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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간적으로’ 납치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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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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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경찰이 득실대는 멕시코시티에서 3인조 택시강도에 납치당한 이야기

▣ 멕시코시티=박정훈 전문위원 ojala2004@naver.com

멕시코시티 도심 한복판에서 행인을 붙잡고 강도를 만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라. 그럼 열에 예닐곱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전할 것이며 나머지는 친구나 가족이 겪은 일을 전해줄 것이다. 근데 그들에게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했느냐고 묻지는 마시라.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멕시코시티. 이곳에선 매일 하루 500건의 고발장이 접수된다. 하루 예순명의 행인이 강도에게 털리고, 스무채의 집과 마흔개의 가게에 강도가 침입하고, 100여개의 차량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 통계 수치에는 강도들도 코웃음을 칠 것이다. 아주 신중한 전문가들조차도 공식통계는 전체 범죄 발생 건수의 3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아예 한 경찰은 신고 건수는 전체 범죄 수의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난해 말 국제투명성기구는 멕시코 경찰과 검찰, 사법부가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패한 기관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멕시코시티 시민들은 원래는 1등일 텐데 뇌물을 먹여 2등이 됐다고 조롱한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경찰들은 억울하다. 한 도로경찰은 6개월에 한번씩 지급돼야 할 유니폼이 2년에 한번씩 지급된다며 실밥이 터져나가고 있는 자신의 제복을 보여준다. 순찰차가 고장나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수리해야 한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최소한의 직업적 자부심조차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진/ EPA)

그 경찰관은 부패에 대한 견해도 다르다. 멕시코시티 경찰청장은 매월 임금과 수당이 2천만원에 이르지만, 자신은 8년 경력에 약 500달러에 불과한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까짓 돈 몇푼 받는 것은 부패가 아니라 ‘선물’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의 부패는 천문학적 규모라고 항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멕시코 정당의 부패 수준이 멕시코 경찰 수준과 똑같다는 것은 국제투명성기구가 이미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그 규모의 차이를 조사한 기관은 없다.

지난해 말 친구와 택시를 타고 가다 3인조 강도를 만난 적이 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정신이 팔려 택시 운전사가 낯선 거리를 달려 공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택시 문을 열고 강도가 들어와서 눈을 감으라고 협박했다. 내 무릎 위에서는 십자인지 일자인지 알 수 없는 드라이버가 널을 뛰고 있었다. 그들은 “지갑의 위치만 알려달라”면서 “여러분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내게서 휴대전화와 현금을 빼앗아갔고 45분간 벌어진 납치극 뒤에 집으로 찾아가라며 택시 요금 100페소(1만원)까지 주고 떠났다.

공범 운전사는 체포됐고 나머지 두명은 도주했다. 그들은 ‘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범죄를 일삼던 조직 범죄 집단이었다. 범인을 체포한 경관은 체포 당시 100만원 상당의 페소화를 줄 테니 풀어달라는 유혹을 받았고,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두할 때는 범인의 가족이 돈을 줄 테니 유리하게 진술해달라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렇게 뇌물을 거부한 경찰관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내게 멕시코시티 경찰청장에게 편지 한통 써달라고 부탁했다. 기껏 현행범을 체포해가도 보복이 두려워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으려 한다며 탄식하기도 했다. 법정에 출두하는 판사마저 자신의 차량번호가 노출될 것이 두려워 자기 차를 이용하지 않고 택시를 타는 것을 보면 보복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체포된 범인은 대중교통 수단을 범죄에 악용하고 금품을 강탈한 중죄로 기소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담긴 통지서를 받고 이틀이 지난 뒤 내게 정체불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멕시코 전화 회사의 직원이라며 집을 방문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집에 전화를 놓는 데만도 1년 넘게 걸린 회사가 신고한 적도 없는데 먼저 방문하겠다? 나는 전화 회사에 연락해 고객의 신고 없이 기술자를 보내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런 일을 기사로 쓰지 말라고 부탁했던 담당 검사에게 전화하니 “당장 집을 나와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도대체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아냈을까? 그제야 형사 사건으로 검찰에 출두할 때 절대로 실제 주소와 전화번호를 남겨서는 안 된다던 한 변호사의 충고가 떠올랐다. 지금도 멕시코시티에선 ‘인간적인’ 범죄자들이 자포자기한 시민을 상대로 ‘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 ‘와일드 월드’는 <한겨레21> 해외 전문위원들이 세계인으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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