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의 얼굴’로 각인된 한국인… 왜 여성들에 대해선 그렇게 초라한 대우를 할까
‘추한 한국인’.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으로부터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가차없는 비판용’이라는 단서가 붙은 이 예민한 주제를 넘겨받고 참 많은 고민과 의심을 했다. 내가 한국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한 사회가 늘 다른 사회 구성원에 대해 품고 있는 일정한 ‘편견’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혹 어설픈 말이 두 사회 사이에 긴장감만 키우게 되는 건 아닌지….
어쨌든 내친 김에 용기를 내 타이 시민들이 지닌 ‘정형화’된 한국인이 어떤 건지를 먼저 한번 짚어보기로 했다. 이걸 ‘편견’이라 불러도 좋고 ‘오해’라 불러도 좋지만, 타이의 거리나 식당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겠다.
“내가 만약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지독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한국인’. 이게 우선 대표적인 선입견 가운데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흡연을 탐탐찮게 여기는 타이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줄담배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대개 교육받은 타이 시민들은 옆사람이 피우는 담배의 불필요하고 치명적인 연기로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데다, 법적으로도 잡지나 신문 같은 대중 매체들이 담배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다음으로 ‘여성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이건 주로 한국 남성들에게 해당될까? 어쨌든 타이 시민들은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으로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을 가보았거나 또는 한국인들과 교류한 경험이 있는 타이 시민들이 한국의 지배적인 남성문화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끼는 ‘공분’ 같은 것이다. 왜 한국사회가 여성들에 대해 그렇게 초라한 대우를 하는지? 같은 아시아 문화권 속에 있는 타이에서조차 놀라는 일이다.
여성을 무시하는 것도 유교의 영향일까?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왜 또 그렇게 인색할까. 큰 배포를 자랑하는 한국인들의 관용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인들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궁금증들이 일반적인 타이 시민들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의 한 후배 여기자가 한국에서 온 방문객을 하루 동안 안내한 뒤에 한 말이다. “한국 남성은 여성을 매우 저급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런 뒤, 후배의 말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만약 내가 외국인과 결혼해야 할 상황이라면 한국 남자는 최후 중에도 최후의 선택이 될 것이다.”
타이 시민들이 바라보는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다니는 한국인’. 대다수 타이 국민들은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을 구분할 때 주로 이걸 적용시킨다. 사실은 타이사람 자신들도 큰소리로 떠드는 일에는 한 경계 넘어선 경우지만, 어쨌든 이건 한국 단체 관광객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다는 현지인들의 뜻이 담긴 말이다. 그래도 한국인들에게 위안거리가 영 없진 않다. 타이 시민들이 느끼는 최고 ‘소음생산그룹’은 한국인이 아니고 홍콩이나 중국인들로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다음쯤이 아마도 한국 관광객들 자리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소음이란 ‘태도’나 ‘말썽’을 포함한 상징적인 의미다.
노조 파괴하는 노조 간부 출신
이처럼 타이 시민들 사이에 한국인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기는 하지만, 사실은 이런 부정적인 한국인에 대한 정형이나 인상이 옳다고만 여길 수 없는 중대한 결함이 하나 있다. 단언컨대, 대부분의 타이 시민들은 누가 홍콩이나 서울에서 왔는지 또는 타이페이나 도쿄에서 왔는지를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 일부의 경우는 한국인 자신들이 부정적인 ‘속성’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은 예가 하나 더 있다. 얼마 전 내가 방콕의 주요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새벽의 사원(왓 아룬)에 갔을 때 일이다. ‘한국 여성’이 사원을 배경으로 독사진을 찍겠다며 주변 사람들을 모두 밀쳐내는 풍경을 보고 같이 갔던 친구가 충격을 받았다며 총총히 불만을 터트렸다. “그 난폭한 여성이 한국사람이라는 확신이 있니?” 내가 되묻자 친구는 꼬리를 내렸다. 그 여성이 대만사람인지, 또는 일본사람인지 우리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런 선입견을 지닌 타이사람들 자신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구분할 수 없는 걸 두고, 큰소리치면 모두 중국인, 난폭하면 모두 한국인, 상냥한 모습은 모두 일본인 식으로.
한국인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 같은 건 이쯤하고, 진짜로 내가 하고 싶었던 ‘못난 한국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한국인은 범법자”, “한국인은 위선자” 바로 이 두 마디를 나는 처음부터 하고 싶다. 뱀, 곰, 멧돼지…. 타이의 야생동물들을 모조리 잡아먹는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범법자들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먹는 한국인” 타이의 현지 신문들에 대문짝만하게 오르내리는 제목이다. 그것도 매우 자주.
또 하나 ‘타이에 진출한 한국 투자업체들의 전설적인 반노동조합 정서’. 이게 나의 주요한 관심사다. 내가 취재한 바로는 ‘위선적인 한국인’의 자화상이 너무 잘 드러났다. 타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했던 한 한국 현지공장의 사장이 한국에서는 자기 회사의 노동조합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며 성실한 자세를 보였던 자였고, 현지공장의 감독은 자신이 한국 본사에서는 노동조합 지도자였던 것으로 밝혀졌으니, 이 위선적인 한국인들을 놓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야생짐승을 잡아먹는 한국인들이나 노조를 탄압하는 한국인들이나 비슷한 모습으로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음을 숨기지 않겠다. 그렇다고 야생짐승을 잡아다 한국인들에게 팔아먹는 타이 장사꾼들을 놓고 모든 책임이 한국인들에게 있다거나,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타이 사업가들이 득실거리는 판에 굳이 한국 사업가들만 나무라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 부분은 나의 부끄러움,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한쪽에 남겨두고.
소규모 개인관광을 권하고 싶다
‘추한 한국인’을 마무리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한국인들이 추악하다거나 못난 것이 아니라 타이사람들이 한국을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이 타이를 잘 모르고 있듯이.
역사를 따져봐도 한국과 타이의 관계는 성숙해질 기회가 없었다. 타이의 고대무역도 일본과 중국까지만 연결되었고, 현대에 들어서도 기껏 한국내전에 타이가 주제넘게 군대를 파견했다는 별로 흔쾌하지 않은 관계뿐이었다. 아니면 축구나 권투 같은 무모한 경쟁 속에서나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게 서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는 않았는지?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를 더 배우고 알아야 한다는 결론이 남는다.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규모 단체관광보다는 소규모로, 단체보다는 개인 관광을 권장하고 싶다. 이래야만 한국인과 타이시민들이 서로 얼굴을 맞댈 수 있고, 얼굴을 맞대야만 서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생길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역사적으로는 비록 소원한 관계였지만, 들여다보면 한국과 타이 사이에는 문화적 유사성이 많아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 고려청자라는 빛나는 문화유산을 지녔다면 타이도 마찬가지고, 음식문화만 해도 타이가 매운 고추를 즐긴다면 한국도 그렇다.
100년이 넘도록 아시아 전체가 유럽·미국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탓에 아시아인들 스스로가 아시아의 문화를 무시하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동질성이 깊은 아시아사회끼리 선입견과 부정적인 인상을 품게 되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
‘추한 한국인’이라는 주제를 자신있게 풀어 놓고 서로를 비판하고 충고하며 또 서로 다른 정신세계에 대한 학습을 통해 문화의 차별성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겠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탐색하고 그들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 명세서를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프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hruk)/ <더 네이션> 기자



사진/“참으로 부끄러운….” '한국인 보신관광'을 규탄하는 타이 야생동물단체 회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