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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핼러윈 대 홀리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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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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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의 상업성에 맞서 종교행사 ‘투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홀리윈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파리 도처에 널린 마로니에의 잎들이 우수수 곤두박질치는 계절이다. 나날이 짧아지는 해의 길이로도 모자라 마냥 흐린 하늘 아래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린다. 여기에 이브 몽탕의 목소리로 프레베르의 시 ‘고엽’이라도 곁들여지면, 분위기 만점… 이 아니라 세월이 무상하고 으스스하다. 그러고 보면 귀신을 기리고 귀신놀이를 하기에 딱 알맞은 계절이다.

프랑스에서 11월1일은 일명 귀신의 날이다. 잡귀가 아니라 성스러운(saint) 모두(tous)를 엄숙하게 기리는 ‘투생’(la Toussaint)이다. 그 기원은 여름의 종말과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면서 모든 산 것과 죽은 것들의 만남을 위해 행해졌던 켈트족 민속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 기독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9세기에 교황 그레고리 4세가 이즈음으로 날짜를 정하고, 지역문화의 특색이 더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년 중 가장 비가 많은 휴일이기도 한데, 궂은 날씨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꽃을 사들고 주검이 안식하고 있는 공동묘지를 찾는다. 그래서 휴일이지만 문을 연 꽃집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고 묘지 군데군데에 가을의 꽃 국화가 놓여 있다. 크리장템! 국화의 불어 이름은 이 계절에 걸맞게 엄숙하고 암울하다.

성령을 기리는 투생의 이브는 익히 알고 있듯이 악령의 날 핼러윈(Halloween)이다. 사라진 넋을 기리는 게 아니라 귀신을 홀리고 놀리면서 산 자도 귀신처럼 노는 날이다. 그런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 축제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 한 뿌리였지만 전자가 기독교적 전통이 가미되어 엄숙한 종교적 축제로 발전해 유럽 대륙으로 퍼져갔다면, 후자는 일종의 민속놀이로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전수되다가 19세기 신대륙 이주와 함께 대서양을 건너갔으니, 영미 축제인 셈이다. 이후 핼러윈은 미국에서 나날이 상업성을 더하면서 대성황을 이루는 축제가 되었지만, 투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궂은 날 하루 쉬면서 뉴스에 비치는 묘지 장면으로 기억되는, 축제조차도 ‘죽은 날’의 분위기를 풍겼다.


11월1일 투생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묘지를 찾는다. 비 내리는 페르라셰즈 공동묘지.

그러다 죽은 날에 생기(?)를 불어넣은 게 핼러윈의 역이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 생소했던 핼러윈은 변장 물품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상업 전술과 함께 뜨겁게 엄습해왔다. 핼러윈은 여름 바캉스를 마치고 연말까지는 한적한 소비시장에 활기를 더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 이런 상업적 분위기와 함께 프랑스에서 핼러윈은 귀신이 놀랄 정도로 급격히 파급됐다.

이젠 어린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너도나도 즐기는 축제가 되었고, 프랑스 가정의 30% 이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핼러윈을 즐긴다는 통계도 있다. 결국 크리장템을 들고 묘지를 찾는 이들보다 귀신 변장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도처에서 뻘건 호박 덩어리가 번쩍이는 핼러윈은 보기에도 투생보다 훨씬 ‘축제적’인 게 사실이다.

핼러윈의 침범에 특별히 반감을 일으킨 쪽은 투생의 독실한 신자들, 즉 기독교인들이다. 철학적·종교적 개념인 ‘죽음’을 대하여 경건함과 존엄성을 표하기는커녕 마구잡이로 곁들여지는 상업적인 문화가 특히 아이들과 젊은 층에 급격히 파급되는 데 대한 우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안티 핼러윈이며 홀리윈(Holywins)이다.

홀리윈은 2002년 이맘때 투생의 정신을 올바르게 전파하기 위해 교인들이 파리에서 만든 축제다. 그렇다고 묘지에서 장송곡을 부르는 건 아니고 시대가 시대니만큼 콘서트와 예술행사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기독교 복음축제다. 당신의 종교가 뭐든, 당신이 신도든 아니든 함께하면서 악령에 맞서 ‘성령’이 이기기를 기원하는 의미다. 핼러윈 대 홀리윈, 어쩐지 두 진영으로 갈라진 귀신들의 십자군 냄새가 나는 듯하다. 무신론자인 것이 남달리 무상해지는 이 계절, 성령이든 악령이든 진짜로 영원한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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