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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독의 부엌, 베르벨 볼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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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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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광복 60주년 행사에 ‘독일 통일의 주역들’을 초청한다며, 당시 동독과 서독의 정치가나 관료였던 남자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 들었다. 몇 차례 한국에도 다녀간 그렇고 그런 인물들, 하다가 문득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몇몇 이름이 떠올랐다. 베르벨 볼라이, 그녀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악마적인 모든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걸 감각하고, 감동하고, 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던 미술사의 로자 룩셈부르크, 케테 콜비츠가 세상을 뜨고 곧 태어난 베르벨 볼라이는 올해 이순에 접어들었지만, 동베를린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마음속 스승으로 케테 콜비츠를 품고 있다고 했다.

1982년 동베를린에서 ‘평화를 위한 여성회’ 네트워크를 꾸린 베르벨 볼라이는 이후 줄곧 평화주의자의 행보를 밟았다. 이듬해 말 동독 안기부는 서독 녹색당 및 영국의 비슷한 것들과 접촉한 혐의로 ‘누추한 부엌들’을 전전하며 함께 활동한 몇몇 여성을 ‘국가기밀누설죄’로 구속하고, 특히 베르벨 볼라이에게는 일체의 해외 전시 활동을 금한다. 당시 서독 녹색운동의 잔 다르크로 주가를 올리던 페트라 켈리는 동독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를 기습 방문한 자리에서 그녀의 석방과 활동 재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추방되기도 했다.

1985년 이후 베르벨 볼라이는 여행과 집회, 의사표명의 권리를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며 ‘평화와 인권운동’의 공동위원장이 된다. 1988년 로자 룩셈부르크 살해 69주년 집회에 모인 120명의 민주인사 전원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지고, 베르벨 볼라이는 서독 녹색당 친구들의 도움으로 몸을 피해 6개월 동안 영국에서 머물다 고향으로 귀향한다. 이듬해 그녀는 전체주의 동독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요구하며 “때가 됐다”는 성명서를 작성해 연대서명에 들어가고, 순식간에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한 시민운동 ‘새 포럼’의 발기인으로 활동하면서 악명 높은 동독 안기부를 점거하고 “내 비밀문서를 내놓으라”는 활동을 벌이다가 통일을 맞는다.

통일 뒤에도 내내 동독 안기부의 만행을 조사하는 ‘과거사 특별위’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98년 독일을 떠나 전쟁의 포화 속에 잿더미가 된 마을,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해안가 스타라첼리나에 ‘불가사리’라는 이름의 예쁜 집을 짓고 여전히 분주하게 살고 있다. 코소보 분쟁으로 끔찍한 피를 흘렸던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의 부모들을 잃고 수용소에 살고 있는 전쟁 고아들이 잠시라도 편히 쉬고 뛰어놀며 슬픔을 달랠 수 있는 공간, 꿈과 희망을 되찾아 다시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다른 종교와 문화, 피부색의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 수 있는 식견과 인성을 기르는 어린이 인권학교로 이 집을 활용하며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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