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재야인사들 연이은 죽음에 대한 비공개 재판… 하타미 정권 한계와 가능성의 잣대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
“사건의 은폐·축소를 중지하라!”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호들이 이란에서 흘러나온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군사 법정에서는 지난해 12월23일부터 비공개 재판이 열리고 있다. 2년 전 잇따라 발생한 재야 지식인들의 의문사 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공판이다. 이번 재판을 둘러싸고 이란 안팎에서는 진상과 배후 규명 요구가 커지고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RSF), 국제사면위(엠네스티) 등 국제 인권단체들도 재판이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른바 이란식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라는 점과, 보수파와 개혁파 양 진영간의 힘겨루기 양상이 향후 이란 정국 전망의 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세계 어느 곳이건 의문사는 존재한다.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국가정보기관이 의문사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만, 공식적인 사인은 사고사나 원한 관계 또는 우발적인 범행 등으로 얼버무려졌다. 범인이 체포되더라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행한 것이다. 배후는 없다”고 주장하는 게 보통이다. 정권쪽에서는 사회 안녕 질서와 국익을 이유로 적절한 선에서의 조속한 매듭을 시도한다. 이란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 다만, 다른 국가들이 정권 교체 뒤에 푸는 과제를 이란은 보수세력이 엄존한 가운데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범인은 정보부 요원들
지난 98년 11월 이후 한달여에 걸쳐 재야인사와 지식인들의 의문사 사건이 잇따랐다. 다리우쉬 포루하르(70)의 죽음은 이란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 그는 98년 11월21일 자신의 저택에서 부인 파르바네 에스칸다리와 함께 난자당한 채 토막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같은 해 12월2일에는 문필가인 모하마드 모크타리가 실종당한 지 6일 만에 사무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고, 이어 12월12에는 번역가인 모하마드 푸얀데가 실종 4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에 앞서 11월18일에는 월간지 <이란 에 파르다>의 편집위원인 마지드 샤리프가 의문사를 당했다.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이란사회는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유언비어도 급속히 확산됐다.
다리우쉬 포루하르는 이스파한주 출신으로 법학도였던 21살 때 팔레비 정권에 저항운동을 전개하면서 투옥되고 이후 줄곧 반체제 진영에 서 있었다. 팔레비 정권이 붕괴하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까지 임시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살해당할 당시 이란 민족해방운동당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다. 다른 3명의 문인들은 표현의 자유 확대를 요구해온 대표적인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분야나 개혁운동권에서는 나름대로 명망가였지만 젊은 층이나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유명했던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련의 의문사 희생자로 떠오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사건 당시 보수적 언론 등에서는 이란사회에 불안을 야기시키려는 반 호메이니 무장단체인 무자헤딘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그러나 범인들은 정보부 요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문사 사건 발생 1개월여 만인 99년 1월4일 이란 공보부는 성명을 발표, 정보부 고위관리(차장급)인 사이드 에마미(그의 이름은 6개월이 지난 뒤, 그의 자살 소식과 관련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등 관련 혐의자들을 체포해 수사중이며, 이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발표했다. 99년 1월6일 보수파의 주요 인물인 공보부장관 나자프 아바디는 일부 정보부원들이 사건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지만 정보부 고위 간부들은 사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달 뒤인 2월9일 갑자기 공보부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일부 정보부원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시인한 게 잘못이라는 보수파의 압력과 좀더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의 공세에 굴복한 것이었다.
핵심 혐의자의 자살
99년 6월20일 이란국영 통신사인 는 사건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던 사이드 에마미가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나는 정보부 고위급이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이 의문의 자살을 했다는 점에서였다.
세간의 의혹이 더해진 것은 자살했다는 사이드 에마미의 행방 때문이었다. 매장됐다는 그의 시신과 관련된 사진은 물론이고 그가 묻혔다는 베헤시트 자흐라 묘지에서도 그의 무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발표는 있었지만 그의 죽음을 입증할 만한 현장 사진은 물론이고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용의자의 입을 막기 위해 도주시키거나 제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테헤란대학 학생들의 진상규명 요구 시위가 터져나온 것은 바로 그 직후이다.
비공개 재판과정에서 정보부 요원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자백하면서도 배후가 없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심은 독자행동이라는 이들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있다. 최소한 정보부장급이나 그 이상의 고위층이 연루됐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정권 차원의 통제도 심각하다. 사건 관련 보도가 문제시돼 폐간조처된 언론도 있고, 일부 언론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언론인 아크바르 간지는 일련의 연재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알리 라프산자니와 그의 내각에서 정보부장을 지낸 알리 팔라히한을 포함한 고위층과 종교법정의 검찰관 모흐세니 에게이에 등이 연루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는 99년 4월22일 이후 구속 수감돼 있다.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진상규명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1998년 12월9일 이래로 국경없는 기자회, 국제사면위, 국제인권연맹 등은 이란 당국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진상조사위의 설치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사건 직후 법무부 장관과 하타미 대통령도 신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했고, 사건 진상조사 특위까지 설치됐지만 아직도 이들의 사인이나 살해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공정한 재판부터 시작하라
비공개 군사 법정의 공판 진행 내용에 대한 여론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피해자 가족쪽의 변호사가 구속되는가 하면 변호사들이나 가족들의 재판 관련 자료 열람도 통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0일에는 피해자인 모크타리와 푸얀데 유가족의 변호인인 나세르 자라프산이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에 관련한 정보를 외국 언론에 누설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이제 유가족들은 변호사를 해임하고 재판에 불참하려고 한다. 언론을 묶고, 재판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일반인의 방청권이 금지된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게다가 보수파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법부가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하튼 이번 재판은 사건의 진상규명이라는 측면과 함께 이란식의 역사재평가 작업이라는 성격도 동시에 띄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재판의 결과는 하타미 정권의 한계점과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다.
암만=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사진/의문사 문제를 제기하던 개혁파 신문의 강제 폐간에 항의하는 대학생 시위.(AP연합)
범인은 정보부 요원들

사진/의문사한 다리우쉬 포루하르의 딸이 사망 1주기 추도식 때 아버지 그림 옆에 서 있다.

사진/개혁성향의 신문 <엠로우즈>의 편집장. 그는 괴한의 저격으로 중태에 빠졌다.

사진/언론인 아크바르 간지. 그는 일련의 연재기사를 통해 고위층이 의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