이고는 미국 서부지역 공화당의 핵심도시이다) 소비자가격마저도 이같은 도매가격에 연동되도록 했다.

뒤늦게 개입의사 밝혔으나…

사진/캘리포니아주의 풍력발전소 전경. 애초에 주정부는 대체 에너지원을 확대한다는 목적 아래 전력시장의 자율화를 추진했으나 이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SYGMA)
처음 이 계획이 입안될 때만 해도 전기는 남아돌았고(보유율이 30%를 넘었다), 경기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지난 1996년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만장일치로 관련 법안을 개정했을 때의 목표는 “전기요금을 내리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전기회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재활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대하며 거대 민간 전기회사의 부담을 덜어주고 좀더 청정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건설을 촉진한다”는 거창한 것이었다. 이는 환경운동과 값싼 전기요금, 동시에 민간 전기회사의 효율성 제고라는 기업·소비자·정부를 모두 만족시키는 ‘윈-윈’게임,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고’식의 환상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이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는 방안은 ‘만능해결사’인 시장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의 개입을 없애면 시장의 경쟁을 통해서 이 모든 구상은 현실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경기가 좋아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환경운동의 반대로 10년째 신규발전소 건설이 없는 캘리포니아주에 전력수요는 급증했다. 지난 98년부터 기존의 전기회사들이 소유하고 있던 발전소를 매각하기 시작했을 때 낙찰가격이 예상가격의 4배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에어컨의 열기가 도시를 데우자 전력공급은 바닥을 드러냈고 전기 도매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폭등한 도매가에 전기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던 배급회사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주 정부에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했고(이들은 지금까지 110억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주 정부는 지난해 말 10%의 전기요금 인상을 허용했지만 어림도 없는 인상률이라며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사상 최초의 가정용 전기요금 자유화 조처를 취했던 샌디에이고시 주민들은 날아든 요금통지서에 경악했고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늘도 캘리포니아주 편이 아니었다. 여름이 지나면 한고비 넘을 것 같던 전력사정은 기상악화로 겨울이 되자 더욱 심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전기가 시장의 상품이 아닌 공공재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기 시작했다. 워싱턴으로, 월스트리트로 전기공급문제를 해결하느라 돌아다니던 데이비스 주지사는 급기야 이달 초 이제까지의 모든 탈규제·시장화 조처를 철회하고 정부가 전력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명했다. 시장의 힘을 신봉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며 다시 발전과 배급분야를 ‘국유화’(정확히 말하면 ‘주유화’지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으로도 안 될 경우에는 더 ‘급진적’인 조처도 취할 용의가 있다고 데이비스 지사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시장이 할퀴고 간 상처가 그렇게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우선 가까운 시일 내에 충분한 전력공급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기존의 배급회사들이 지게 된 채무를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워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이다). 시장이 비록 캘리포니아에서는 실패했지만 아직 그 행군을 멈춘 것은 아니다. 텍사스주도 내년부터는 전력분야를 완전 시장화할 예정으로 있다(이 법안은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주지사로 있던 지난 99년 통과됐다).

한국도 같은 길 갈까

텍사스주의 시장주의자들은 캘리포니아와는 사정이 다르며 규제완화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뉴욕주와 뉴저지주 등도 일부 유사한 방식을 채택하거나 할 예정으로 있다.

한국전력을 민영화할 계획인 한국도 언젠가는 같은 길을 밟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여름철 순간최대 전력사용량이 생산량에 근접한다고 대형건물의 실내온도를 규제하는 ‘행정지도’가 가능할까. 아니면 그때는 전기료를 올려서 수요와 공급의 신비로운 곡선을 그려나갈까?

뉴욕=이공순 통신원ksl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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