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아프리카국가들의 독립을 식민열강이 풀어놓은 선물 보따리처럼, 혹은 자를 대고 빗금친 결과로만 이해하게 된 배경에는 서구중심의 세계관이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십자가도 없는 무덤>은 식민주의자들에게 수탈당한 땅을 되찾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마우마우독립투쟁에 참여했던 역사의 주체들에 대한 기념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95년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된 케냐로 백인들의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면서 평화로이 농경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던 키쿠유족 부족민들은 토지를 수탈당하고 백인소유 농장의 임금노동자로 전락한다. 토지는 키쿠유족 전통사회에서 부와 행복,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될 만큼 삶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는데, 식민당국의 강압적인 토지수탈로 키쿠유 부족사회의 전통적 농업방식이 붕괴되고 커피와 차를 재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농업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토지를 수탈당한 농민들은 저임금, 실업난, 빈곤의 구조화라는 사슬에 묶여 신음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강탈당한 땅과 주권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무장투쟁의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마우마우해방투쟁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무력투쟁의 대의와 기치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한 아프리카, 유럽인들을 위한 유럽’이었다. 마우마우전사들은 비밀리에 맹세의식(sherehe ya kula kiapo)을 행해 동지들간의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한편 백인정착민들, 식민당국의 주구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던 이른바 ‘검은 백인들’에 대한 응징과 무력투쟁을 전개해나갔다. 역설적인 것은 마우마우전사들 중 다수가 영국군에 소속돼 인도와 버마전선에 참전했던 케냐인들이었는데 이들은 백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되는 것을 직접 목격하며 백인들에 대한 패배의식과 신화를 떨쳐내고 군사지식과 전투경험을 습득해 이를 반식민해방투쟁에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우마우전사들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식민당국은 앤빌(Anvil)작전을 펼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강경책을 동원하는 한편 케냐인들을 무마하기 위한 유화정책도 병행해나갔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식민당국은 일반주민들이 마우마우전사들에게 식량과 은신처 제공과 같은 협조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전통가옥을 불태우고 강제수용소촌에 집단 거주토록 하는 조처를 취했다. ‘십자가도 없는 무덤’은 비상사태기간 동안 케냐의 민중이 강요당했던 잔악한 식민주의 역사의 서사적 기록이다. 식민주의가 어떻게 전통적 삶의 토대를 처참하게 붕괴시키고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지를 뭄비와 메자 블루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식민주의가 역사의 저편으로 저물고 독립은 선포되었건만 독립의 주체들이 잠든 땅 위엔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식민주의에 맹종했던 검은 백인들이 신생국가의 무대 전면에 등장한다. 유니언 잭이 내려간 자리에 창과 방패가 그려진 신생국가 케냐의 국기가 올라갔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깃발뿐인 독립’만이 확인된다. <십자가도 없는 무덤>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분노의 소리이며, 자유를 위한 투쟁은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될 때만이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