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치른 코슈투니차 앞길은 첩첩산중… 극단적 민족주의 야당 등장, 구세력 청산과 경제안정은 불투명
지난해 12월23일 세르비아총선에서 밀로셰비치 세력이 거세됐다고 하지만, 발칸반도에 평화가 오리라고 성급한 전망을 내릴 일은 아니다. 일단 세르비아 의회를 지배하는 의석 분포의 변화만 본다면, 민주화의 봄이 오긴 왔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낙관할 일만은 아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연방대통령을 지지하는 18개 정당연합인 세르비아민주야당연합(DOS)이 250개 세르비아 의석 가운데 176석을 차지한 데 비해, 총선전 거대여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사회당(SPS)은 37석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10월 민중혁명의 자연스런 정치적 귀결이다.
‘흰독수리’와 ‘호랑이’ 제도권으로
그러나 세르비아 유권자의 30%쯤은 여전히 극단적인 세르비아민족주의를 내거는 정치세력들에게 표를 던졌다는 게 문제다. 밀로셰비치의 사회당을 제쳐놓고라도, 세르비아급진당(SRS)이 23석, 극우파 정당 세르비아통합당(SSJ)이 14석으로 세르비아 정치무대의 일각을 차지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극단적인 세르비아민족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 코슈투니차 정권이 세르비아 의회의 3분의 2를 지배하는 정치세력을 구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나머지가 간단치 않은 정치세력이라는 점에 눈길을 둘 필요가 있다.
우선 90년대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잇단 전쟁에서 인종청소라는 잔혹행위를 저질렀던 극단적인 세르비아민족주의 세력이 제도정치권에 본격 등장했다는 점이 12·23 총선의 큰 특징이다. 밀로셰비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극단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보이슬라브 세셀리가 이끄는 세르비아급진당(SRS)과 극우파 정당 세르비아통합당(SSJ)이 바로 그들이다. 보이슬라프 세세이는 보스니아내전(92-95년)에 개입해 ‘흰 독수리’라는 이름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을 이끌고 그곳 세르비아계와 힘을 합쳐 보스니아회교도와 크로아티아인들을 무자비하게 인종청소했다는 혐의가 따라 다니는, 말 그대로 극단적 민족주의자(ultra-nationalist)다. 보스니아내전에서 세르비아계를 군사적으로 지원했고, 뒤이어 코소보전쟁을 일으켰던 밀로셰비치조차도 세세이와 그의 세르비아급진당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을 정도다. 또다른 극우파 정당 세르비아통합당(SRJ)도 세르비아민족주의에 관한 한 세세이의 급진당에 뒤질 게 없는 골수 강경세력이다. 별명이 ‘아르칸’이라 알려진, 코소보전쟁에서 세르비아민병대를 이끌고 알바니아계 인종청소에 앞장섰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가 창당한 정당이 바로 세르비아통합당이다. 은행강도 전력이 있는 아르칸은 90년대 초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극단적인 불만세력들을 규합, 호랑이란 이름의 준군사조직을 만든 뒤 1991년 접경마을인 부코바르를 점령해 그곳 병원에 있던 250명의 크로아티아인을 집단학살하는 잔혹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다. 보스니아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전쟁범죄자로 지목되었다. 92년 4월 보스니아 스르비녜지역에 그의 호랑이 민병대가 도착한 뒤 한달 동안에 1400명의 보스니아회교도가 죽임을 당했다. 아르칸이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는 사실은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나토의 코소보공습 때 그 사실이 공개됐다. 그의 민병대가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게 저지른 인종청소 때문이었다. 필자가 99년 6월 나토군 주축의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을 따라 알바니아 국경을 넘어 코소보에 들어갔을 때 만난 알바니아 난민들은 ‘아르칸’이란 이름에 치를 떨었다. 코소보에서 약탈한 자금을 바탕으로 세르비아통합당을 창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그러나 2000년 1월 벨그라드의 한 특급호텔 로비에서 암살자의 총격을 받고 죽었다. 그의 의문스런 죽음을 둘러싸고는 인종청소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입을 막으려는 전쟁범죄공범들, 특히 밀로셰비치쪽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나돌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아르칸의 세르비아통합당이 당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정치권 일각에 진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르비아 유권자들의 정치정서가 극단적인 편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밀로셰비치는 완전히 퇴진했는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정치정서는 더 극단적이다. 지난해 10월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공화국인 스르프스카공화국에 갔을 때 필자는 세르비아계의 정치적 정서가 한마디로 극단논리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밀로셰비치가 정치적으로 밀려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세르비아계에겐 그가 지난 보스니아전쟁 기간중 자신들을 도와준 정치적 후견자나 다름없다. 이런 정서는 지난 11월에 치러진 그곳 총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현재 전쟁범죄자로 국제사회에서 수배중인 라도반 카라드지치가 지난 90년 창당한 세르비아민주당(SDS)이 온건정당인 세르비아사회민주당(SNSD)을 누르고 승리해 선거관리를 맡았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국제사회를 실망시켰다.
