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대형쇼핑몰에서 “깎아주세요” 연발하는 일본 젊은이들…한국 대중문화를 전파하는 구실도
요즘 일본 도쿄의 젊은이들이 ‘기무치’나 ‘비빔밥’ 못지않게 자주 쓰는 한국말이 있다. “깎아주세요”. 한국의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서나 들을 법한 이 말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말. 도쿄의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부야 거리 한복판에 동대문시장이 문을 열면서 흥정을 하는 한국식 시장쇼핑문화가 일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시장이 입주해 있는 대형쇼핑몰 파르코의 1층 외벽은 온통 ‘동대문시장’이라고 찍힌 무늬 글씨로 도배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건물의 3, 4층에 200평 규모로 55개의 점포가 개장한 동대문시장은 서울의 밀리오레나 두산타워 쇼핑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2평 남짓한 규모의 촘촘한 가게 배치에서 옷의 스타일이나 디스플레이 방식, GOD의 최신곡과 “깎아주세요”라는 말까지. 한국의 동대문시장과 다른 점이라면 3층 옷가게와 잡화점들 가운데 넓은 웨딩숍이 자리한 것과 모든 가게의 물건값을 한곳에서 계산하는 카운터가 따로 있는 점 정도였다.
가게 배치부터 디스플레이까지
사진/일본 동대문시장의 상인들은 모두 한국인. 주로 한국유학생들이 매장직원으로 채용되어 고객을 상대한다.
각각의 매장은 한국인들이 운영하고 있지만 동대문시장의 실소유주는 일본기업인 주식회사 마켓프로덕션이다. 한국에 자주 출장을 다니던 오쿠노 사장은 동대문시장을 돌아보며 ‘가격흥정’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고급브랜드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취향이 저가제품으로 바뀌면서 가격흥정이 흥미를 끌 것으로 기대했고,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한국관광에 동대문시장이 빠지지 않는 코스라 아예 상호도 동대문시장이라고 짓게 됐다.” 이곳의 매니저인 노부코 이와오가 말하는 판매전략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우리나라의 동대문시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전체 매상을 회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정가와 할인가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핸디터미널’이라는 할인기계도 개발했다. 일본 동대문시장의 한달 평균매출액은 1억5천만엔 정도. 새해 2월부터는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점포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도쿄 동대문시장의 성공으로 새해 봄쯤 요코하마쪽에도 패션도매전문매장을 열게 된다. 동대문의 거평 프레야타운에 있는 마켓프로덕션의 지사에는 일본 진출을 신청한 한국의 상인들이 100명을 넘었다.
일본 동대문시장에는 가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 옆 동물원> <조용한 가족> 등 일본에서 상영한 한국영화들의 포스터가 벽을 메우고 있고, 한석규, 자우림, 영화 <순애보> 등 한국의 따끈따끈한 문화정보를 소개하는 일본잡지 <레드 핫 페이퍼> 여러 권이 휴식을 취하는 일본 젊은이들을 위해 비치되어 있었다. 일본 동대문시장은 쇼핑이라는 전세계 여성들의 공통 취미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글·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사진·이정용 기자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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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들이 생각보다 귀엽고 싸서 좋아요. 일본의 옷가게들보다 유행에 더 민감한 것 같구요.” 친구와 함께 온 직장인 이토노 리코(29)의 손에는 스웨터와 스커트가 담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500엔 깎아줬어요.” 이토노의 동대문 쇼핑은 이날이 처음이었지만 이미 깎는 법을 배워왔다. 시장에서도 어김없이 정찰제가 지켜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격흥정을 하는 쇼핑몰이 생기자 방송과 잡지에서 크게 다루며 “깎아주세요”라는 한국말까지 가르쳐준 덕분이었다.
한국의 광장시장에서 정장매장을 운영하며 이곳에 스커트 전문매장을 차린 남경실(35)씨는 “깎는 게 신기해서 그런지 어떤 손님들은 계속 깎아 달라고 졸라서 머리가 아플 정도”라며 웃었다. 이곳의 스커트 가격은 5천엔 정도, 재킷은 9천∼1만2천엔 정도로 한국의 시장보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일본 물가에 비하면 파격적인 가격인데도 “깎는 데 재미붙이는 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똑같다”고 한다. 실제 할인율은 정가의 10% 정도로 가게마다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의 동대문시장 주인들은 모두 한국인으로, 남씨처럼 동대문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90%다. 이들은 일본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한국유학생들을 아르바이트 직원들로 채용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침체 노린 판매전략
사진/“깍아주세요” 일본의 동대문시장은 흥정에 의한 할인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핸디터미널'이라는 기계도 개발했다.

사진/동대문시장에는 흥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장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포스터와 한국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잡지들이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