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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제국주의자여, 손을 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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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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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일본의 폐쇄적 기술이전 정책을 버리고 인도네시아의 기술개발을 성심껏 도와준다면

요즘 한국은 기아자동차가 생산한 ‘카니발’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거리에서 참 유명하다. 아직 카니발을 차고에 주차시키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이 자동차를 가지려고 난리들이다. 카니발이 인도네시아의 주요 텔레비전 채널 5개를 통해 엄청난 광고를 뿌려대는 바람에 버스의 꼬마들마저 잽싸게 추월하는 카니발을 보면 함성을 질러댈 정도다. “카니발 300대가 한꺼번에 탄중 푸리옥부두에 내리는 굉장한 걸 봤다.” 이건 오늘 회사로 오던 길에 탄 택시의 운전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하던 말이다.

‘티모르’와 ‘카니발’ 사이

카니발이 이렇게 순식간에 유명해지면서 급속히 판매되는 건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이건 대개 석달에서 여섯달 정도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었던 일본제 인도네시아 현지조립 자동차 ‘도요타 키장’이 요즘 중고차 시장뿐만 아니라 신차 판매상들의 창고에 수북이 쌓여가는 현실과 큰 대조를 이루는 일이다. 위기감을 느낀 도요타 키장의 판매상들이 하루 한대꼴로 경품을 내걸면서까지 열을 올려도 판매량이 계속 하락하고만 있는데 말이다.


따지고보면 기아자동차뿐 아니라 LG나 삼성의 전자제품들도 비슷한 추세로 일본 제품들을 따돌리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도네시아 시장을 침투하기 시작한 한국상품들이 한 5년 전부터 매우 잘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심지어, 그동안 일본인들이 인도네시아의 어린 소녀들을 고용해 술꾼들을 불러모았던 자카르타 남부 블록-엠지역의 가라오케바에서마저도 한국인이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을 정도다.

이런 최근의 분위기를 눈여겨본다면,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한국을 ‘신제국주의자’로 부르는 게 별로 틀린 말도 아닐 성싶다. 올 봄에는 ‘한국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는 일단의 청년들이 한국대사관을 공격했던 일도 있었듯이.

제국주의. 이건 정치적 지배라는 부정적인 경향성만 놓고 규정할 수는 없을 테고 필연적으로 한 사회의 시장을 다른 사회가 이의없이 지배하는 걸 포함할진데, 수하르토 독재정권 시절 기아자동차의 세피아가 인도네시아의 이른바 국민차 ‘티모르’로 요술을 부리며 침투했던 일로부터 인도네시아 시민들에게 한국은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이로부터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시민들 사이에 한국 사업가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정권과 공모해서 상품의 소비시장을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장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로 인식돼왔다. 한국 자동차가 독재정권과 공모해서 강압적으로 국민차 티모르를 영업용 택시로 팔았다는 말들이 나돌면서, 심지어 한국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친구들이 주변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였으니.

이렇게 한번 비틀어진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회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정직한 진단을 우선 내려보면서, 동시에 이런 부정적인 인상을 지우는 방법을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점도 함께 말하고 싶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정적인 인상이 짙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한국을 비교적 ‘긍정적’인 제국주의자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자. 전통적으로 착취만 해왔던 유럽과 일본의 긴 기간을 염두에 둔다면 최근에 탄생한 한국판 신제국주의는 그만큼 손을 씻기도 쉽다는 점에 착안하여.

한국으로부터 배우는 민주화투쟁

만약 한국이 인도네시아가 지닌 기본적인 자원과 능력을 통해 스스로 산업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만약 한국이 일본이나 유럽이 그랬던 것과 같은 폐쇄적인 기술이전 정책을 버리고 성심껏 인도네시아의 기술 개발을 성원해준다면? 만약 한국이 과거에 이룩했던 사회제도와 기반시설 개발을 인도네시아가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만약 한국투자가들이 수하르토 독재정권 아래 저질렀던 국민차 티모르 사업과 같은 천박한 모습들을 버리고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지닌 ‘맑은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응원해준다면? 만약 한국의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사업적 ‘안전’과 ‘성공’을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관리들을 돈으로 매수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한국에 대한 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들이 개인적인 것들보다는 주로 사업과 관련된 경제부문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전제들을 너무 일방적이다고만 받아들이지는 말길 바란다. 특히 부패와 관련해서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지닌 한국 사업가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어느 한쪽만의 잘못으로만 발생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부패와 투쟁하기 위해’라는 주제를 놓고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회의에서도 인도네시아 정부관리들의 부패가 경제회복 지연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따라서 적어도 그 반의 책임은 우리 인도네시아쪽에 있다는 공정한 입장에서 이런 가정을 세워본 것이다.

