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치권을 휩쓴 두 가지 정치논쟁은 모두 외국인 논쟁… 통일 뒤 민족국가의 욕망은 깊어만 가네
최근 성장세로 돌아선 독일경제가 전문 노동력의 부족으로 호기를 놓칠 수 있다며 기업들은 외국인에 대해 노동시장을 조속히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를 통해 전통적으로 기민당(CDU), 기사련(CSU)의 지지세력이었던 기업들이 외국인 정책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기민당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프랑스 니스의 유럽정상회담에서 의결된 ‘유럽연합의 동유럽 확장’은 베를린을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독일 정부 노력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인구 8천만의 경제강국 독일이 인구 6천만의 프랑스와 동일한 의결권을 유럽연합 내에서 갖는다는 양보를 하면서까지 얻어낸 것이 폴란드, 체코를 비롯한 일부 동유럽국가의 유럽연합 가입 결정이다. 이와 함께 자유로운 노동의 이동을 보장하는 유럽연합 내에서 몰려들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에 대한 두려움이 독일 국민 사이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독일 정치권은 기민당, 기사련에 의해 주도된 2개의 정치논쟁(망명권 축소철폐, 주도문화 논쟁)에 계속 휩싸여 있다. 이 두 가지 논쟁은 모두 외국인 문제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독일사회가 시급한 여타 경제, 사회 문제를 제쳐두고 이러한 논쟁에 몰두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유럽의 중심이 되겠다!
“보트가 가득 찼다.” 이 말은 기사련이 집권하고 있는 바이에른주 내무장관 벡슈타인이 현재 독일사회가 망명자와 외국인 이민자들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쓴 표현이다. 그는 또한 지난해 2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 ‘유익한’ 외국인노동자들의 이민을 위해 ‘유익하지 않은’ 망명자들을 더이상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현 정부가 정보통신산업의 외국인노동자 취업을 위해 발급하려는 ‘그린카드’ 정책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망명권’ 삭제를 전제로 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망명권 삭제를 위한 헌법 개정. 이 요구에 연방정부 내무장관인 오토 쉴리도 지지의사를 밝히며, ‘외국인의 독일사회 통합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정치권에 망명 및 이민과 관련한 논쟁의 불을 지폈다. 정족수 3분의 2가 필요한 헌법개정은 현재의 정치구도상(이에 완고히 반대하는 녹색당, 사민당 내 좌파 분파 그리고 공산당은 의원 수 3분의 1을 훌쩍 뛰어넘는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논쟁 당사자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애초부터 불가능한 헌법개정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들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오토 쉴리는 1998년 이민자가 무려 35만명에 이른다는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이는 ‘한계 수용 능력’을 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독일을 떠나는 외국인의 수치가 빠져 있으며, 나아가 2차대전 이전부터 동유럽에 흩어져 살던 구독일인의 유입 숫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오히려 9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은 국내로의 이민자보다 해외이주자가 더 많은 나라에 속하게 된다. 또한 한해당 망명자 규모는 8천명에서 1만2천명 수준으로 이는 인구대비로 볼 때 유럽연합 내에서 하위권인 8위를 차지하며 오히려 끊임없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부터 망명자 폭을 확대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처지이다. 또한, 내국인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불법외국인 취업규모가 10만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외국인이 독일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어 독일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독일인들이 꺼리는 많은 분야에서(특히 건설업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어, 사실상 독일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 역을 맡고 있다. 따라서 벡슈타인의 ‘구분법’에 따르면 이들은 ‘유용한 외국 노동력’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망명권’ 삭제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국가정체성’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있다. 2000년 10월, 독일은 통일 1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러냈다. 이제 베를린을 기점으로 통일독일을 전체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들이 행사 곳곳에 묻어 있었다. 지정학적으로도 서부유럽의 중심이 파리였다면 동유럽까지 확장된 유럽의 중심이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독일은 전통적으로 동유럽국가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져왔다. 한편 이러한 확장의지 뒷면에는 ‘민족국가’로서 독일의 정체성 확보라는 절실한 요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망명권 삭제 및 독일로의 이민 억제’를 주장하는 논거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치 논쟁의 또다른 한축인 ‘주도문화’ 논쟁을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는 ‘민족국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논쟁은 새로운 이민자가 아닌 이미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도문화’라는 개념은 16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기민당이 정부주도의 ‘외국인의 독일사회 통합’ 움직임에 역전의 슬로건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그리고 살고픈 외국인은 독일의 주도문화를 습득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도문화는 독일어 습득, 독일 헌법 및 나아가 로마법의 기본 지식 체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전통적인 이민국가에서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야 해결될 수 있었던 언어 문제를 ‘단기간 내의 의무적인 어학과정 참여’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단일언어를 기초로 한 ‘민족국가’에 대한 염원의 표현이다(또한 독일 정치권에서 ‘동화’(Assimilation)가 아닌 ‘통합’(Integration)이라는 단어가 커다란 비판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단일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통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독일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위의 논쟁들은 단기적으로는 좌파 정치세력을 향해 확실한 ‘정치적 장벽’을 세워놓았다.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은 기민당, 기사련의 주장에 동의하는 당내 일부를 단속하고, 반론을 마련하기에 바빠 이렇다할 고유의 외국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높은 실업률과 장기간의 경기침체가 90년대 외국인 적대감과 극우세력의 확대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연일 신문지상을 메우는 외국인에 대한 폭력과 살인, 그리고 이에 대한 방관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12월15일 ‘노숙자를 돕는 연방단체’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89년 이후 107명의 ‘독일인’ 노숙자와 알코올중독자들이 테러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203명이 상해를 입었다. 또한 1991년 이후 적어도 189명의 노숙자들이 얼어죽었다. 이들은 과거 한 독재자에 의해 ‘제국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들’로 낙인찍혔고 그 망령의 희생자가 된 것인지 모른다.
