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1970년대 영어의 남성 중심 어법에 눈뜬 언어학자들은 ‘English’를 남성(men)의 소유물인 ‘Menglish’라 꼬집으며, 3인칭 대명사를 ‘그녀’로 대체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표지 그림에는 다음 설명이 붙어 있었다.
“By age 17 a human being may know 80,000 words; how does she do it?”(열일곱이면 사람은 8만개의 어휘를 습득하는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까?) ‘사람’을 받는 인칭대명사를 관행인 그(he) 대신 그녀(she)로 바꿔 써본 것이다. 매사를 남성이 대표하고 여성의 존재는 증발시켜버리는 문법 효과는, 명사와 형용사를 여성·남성·중성 등 젠더로 나눠 쓰는 독어나 불어의 경우 더욱 강력해서 사사건건 여성을 뺀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상황이 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왈, “건강한 ‘사람’은 여자 없이 6주 동안 견딜 수 없어요“. 콜 전 독일총리 왈, “가족을 아끼는 ‘사람’은 부인도 소중히 여긴답니다”. 가난한 편모슬하에서 감성이 풍부한 문학소녀로 성장한 루이제 푸슈는 불혹에 접어든 1984년 <독일어는 남성전용 언어>라는 책을 통해 그토록 사랑했던 ‘모’국어의 곳곳에 숨은 남녀차별 전략을 질타하며, 20년 가까이 ‘독일어 뜯어고치기’에 매진한 결과 현대 독일어 곳곳에 양성평등 정신을 구현하는 개가를 이루었다. ‘여성주의 언어학’을 고집하다 교수직에서 밀려났지만, 그녀의 논리는 학문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으로 확산됐고, 1980년대 말 모든 법조문에 들어간 성차별적 표현을 깡그리 수정하는 기초가 된다. 그 존재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법조문 탓에 여성은 자기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는 통찰의 타당성이 인정됨에 따라, 계약서에 간단히 ‘집주인’(남성)이라 쓰는 대신 ‘여성 집주인’과 ‘남성 집주인’을 이어 쓰다 보니, 안 그래도 조잔한 법조문들이 더욱 번거롭고 구차해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강제’를 동원해 남성 위주의 편파적 시각을 교정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효력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언어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경제성을 포기하면서 굳이 번거로운 혀놀림 혹은 손놀림을 실행하는 까닭은, 그 성가신 울림이 나의 개혁과 세계의 개혁을 동시에 실현하는 풀뿌리 혁명의 떨림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와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믿음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 드러내기’는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존중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말에서 ‘3인칭 단수’라는 표현 자체가 서양어의 번역 형식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나, 기왕 쓰는 말, 영어 ‘she’에 해당하는 ‘그녀’를 삼가고 ‘그’나 ‘그이’로 무작정 통일하기는 여성주의 언어학의 기본 원리를 역행하는 오류다. 가를 건 가르고 구분할 건 구분하며, ‘그녀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노력이 요구된다. 여성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 활동을 드러내서 표현하지 않는 언어는 성차별적이다.

“By age 17 a human being may know 80,000 words; how does she do it?”(열일곱이면 사람은 8만개의 어휘를 습득하는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까?) ‘사람’을 받는 인칭대명사를 관행인 그(he) 대신 그녀(she)로 바꿔 써본 것이다. 매사를 남성이 대표하고 여성의 존재는 증발시켜버리는 문법 효과는, 명사와 형용사를 여성·남성·중성 등 젠더로 나눠 쓰는 독어나 불어의 경우 더욱 강력해서 사사건건 여성을 뺀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상황이 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왈, “건강한 ‘사람’은 여자 없이 6주 동안 견딜 수 없어요“. 콜 전 독일총리 왈, “가족을 아끼는 ‘사람’은 부인도 소중히 여긴답니다”. 가난한 편모슬하에서 감성이 풍부한 문학소녀로 성장한 루이제 푸슈는 불혹에 접어든 1984년 <독일어는 남성전용 언어>라는 책을 통해 그토록 사랑했던 ‘모’국어의 곳곳에 숨은 남녀차별 전략을 질타하며, 20년 가까이 ‘독일어 뜯어고치기’에 매진한 결과 현대 독일어 곳곳에 양성평등 정신을 구현하는 개가를 이루었다. ‘여성주의 언어학’을 고집하다 교수직에서 밀려났지만, 그녀의 논리는 학문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으로 확산됐고, 1980년대 말 모든 법조문에 들어간 성차별적 표현을 깡그리 수정하는 기초가 된다. 그 존재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법조문 탓에 여성은 자기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는 통찰의 타당성이 인정됨에 따라, 계약서에 간단히 ‘집주인’(남성)이라 쓰는 대신 ‘여성 집주인’과 ‘남성 집주인’을 이어 쓰다 보니, 안 그래도 조잔한 법조문들이 더욱 번거롭고 구차해졌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강제’를 동원해 남성 위주의 편파적 시각을 교정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효력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언어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경제성을 포기하면서 굳이 번거로운 혀놀림 혹은 손놀림을 실행하는 까닭은, 그 성가신 울림이 나의 개혁과 세계의 개혁을 동시에 실현하는 풀뿌리 혁명의 떨림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와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믿음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 드러내기’는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다양성의 존중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말에서 ‘3인칭 단수’라는 표현 자체가 서양어의 번역 형식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나, 기왕 쓰는 말, 영어 ‘she’에 해당하는 ‘그녀’를 삼가고 ‘그’나 ‘그이’로 무작정 통일하기는 여성주의 언어학의 기본 원리를 역행하는 오류다. 가를 건 가르고 구분할 건 구분하며, ‘그녀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노력이 요구된다. 여성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 활동을 드러내서 표현하지 않는 언어는 성차별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