말하자면, 부패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니 다른 한쪽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국 사업가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한국 투자가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인도네시아 정부관리들과 결탁한 부패가 결국은 자신들의 생산비용을 높이는 꼴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요즘 한국상품이 아무리 인기를 누린다고는 하지만, 생산단가가 높은 한국상품은 아직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일본상품과 비교해서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너무 비관적인 말만 했지만, 한편 부패와 관련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이 난타만 당하고 있지는 않다는 분명하고도 다행스러운 소식을 말이 난 김에 덧붙인다. 인도네시아사회는 한국 시민들이 참 부지런하게 일하며 동시에 부패한 반민주정권에 맞서 빛나는 투쟁을 해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도 법 앞에는 성역이 없다”는 주제를 놓고 사회 각 부문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국으로부터 말이다.

이제 한국제품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은 누구도 감히 얕잡아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일본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저질 한국제품이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하이테크에 의존한 한국상품들이 이미 인정을 받은 상태이다. 인도네시아사회는 상투적인 유럽제품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무시해왔던 터라, 최근 제2 선발 제국주의자 일본을 구축한 한국이 차기 ‘신제국주의자’로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이들은 별로 없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초동단계의 제국주의 시점에서 한국이 오명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해보았다. 인도네시아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문을 함께 성실한 자세로 고민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에 대해 인도네시아사회가 바라는 것은 인색함 없는 기술이전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자신들이 선진기술을 이전 받아 개발을 해왔던 것처럼 지금부터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부문을 성심껏 지원해준다면 선발 제국주의자들이 받았던 불명예스런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게 이른바 ‘아시아의 가치’라는 정서를 내걸고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고, 한편으로는 신제국주의의 오명을 벗어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따져보자면, 이게 또한 한국 사업가들에게 열려 있는 지구적 규모의 시장을 탈없이 개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이건 잘못 보면 선발제국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착취의 틀을 벗어나 기왕에 제국주의 소리를 들을 바에야 좀더 ‘교묘’해져 보라는, 좀더 ‘영리’해져 보라는 충고를 하는 꼴이 되고마는 듯하지만, 진심은 산업과 교육부문의 개발에서 아시아국가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이기심으로 옭아맬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해 나가면서 아시아의 결속을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시아를 개발해보자는 뜻이다.

비무장 지대 촬영금지, 너무 웃겼다

사진/4년 전 열렸던 '티모르'신차 발표회. 이즈음부터 한국 자동차가 독재정권과 공모해 국민차 '티모르'를 영업용 택시로 팔았다는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한국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인상을 한 토막 전하면서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시민들이 지닌 혼란스런 한국관의 한 단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얼마 전 한국의 비무장 지대를 방문했을 때 일인데, 관광객이 엄격하게 사진촬영을 금지당하고 있는 사실 앞에서 한국에 대해 큰 혼란을 느꼈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너무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관광객을 불러놓고 그들의 권리인 기념사진 찍기를 방해하는 곳이 있다니?

그럴바에야 왜 관광객이 비무장 지대를 방문할 수 있게 하는지? 인도네시아 시민들 사이에 각인된 공격적인 한국인 비즈니스에 대한 인상대로라면, 한국은 차라리 세계 유일의 비무장 지대인 이곳을 더 적극적으로 개방해서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마음껏 찍으면서 긴장을 만끽하게 만들어 더 수익을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인공위성이 발자국까지 찍어대는 시대에 한국은 왜 그러고 있는지? 이미 국제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물체는 ‘보안’ 개념에서 제외된 마당에, 이 관광객이 모두 스파이로 보이는지? 인터넷에서 세계인들이 한국의 비무장 지대를 마음껏 드나드는 오늘날, 인터넷 초강국을 자부하는 현대적인 서울이 한 시간 남짓한 북쪽에 봉건사회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이런 사실을 한국인 스스로가 알고나 있는지?

이념이 다른 북쪽의 형제들을 받아들이자고 거대한 선전을 해대고 있는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참으로 기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북한이 지닌 이념적 차별성에 대해 관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국의 태도가 최근 인도네시아에도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마당에 한국에서는 정작 비이성과 비논리가 판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했던 것이다. 아직까지 공산주의 딱지가 붙은 통관서류들과 상품들이 한국 땅을 쉽게 밟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혼란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국상품들이 버젓이 공산주의든 어디든 마음껏 드나들고 있는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런지? 이미 이념과 인종 그리고 성별과 지역주의라는 조건들을 제한없이 넘나들고 있는 세계적인 상황을 생각해보면서 씁쓸한 웃음으로 한국을 떠났다. 이런 혼란스런 한국관은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사회가 지닌 기준없는 모습에서 많은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부정적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끝으로, 지금 인도네시아 시민 가운데 많은 이들이 기술과 경험을 성실하게 나누지 않는 일본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한국쪽으로 방향을 옮겨가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이제 대답은 한국쪽에 있다.

한국, 당신들은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인도네시아 시장을 난삽하게 포획하고 자원을 착취만 해갈 것인가? 물론 우리는 한국, 당신이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 당신들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경험했던 뼈아팠던 식민통치의 계절, 그건 참 아픈 경험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c) <템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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