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아, 공포의 5시간 수업

582
등록 : 2005-10-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교수의 개인 스케줄에 따라 학생들이 '소집'되는 베트남 대학원 과정

▣ 호치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naver.com

교수님의 강의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수도승의 알 수 없는 염불처럼 귓전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눈꺼풀을 꼬집어보고, 관자놀이를 양 엄지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러본다. 뒷목도 손바닥으로 세게 쳐본다. 그렇게 집중하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결국 또다시 생각은 끝없는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수업 끝!’을 맞이한다. 수업은 한번에 다섯 시간씩 진행되는데, 50%에서 80% 정도의 이해력을 갖고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교수님은 격려 반 우려 반의 눈길로 유학생을 주목하고, 때론 그 유학생 하나를 위해 강의의 속도를 늦추거나, 칠판 글씨를 또박또박 써주고, 그리고 커피 타임을 갖는다.

하지만 첫 과목에서부터 이미 기가 죽어 있던 나는 6개월의 모색 기간에서도 전혀 해결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첫 과목의 리포트 과제는 ‘주엔끼우’에 나타난 불교적 특성, 유교적 특성, 도교적 특성을 논하라는 것이었는데, 한 달 내로 A4용지 10장 이상 분량으로 제출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주엔끼우’가 베트남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 서사시라는 것, 내용이 춘향전과 비슷하다는 것뿐이었기에, 작품 분석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다른 과목의 과제들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서, 나는 처음 6개월 동안 모든 과목의 리포트와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학교에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포기를 위한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변명은 한순간일 뿐이었고, 학교에 발길을 끊은 6개월 동안 끝없는 자책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엔 너무 허무했고, 그 다음엔 부끄러웠고, 마지막엔 오기가 꿈틀댔다. 그렇게 1년 과정 전체를 펑크낸 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찾아간 학교는 고맙게도 날 제적시키지 않고 여전히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1년차 후배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돌아보면 지난 1년의 가장 큰 문제는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는 것.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갖고 혼자서 끙끙거렸으니 당연히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학교에 나간 첫날부터 과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리포트 자료를 얻고, 시험 예상문제를 얻을 수 있었다. 리포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집에 찾아가서 밤을 새워 같이 쓰고… 그러는 동안 산처럼 높아만 보이던 과목들이, 점차 언덕이 되고 낮은 둔덕이 되었다.

강의를 듣는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들. 베트남 대학은 입시를 위해 살 떨리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사진/ 최경자)


베트남의 대학원 과정은 학기와 방학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요일에 대한 특별한 고려도 없다. 교수의 개인 스케줄에 따라 과목이 개설되고, 학생들은 언제나 ‘5분 대기’ 상태로 있다가 수업에 소집된다. 석사과정은 과목당 30시간의 수업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하루에 열 시간씩 삼일 만에 뚝딱 해치우기도 하고, 한번에 다섯 시간씩 여섯 주 이상에 걸쳐 뜨문뜨문 이어가기도 한다. 전체 과목의 반은 학교 내부의 교수진이 맡고, 나머지 반은 전국의 모든 교수가 초빙되어 책임진다. 석사과정의 수업은 3년 기한으로 스무 과목의 전공과 세 과목의 공동교양(철학, 외국어, 컴퓨터)으로 구성된다.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입시에서 정원 위주의 성적순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수준의 점수를 획득한 수험생 모두를 신입생으로 선발한다는 점이다. 입시 결과는 철저히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을 뿐, 친구들과 살 떨리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학비가 후불제다. 돈이 없어도 일단은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학비는 논문 발표 이전까지 완납하면 된다.

남다른 유학을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베트남이 기회의 땅이 되어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베트남으로 한번쯤 눈을 돌려보시라.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