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대신 도덕성의 깃발을 들고
등록 : 2001-01-16 00:00 수정 :
지난 1월2일 브라질 전국에서는 새로 선출된 시장들이 일제히 취임식을 가졌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브라질 최대 도시인 상파울루의 새 여시장 마르타 수플리다. 곱고 깨끗한 흰 피부에 활짝 웃는 밝은 미소, 금발머리에 파란눈이 시원한 미모의 마르타 수플리는 대중에 이름이 알려진 이래로 항상 주목의 대상이었다. 하원의원으로 당선되기 이전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 여성과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내용의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여성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결혼한 지 36년째인 남편 에두아르두 수플리 상원의원은 상파울루 지방의 유서깊은 엘리트 집안인 마타라조 집안의 일원으로,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노동자당(PT)이 내보낼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마르타 수플리의 당선은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시장 선거에서 노동자당이 거둔 가장 큰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지난 89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점차로 사회주의 혁명의 추구라는 이데올로기 노선을 수정해온 노동자당의 변화가 마침내 브라질 시민들의 호감과 인정을 받고 있음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평소 당 내부에서 ‘핑크색’으로 취급돼왔던 마르타 수플리는 선거운동 초반부터 소수 집단의 인권보호와 부정부패 척결을 강력히 주장하는 반면 PT의 창당이념인 평등사회 건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당이 강세를 보여왔던 상파울루주 내륙의 공단 도시에서 시장 후보로 나섰던 노동자당의 강경파들이 일제히 패배한 것을 보면 앞으로 PT의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시사하는 바 크다. PT 내부에서 가장 급진적인 노선의 활동가들을 산출해온 근거지였던 전국유일노조(CUT)에서는 지난해 들어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 출신이 아니라 미술교사가 회장으로 당선됐다. 상파울루시뿐만 아니라 노동자당이 시장을 당선시킨 다른 도시들의 당선자 면모를 살펴보면 기성 정치인들의 부패상을 공격하면서 깨끗한 정치, 나무랄 데 없는 도덕성을 표방하고 나선 신인들이 대거 진출했음을 알 수 있다. 1차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32명의 PT 시장 후보들 중에서 당내에서 강경파로 구분되던 당선자는 단 한명뿐이었다.
브라질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히오 그란데 도 술’지방에서 10여년째 높은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는 PT 출신의 한 정치인은 이번 시장 선거결과를 두고 “이제야 노동자당은 정권을 창출하고 브라질의 사회 문제에 대안을 제시할 국민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마르타 수플리 시장은 취임사에서 최우선 과제를 저소득층의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지난 8년간 잘못된 시정책의 결과, 시의 금고가 바닥이 난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복지 사업에 우선 순위를 둘 수 있을 것인가가 우려되고 있다. 마르타 수플리 상파울루 시장의 행보는 PT가 진정한 사회개혁 세력으로서의 대중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