독일의 헌법격인 ‘기본법’(Grundgesetz) 146조를 펼쳐보면 “전체 독일 국민의 통일과 자유가 이루어질 때까지 유효한 이 기본법은 그 이후 독일 국민에 의한 자유로운 투표로 결정된 헌법이 성립되면 그 효력을 상실한다”라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이미 동서독이 통일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독일은 이 기본법을 새로운 헌법으로 개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은 어쩌면 동서독이 아닌 폴란드를 중심으로 동유럽에 흩어진 ‘전체 독일 국민’의 통일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나치의 만행은 “결코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nie wieder)는 슬로건은 1945년 나치에서 해방되고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의 유일한 공통분모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나고, 다시 하나가 된 국가를 이룬 지 10년이 넘어서도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immer wieder)되고 있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jskang@web.de

사진/독일통일 뒤 민족국가에 대한 열망은 더욱 깊어만 간다. 통일 당시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있는 시민들.(SYGMA)
“보트가 가득 찼다.” 이 말은 기사련이 집권하고 있는 바이에른주 내무장관 벡슈타인이 현재 독일사회가 망명자와 외국인 이민자들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쓴 표현이다. 그는 또한 지난해 2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 ‘유익한’ 외국인노동자들의 이민을 위해 ‘유익하지 않은’ 망명자들을 더이상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현 정부가 정보통신산업의 외국인노동자 취업을 위해 발급하려는 ‘그린카드’ 정책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망명권’ 삭제를 전제로 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망명권 삭제를 위한 헌법 개정. 이 요구에 연방정부 내무장관인 오토 쉴리도 지지의사를 밝히며, ‘외국인의 독일사회 통합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정치권에 망명 및 이민과 관련한 논쟁의 불을 지폈다. 정족수 3분의 2가 필요한 헌법개정은 현재의 정치구도상(이에 완고히 반대하는 녹색당, 사민당 내 좌파 분파 그리고 공산당은 의원 수 3분의 1을 훌쩍 뛰어넘는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논쟁 당사자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애초부터 불가능한 헌법개정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이들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오토 쉴리는 1998년 이민자가 무려 35만명에 이른다는 통계 수치를 바탕으로, 이는 ‘한계 수용 능력’을 초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독일을 떠나는 외국인의 수치가 빠져 있으며, 나아가 2차대전 이전부터 동유럽에 흩어져 살던 구독일인의 유입 숫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오히려 9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은 국내로의 이민자보다 해외이주자가 더 많은 나라에 속하게 된다. 또한 한해당 망명자 규모는 8천명에서 1만2천명 수준으로 이는 인구대비로 볼 때 유럽연합 내에서 하위권인 8위를 차지하며 오히려 끊임없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로부터 망명자 폭을 확대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처지이다. 또한, 내국인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불법외국인 취업규모가 10만명을 넘는다는 사실은 외국인이 독일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어 독일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독일인들이 꺼리는 많은 분야에서(특히 건설업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어, 사실상 독일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윤활유’ 역을 맡고 있다. 따라서 벡슈타인의 ‘구분법’에 따르면 이들은 ‘유용한 외국 노동력’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망명권’ 삭제를 주장하는 이면에는 ‘국가정체성’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있다. 2000년 10월, 독일은 통일 1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러냈다. 이제 베를린을 기점으로 통일독일을 전체 유럽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들이 행사 곳곳에 묻어 있었다. 지정학적으로도 서부유럽의 중심이 파리였다면 동유럽까지 확장된 유럽의 중심이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독일은 전통적으로 동유럽국가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져왔다. 한편 이러한 확장의지 뒷면에는 ‘민족국가’로서 독일의 정체성 확보라는 절실한 요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망명권 삭제 및 독일로의 이민 억제’를 주장하는 논거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치 논쟁의 또다른 한축인 ‘주도문화’ 논쟁을 살펴보면 더욱 재미있는 ‘민족국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논쟁은 새로운 이민자가 아닌 이미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도문화’라는 개념은 16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기민당이 정부주도의 ‘외국인의 독일사회 통합’ 움직임에 역전의 슬로건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그리고 살고픈 외국인은 독일의 주도문화를 습득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도문화는 독일어 습득, 독일 헌법 및 나아가 로마법의 기본 지식 체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전통적인 이민국가에서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야 해결될 수 있었던 언어 문제를 ‘단기간 내의 의무적인 어학과정 참여’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단일언어를 기초로 한 ‘민족국가’에 대한 염원의 표현이다(또한 독일 정치권에서 ‘동화’(Assimilation)가 아닌 ‘통합’(Integration)이라는 단어가 커다란 비판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단일화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에게 통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진/독일은 동유럽 국가의 가입을 통해 베를린을 유럽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9월 독일 에센에서 열린 유럽정상회의.(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