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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구원인가 덫인가 마거릿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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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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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1979년부터 1991년까지 영국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였던 그녀, 최근 팔순잔치를 치렀다. 화학을 공부하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정치를 하겠다’는 소녀 시절의 황당한 꿈을 잊지 않았던 그녀, 1992년 귀족 칭호를 얻어 케스티븐의 남작이 되셨던 마거릿 대처 할머니는, 세월을 잊고 부시 대통령과 전화로 수다를 떨다 20분 늦게 행사장에 도착해 자기 후임이던 존 메이저와 토니 블레어 총리를 비롯해 여왕마마와 수백 명 VIP를 기다리게도 했지만, 수렁에 빠진 ‘대영제국’을 일으켜세운 구원투수였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둔하고 비대해진 노조의 횡포 탓에 자동차, 운수, 병원, 청소 등 사회 기간 부문이 줄곧 마비되고 물가는 치솟는 악순환의 덫에 걸린 채 IMF 구제금융을 받을 만큼 경제가 파탄난 이른바 ‘영국병’을 말끔히 고쳐놓은 여자. 그녀가 보수당 당수가 되고 영국 최초 여성 총리가 되었을 때, 아무래도 남성 정치가와는 다른 면모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대처는 어떤 남성보다 대차게 노조에 맞섰고, 몹시 강경하되 합리적인 대처 방안으로 그들의 허세를 꺾어놓았으니, 아둔하고 혼탁한 노조와 강철 여인의 만남에 따른 결과는 타산지석으로 삼음직하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붙은 포클랜드와의 한판 승부에 핵잠수함까지 동원해 ‘제국의 영화’를 확인시킴으로써 어리석은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조폭 두목 같은 정치 행태를 스스럼없이 재현했다. 살판났다고 환호하며 날뛰는 군중 틈에서 “쓸모없는 전쟁에 희생된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어머니들의 목 놓아 울부짖는 소리쯤은 밟아버려도 끄떡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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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녀는 정직과 소박, 자조 정신과 보살핌의 화신인 빅토리아풍의 현모양처로, 나라 일이 암만 중해도 집에만 가면 완벽한 가정주부로 변신해 밥도 손수 짓고 빨래도 직접 해 낭군과 아이들을 입히고 먹이는 스위트 홈을 사수하고도 “저는 보통 주부입니다”라며 끝까지 겸손을 떠는 슈퍼우먼 강박증을 퍼뜨렸으니, 가부장제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전설 속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 아닐 수 없다.

대찬 리더십과 능란한 외교정책으로 철의 장막 소련을 붕괴시킬 계략도 철두철미 세웠던 철의 여인 대처는 레이건과 손잡고 고르바초프의 등을 두들기며 냉전의 지루함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대신 국경 없는 시장을 활짝 열어 불타는 경제전쟁의 포문을 열게 했고, 그에 따른 세계 질서의 변화는 21세기 지구촌의 재앙 ‘세계화의 덫’이 되어 우리 발목을 붙드는 새로운 족쇄가 되었으니, 이 족쇄에서 빠져나올 계략과 실천은 그녀와는 전혀 다른 감성의 정치 지망 소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길 소망할 따름이다. 아울러 또 다른 족쇄들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무수히 경계하고 다짐할 일이 있으니, 권력을 나누자고 소리치던 집단의 꾸준한 자기 점검과 성찰 그리고 역사로부터 배우는 겸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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