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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히자브의 변호사, 시린 에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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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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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희/ <이프> 편집인

1970년대 중반,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아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려 할 적에 난데없이 터진 석유 파동, 그 무렵 우리는 눈부시게 ‘있어 보이는’ 외국 애들과 우리 선수들이 벌이는 농구경기에 전교생이 동원돼 장충체육관에 갔다. 체육 선생님은 상대팀을 응원하라고 거듭 강조했고, 그래서 ‘우리 편’이 된 그녀들은 ‘두발 자유’는 물론 우리와는 비할 바 없이 자유롭고 발랄하며 윤기가 흘렀다. 비록 경기는 깨졌지만, 가진 건 미모와 석유밖에 없던 부자 나라 소녀들은 우리 앞에서 충분히 뻐길 만했다.

이 무렵 20대 후반의 나이로 그 나라에서 최초의 여성 판사가 된 시린 에바디는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의 귀국과 함께 “여자는 ‘너무 감정적이라’ 재판권을 줄 수 없다”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판단에 따라 법복을 벗고 대신 (검은 두건) 히자브를 쓴 채 변호사 활동을 하게 된 것만도 다행, 아니 그 가시밭길에서 새로 태어났다.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강요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사회구조적 모순에 반발하고 대항하기 시작한 두 딸의 어머니 에바디는, 마누라를 넷까지 둘 수 있고 이혼시 위자료 한푼 안 줘도 딸은 일곱살, 아들은 두살까지만 어머니에게 양육권을 허용하는 그 나라에서 여권을 보호하는 판례들을 줄줄이 통과시켜 가족법 개혁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20년 넘게 여성과 아동의 권리향상을 위해 애쓰다 보니, 억울한 반체제 인사들까지 그녀 품으로 찾아들어 이들과 교류하다 체포되고 투옥되기도 여러 차례였다. 이 모든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이슬람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내가 문제 삼는 건 이슬람이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다. 코란의 어디에서도 부정한 여성에게 돌을 던지는 형벌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는 시린 에바디의 노벨상 수락 연설에 대해 그 나라, 이란의 보수파들은 “서방이 노벨상을 미끼로 이란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저열한 시도를 했다”고 반발하며 “정통 이슬람 문화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까지 비난했다. 어느덧 이란 여성들에게 희망과 저항의 상징으로 “차기 대통령은 에바디”라는 탄성을 받게 된 그녀, 이슬람의 제1호 ‘공공의 적’이며 묵시록에 나오는 ‘암말’로 낙인되는 동안 가슴에 쌓인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길고 긴 사연을 정리해, 최근 모씨의 회고록과 비할 바 없는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회고록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들을 ‘악의 축’이라고 했던 ‘적과의 교역’을 금하는 율법에 따라 미국 내의 출간은 강력 저지당하고 있다.

한편 그녀의 회고록이 상당 부분 미국의 치부도 폭로하고 있어 ‘악의 축’인 이란의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국의 남자들 또한 수단과 쿠바와 북한의 작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엄격한 판금 규정에 따라, 이 책을 내겠다고 계약하는 출판사에는 최소 10년 징역과 25만달러 혹은 100만달러의 벌금형을 때릴 준비를 마쳤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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