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요즘 에로스와 통정하며 ‘오! 마이 섹스’를 쌔근댄다는 모 기자의 교성 덕에 모 주간지가 품귀 현상을 빚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중 ‘난년들’이란 제목을 보고 박경원을 떠올리다 전혀 다른 내막을 알고는 좀 낯뜨거웠다. 난년들 중 난년인 박경원의 삶과 죽음을 그린 <청연>(푸른 제비)이란 제목의 영화가 드디어 완성돼 부산영화제에서 소개됐다니, 그 영화를 보고 이 땅에 또 얼마나 많은 비행소녀가 탄생하고 난년들이 될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우리의 원조 난년인 권기옥과 박경원은 각각 평양과 대구에서 1901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나는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결심을 하고 일찌감치 상하이로 망명해 중국 공군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여든살이 넘도록 장수를 누리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번영을 모두 목격한 비행소녀가 권기옥인 데 비해, 일지매의 누이를 떠올리는 억척 소녀 박경원은 일본에 유학했던 신여성으로 미국의 원조 비행소녀 아멜리아와 신기할 정도로 꼭 닮은 하늘 길을 갔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얘기를 내내 듣고 자란 박경원 역시 애초에는 조신하게 차려입고 고통의 늪에 빠진 환자를 돌보는 간호원 교육을 받았지만, 빨간 마후라 휘날리는 조선 최초의 비행소년 안창남의 번쩍이는 비행기를 보고 넋이 빠진 뒤 당장 자기 삶의 기수를 돌려버렸고, 또 비행 도중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해 요절했다. 더 공부해 의사가 되겠다고 부모님을 속이고 다시 동경으로 건너온 활달하고 덩치 좋은 박경원, 솥뚜껑처럼 두툼한 손에 힘이 장사라 어떤 남자와 맞붙어 씨름을 해도 지는 일이 없었고, 일본 총리 고이즈미의 할아버지와 염문설이 떠돌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니 그녀의 에로스는 어땠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 할아버지와 함께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군의 선전 비행에 동원되는 등 친일 행적 역시 논란거리이지만, 그녀는 당시 식민지 출신의 가난한 고학생 주제에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조센징’이란 말만 들렸다 하면 쫓아가서 따귀를 올려붙일 만큼 기개가 넘쳤다 한다. 1928년 3년짜리 동경 비행학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200시간의 비행 기록도 다 채운 그녀, 태평양 횡단 연습을 위해 먼저 만주까지 날아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1933년 기쁠 일 별로 없던 시절, 고국의 하늘을 빼놓고 만주 하늘부터 날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그녀의 금의환향을 학수고대하며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는 착한 동포들에게 그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여의도 공항에 먼저 착륙하기로 노선을 수정했다. 이날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 둑에 사람들이 몰려와 정오 무렵에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을 눈앞에 둔 박경원, 선글라스를 쓰고 날렵한 비행기 ‘청연호’에 올라탄 채 시동을 걸고, 현해탄을 넘어 서울 하늘에 멋지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안개에 갇혀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느 산중에 추락하니, 비보를 접한 조선과 일본 국민들은 함께 슬픈 눈물을 닦아야 했다.

우리의 원조 난년인 권기옥과 박경원은 각각 평양과 대구에서 1901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나는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리라” 결심을 하고 일찌감치 상하이로 망명해 중국 공군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여든살이 넘도록 장수를 누리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번영을 모두 목격한 비행소녀가 권기옥인 데 비해, 일지매의 누이를 떠올리는 억척 소녀 박경원은 일본에 유학했던 신여성으로 미국의 원조 비행소녀 아멜리아와 신기할 정도로 꼭 닮은 하늘 길을 갔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얘기를 내내 듣고 자란 박경원 역시 애초에는 조신하게 차려입고 고통의 늪에 빠진 환자를 돌보는 간호원 교육을 받았지만, 빨간 마후라 휘날리는 조선 최초의 비행소년 안창남의 번쩍이는 비행기를 보고 넋이 빠진 뒤 당장 자기 삶의 기수를 돌려버렸고, 또 비행 도중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해 요절했다. 더 공부해 의사가 되겠다고 부모님을 속이고 다시 동경으로 건너온 활달하고 덩치 좋은 박경원, 솥뚜껑처럼 두툼한 손에 힘이 장사라 어떤 남자와 맞붙어 씨름을 해도 지는 일이 없었고, 일본 총리 고이즈미의 할아버지와 염문설이 떠돌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니 그녀의 에로스는 어땠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 할아버지와 함께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군의 선전 비행에 동원되는 등 친일 행적 역시 논란거리이지만, 그녀는 당시 식민지 출신의 가난한 고학생 주제에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채 ‘조센징’이란 말만 들렸다 하면 쫓아가서 따귀를 올려붙일 만큼 기개가 넘쳤다 한다. 1928년 3년짜리 동경 비행학교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200시간의 비행 기록도 다 채운 그녀, 태평양 횡단 연습을 위해 먼저 만주까지 날아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1933년 기쁠 일 별로 없던 시절, 고국의 하늘을 빼놓고 만주 하늘부터 날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그녀의 금의환향을 학수고대하며 감격의 눈물을 닦고 있는 착한 동포들에게 그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여의도 공항에 먼저 착륙하기로 노선을 수정했다. 이날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 둑에 사람들이 몰려와 정오 무렵에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동포들의 뜨거운 환영을 눈앞에 둔 박경원, 선글라스를 쓰고 날렵한 비행기 ‘청연호’에 올라탄 채 시동을 걸고, 현해탄을 넘어 서울 하늘에 멋지게 그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안개에 갇혀 일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느 산중에 추락하니, 비보를 접한 조선과 일본 국민들은 함께 슬픈 눈물을 닦아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