세르비아총선은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한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정당과 그 정당이 내세운 비례대표 명부를 보고 지지표를 던지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5% 이상의 득표를 한 정당이 250석의 의석을 득표율에 따라 나눠 갖는다. 아르칸의 세르비아통합당은 5.3%, 세셀리의 급진당은 8.5%, 그리고 밀로셰비치의 사회당은 13.5%이다. 사회당 당수인 밀로셰비치는 이번 총선에 후보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밀로셰비치는 정치무대의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12·23 총선의 패배로 밀로셰비치는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을까. 대답은 아니다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전에 비해 형편없이 찌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세르비아 국민들 사이에 15%라는 일정지분을 지니고 있다. 밀로셰비치나 혹은 그의 뒤를 이어 누군가 사회당의 새 리더십을 갖게 될 경우 상황 변화에 따라선, 잘 다져진 기존조직망을 활용해 차기선거에서 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이번 세르비아총선에서 아르칸의 세르비아통합당이 5% 이상의 득표를 하리라고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민중혁명으로 막강한 정치력을 훼손당한 밀로셰비치를 대신한 이들 극우 정치세력의 등장은 코슈투니차 정권으로 보면 골치아픈 존재다. 코슈투니차가 기대만큼 경제안정 등을 이루지 못하고 지도력에 허점을 보일 경우 이들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다. 이럴 경우 벨그라드 정국의 불안정, 나아가 발칸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코슈투니차 새 정권의 2대 과제는 밀로셰비치 신병처리를 비롯한 구체제 청산과 아울러 경제안정에 모아진다. 두 가지 모두 코슈투니차에겐 버거운 주제다. 여당세력도 18개 정당연립이라 저마다 목소리를 낼 경우 정책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코슈투니차 대통령과 조란 진지치 총리와의 불협화음 내지 권력투쟁설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12·23 총선의 주역이자 친서방 개혁주의자로 알려진 조란 진지치(48) 총리는 밀로셰비치의 헤이그 전범재판 회부를 반대한 코슈투니차와는 다른 견해를 밝혀왔다. 그는 “권력남용과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며 밀로셰비치와 그의 협조자들의 사법처리에 찬성하는 태도다. 그 배경에는 경제논리도 한몫 한다. 서방의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해서 밀로셰비치 처리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 또는 희망사항으로 꼽혀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섣불리 말하긴 이른 상황이다. 밀로셰비치 영향력 아래 있는 사회당은 물론이고 앞서 살펴본 대로 급진당, 사회당 등 극단적 성향의 정치인들이 팔짱만 끼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과 코소보도 부담
문제는 코슈투니차 정권이 커진 몸집에 걸맞게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하고, 국민들의 최대관심사인 민생을 안정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의 경제원조를 받는다 해도, 밀로셰비치 정권이 코슈투니차 정권으로 바뀌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란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를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가 코슈투니차로선 최대과제다. 문제는 이른 시일 안에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을 판이다.
유고연방 탈퇴를 바라는 몬테네그로를 달래는 것도 코슈투니차에겐 절체절명의 과제다. 코슈투니차는 연방대통령이기에, 연방이 해소되면 그는 정치적 위상은 놔두고라도 법적으로 설 자리를 잃는다. 남부 세르비아 접경지역의 긴장을 비롯해 코소보도 코슈투니차 정권엔 부담스런 짐이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사진/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은 아직 식지 않았다. 사진은 세르비아인에게 학살당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장례행렬.(SYGMA)
우선 90년대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일어난 잇단 전쟁에서 인종청소라는 잔혹행위를 저질렀던 극단적인 세르비아민족주의 세력이 제도정치권에 본격 등장했다는 점이 12·23 총선의 큰 특징이다. 밀로셰비치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오히려 더 극단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보이슬라브 세셀리가 이끄는 세르비아급진당(SRS)과 극우파 정당 세르비아통합당(SSJ)이 바로 그들이다. 보이슬라프 세세이는 보스니아내전(92-95년)에 개입해 ‘흰 독수리’라는 이름의 준군사조직(paramilitary)을 이끌고 그곳 세르비아계와 힘을 합쳐 보스니아회교도와 크로아티아인들을 무자비하게 인종청소했다는 혐의가 따라 다니는, 말 그대로 극단적 민족주의자(ultra-nationalist)다. 보스니아내전에서 세르비아계를 군사적으로 지원했고, 뒤이어 코소보전쟁을 일으켰던 밀로셰비치조차도 세세이와 그의 세르비아급진당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을 정도다. 또다른 극우파 정당 세르비아통합당(SRJ)도 세르비아민족주의에 관한 한 세세이의 급진당에 뒤질 게 없는 골수 강경세력이다. 별명이 ‘아르칸’이라 알려진, 코소보전쟁에서 세르비아민병대를 이끌고 알바니아계 인종청소에 앞장섰던 젤리코 라즈나토비치가 창당한 정당이 바로 세르비아통합당이다. 은행강도 전력이 있는 아르칸은 90년대 초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극단적인 불만세력들을 규합, 호랑이란 이름의 준군사조직을 만든 뒤 1991년 접경마을인 부코바르를 점령해 그곳 병원에 있던 250명의 크로아티아인을 집단학살하는 잔혹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다. 보스니아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전쟁범죄자로 지목되었다. 92년 4월 보스니아 스르비녜지역에 그의 호랑이 민병대가 도착한 뒤 한달 동안에 1400명의 보스니아회교도가 죽임을 당했다. 아르칸이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됐다는 사실은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다가, 나토의 코소보공습 때 그 사실이 공개됐다. 그의 민병대가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게 저지른 인종청소 때문이었다. 필자가 99년 6월 나토군 주축의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을 따라 알바니아 국경을 넘어 코소보에 들어갔을 때 만난 알바니아 난민들은 ‘아르칸’이란 이름에 치를 떨었다. 코소보에서 약탈한 자금을 바탕으로 세르비아통합당을 창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그러나 2000년 1월 벨그라드의 한 특급호텔 로비에서 암살자의 총격을 받고 죽었다. 그의 의문스런 죽음을 둘러싸고는 인종청소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그의 입을 막으려는 전쟁범죄공범들, 특히 밀로셰비치쪽의 소행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나돌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아르칸의 세르비아통합당이 당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정치권 일각에 진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세르비아 유권자들의 정치정서가 극단적인 편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밀로셰비치는 완전히 퇴진했는가

사진/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코슈투니차. 세르비아 총선은 그의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 않을 것임을 보여주었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