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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감있는 또는 어이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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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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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버리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한다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부정적인 한국인 상? 긴시간 동안 이 주제를 놓고 골치를 앓았다.

내게 인종적인 편견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한국인이든 혹은 필리핀 주변에 등장하는 한국인이든, 그들이 내게 나쁜 인상을 준 적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이걸 한국인에 대한 나의 경험 부족 때문이라 말할 수는 없다.

잊을 수 없는 요셉과 김 아주머니


뉴욕에서 살았던 지난 시절, 우리집 주변에는 한국인과 아일랜드인 그리고 필리핀인들이 득실거렸고, 나는 늘 요셉이라 불렀던 한국인이 운영하던 식품점에서 야채를 구입했다. 매우 친절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던 그는 단 한번도 인사없이 나를 지나친 적이 없었고, 하다못해 파슬리 몇 포기라도 더 얹어주는 일을 잊은 적이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또 내 딸과 한반에서 공부했던 한국 아이 찰리의 상냥한 어머니도 좋은 인상의 한국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침마다 학교 앞에서 만나면서도 그녀는 결코 인사를 거른 적이 없었다. 비록 그녀가 어설픈 영어를 썼지만 풍부한 감정을 지녀 우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뒤 마닐라로 돌아온 내가 한국식당에서 불고기와 김치에 맛을 들인 뒤에도, 한국인들과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특히 내가 태-보(태권도-복싱)반에 가입하면서 알게 된 친구로 필리핀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게 지내는 한국인 김 아주머니, 그는 내가 교통난과 공해 때문에 끔찍하게 싫어하는 마닐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필리핀말을 배워 정붙여 살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필리핀에 대해 난도질하는 전형적인 외국인 이주자가 아닌 그녀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이런 나의 정서를 굳이 ‘야릇한’ 애국심 같은 것으로 여기지는 말길 바란다. 내 뜻은 한 인간에 대한 엄숙한 경외심이니.

오늘의 주제와 어울리게, 부정적인 한국인에 대한 경험을 하나 소개할까? 마닐라 중심부에 자리잡은 벼룩시장 스타일의 한 한국인 가게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는데, 이게 문제가 생겨 반품이나 할인을 요구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한국인 주인은 소리소리 지르며 나를 쫓아내버렸다. 이 한국인 가게에서 쫓겨난 나는 한국인 주인이 옥신각신 가격을 깎는 필리핀의 시장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필리핀에서 장사하고 살기 위해서라면, 필리핀 사람들이 셀닢을 깎아주고 깎으면서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한국인들 사이에는 에누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모래알같이 잔잔한 나의 경험이나, 그녀의 언어적 장벽과 개인적 변덕이 전체 한국인에 대한 인종적인 타박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따지고보면 우리가 인정하든 않든간에, 어느 인종에도 독점적인 장점과 단점은 없을 것이고 동시에 서로 다른 인종 사이에는 늘 반목과 편견이 존재해왔다는 것이 인류의 경험 아니겠는가. 이건 무슨 변명거리로 고집하는 말이 아니라 어떤 인종도 상대방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필리핀 양민학살과 일본, 그리고 한국

사진/한국과 필리핀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친구다. 최근 마닐라에서 벌어진 에스트라다 퇴진요구 시위.
한국사람과 필리핀사람들, 다행스럽게 이들 사이에는 역사적 관계를 살펴봐도 ‘오염된’ 피가 흐르지 않는다. 가령 필리핀과 미국이나 필리핀과 일본처럼 분쟁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록, 2차대전 중에 필리핀에서 양민을 대량학살한 일본군이 실제는 일본군에 징집당한 한국인이었다는 소문이 진실이더라도 별로 문제될 건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후손들 모두가 떠맡아 영원히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편이다. 역사적 오류에 대해서 인종 전체에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인가? 특히 이 필리핀 양민학살 문제에서 제국주의 종주국 일본을 제쳐두고 대리인 노릇을 했던 한국인을 단죄할 것인지?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한국과 필리핀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많은 한국 시민들이 필리핀의 민주화 투쟁과 성과를 인정하고 있으며, 필리핀 시민들이 한국의 근면성과 강인함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보자. 진정한 결속과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존재한다면 ‘편견’ 같은 건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편견이 실제든 어리석은 인상이든지간에.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 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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