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프랑스혁명의 정신이라는 자유·평등·박애 중 ‘박애’는 원래 서양말의 ‘형제애’(brotherhood)를 의역한 것이니, 여자는 빼놓고 남자들끼리의 우애라, 자유와 평등도 결국 남자들의 자유와 그들 사이의 평등이었다. 이를 동양에 들여오며 한결 더 넉넉하게 그 경계를 허물고 ‘박애’라 표현했던 그 누군가의 양성평등적 감수성에 우리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해야 한다. 대부분의 서양말에서 인간은 곧 남자와 한 단어라, 그들의 무의식에는 종종 “여자도 인간일까?” 하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하긴 인본주의의 화신인 공자님을 봐도 그렇고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구약성서 10계명부터 (레즈비언을 제외한) 여자는 사실 ‘사람 인(人)’으로 치지도 않았던 거다.
1791년, 프랑스혁명 2년 뒤 이 엄청난 과오를 발견하고 자기보다 일곱살 아래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자매애에 대한 언급이 빠진)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여성이 빠진 반쪽짜리라며 ‘여권선언’을 새로 작성해서 보냈던 올랭프 드 구주, 왕정과 공화정의 극단적 대립 상황에서 공포정치의 폐해를 서슴없이 비판하고 심지어 루이 16세의 재판에서 왕을 변호하겠다고 공개서한까지 작성해 보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도 마땅히 혁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녀, “여성이여, 깨어나라! 인간 이성의 각성이 온 우주를 뒤흔들고 있으니, 네 권리를 깨달으라!”고 외치며 “여성은 연단에도 단두대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다 결국 2년 뒤 왕비마마의 뒤를 이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 각별한 선각자의 존재는 100년도 더 지나 여성운동의 역사를 추적하던 후배(!)들에 의해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페인 가까운 프랑스 시골 마을, 그 동네의 ‘볼테르’였던 퐁피냥 후작과 사랑했으나 신분의 차이로 맺어지지 못했던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1748년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섯에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지만 아들 하나 낳고 과부가 되어 큰 뜻을 품고 파리로 올라간다. 사교계 문사들과 재치를 겨루며 숱한 남자들의 구애를 받던 지성과 미모의 그녀, 결혼은 단호히 거부한 대신 재정적 후원자 노릇을 해준 첫 애인과 사이좋게 지내며 세태를 꼬집는 소설과 희곡을 줄줄이 발표하는데,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데다 제주도 말 정도로 표준어와 차이가 나는 사투리를 쓰던 그녀였으니 맞춤법과 철자가 엉망이라 글쓰기는 대필 작가에게 맡겼다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여자 홍길동, 때는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 올랭프 드 구주의 타오르는 정의감과 시대를 뛰어넘는 각성에 대해 1904년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 길루아는 자신의 박사 논문 ‘혁명 시기 여성들의 정신 상태에 대한 논고’에서 “8만권을 남긴 그녀의 서가”를 증거로 꼽으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고 ‘혁명 광기’에 시달린 “편집증과 히스테리”의 전형이었다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스페인 가까운 프랑스 시골 마을, 그 동네의 ‘볼테르’였던 퐁피냥 후작과 사랑했으나 신분의 차이로 맺어지지 못했던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1748년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섯에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지만 아들 하나 낳고 과부가 되어 큰 뜻을 품고 파리로 올라간다. 사교계 문사들과 재치를 겨루며 숱한 남자들의 구애를 받던 지성과 미모의 그녀, 결혼은 단호히 거부한 대신 재정적 후원자 노릇을 해준 첫 애인과 사이좋게 지내며 세태를 꼬집는 소설과 희곡을 줄줄이 발표하는데,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데다 제주도 말 정도로 표준어와 차이가 나는 사투리를 쓰던 그녀였으니 맞춤법과 철자가 엉망이라 글쓰기는 대필 작가에게 맡겼다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여자 홍길동, 때는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 올랭프 드 구주의 타오르는 정의감과 시대를 뛰어넘는 각성에 대해 1904년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 길루아는 자신의 박사 논문 ‘혁명 시기 여성들의 정신 상태에 대한 논고’에서 “8만권을 남긴 그녀의 서가”를 증거로 꼽으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고 ‘혁명 광기’에 시달린 “편집증과 히스테리”의 전형이었다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