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녀를 살려내라!” 울리케 마인호프

582
등록 : 2005-10-27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나치 정권이 성립된 1934년에 태어난 울리케 마인호프는 예나의 박물관장이던 아버지를 다섯 살에 여의고, 소련이 동독을 점령하자 미술사학자였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열두 살에 서독으로 넘어오지만 2년 뒤에는 그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다. 부모님의 친구로, 나중에 독일평화연맹 창설자가 되는 레나테 리멕 교수가 그녀와 자매들의 양어머니 노릇을 해준 덕에 지적으로는 유복한 청소년기를 보낸 셈이다.


대학 입학 뒤 유려한 글발 날리는 인문학도가 되어 당시 서독 군대의 핵무장 움직임에 반대하는 좌파 학생운동의 짱으로, 아데나워 총리의 무자비한 반공 이념에 반기를 드는 한편,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는 독일 좌파의 대표적인 시사평론지 <콘크레트>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TV 시사프로의 대본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1961년 <콩크레트> 발행인 뢸과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고, 1965년에는 극우파의 대부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를 비방하는 기사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68혁명의 불길 속에 마초 남편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여성운동의 기치를 내건 선언문을 발표하며 들떠 있던 그녀, 학생운동의 영웅이던 루디 두치케가 암살당한 사건 이후, 분노의 딸로 다시 태어나 산업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불경한 조직을 꾸린다.

1970년, 후배인 안드레아스 바더의 구출을 기획하고 감옥에서 꺼낸 뒤 행동대원들과 요르단으로 건너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와,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적군파를 결성해 도시 한복판에 있는 은행에 폭탄을 던지고 극우 권력을 제거하는 테러리스트로 활약하는데…. 남미 전사들이 밑바닥에 속하는 농촌 인민들과 손잡고 민심을 쌓아간 데 견줘, 적군파 언니 오빠들은 조금은 병적이고 급진적인 행동파 지식인들이었다.

1972년 살인 및 강도죄로 체포되고, 상당한 관리와 마땅한 배려가 요구되는 정치범이던 그녀는 1974년 8년형을 선고받는다. 슈탐하임 교도소 독방에서 복역 중이던 그녀는 추측만 무성한 가혹 행위에 항거해 몇 차례 단식투쟁을 벌이는 갈등을 빚다 1976년 5월9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사인은 자살이라는 공식 발표에도 4천 명이 운집한 그녀의 장례식은 곧 “그녀를 살려내라!”는 시위로 변했으며, 그 죽음의 배후에 대한 의구심은 독일 현대사의 가장 불미스런 미스터리로 남았다.

쌍둥이 중 동생인 베티나 뢸은 맹렬 기자로 활약하며, 유럽의회 녹색당 당수가 된 68세대의 또 다른 영웅 다니엘 콩방디의 어린이집 성추행 사건과 독일 외무부 장관이 된 요슈카 피셔의 폭력행위 등 진보 마초들의 불미스런 과거를 파헤쳐 세간의 물의를 일으켰고, 한편 어머니 주검의 뇌를 빼내 포르말린에 담아두었던 의과대학 교수들을 고발했다. 울리케 마인호프의 정의로운 분노와 누적된 시름 또한 2002년 그녀의 주검을 복원하는 장례를 다시 치렀던 똑똑한 효녀를 지켜보며 조금은 잦아들었기를 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