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3년 전 휴식을 위한 어느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잠시 이상한 상태에 빠져든 적이 있는데, 어깨가 무거워 죽을 뻔했다. 내내 마음이 답답한 그녀, 수만 병사가 목숨을 잃은 전쟁터에 손수 쫓아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하늘색 자카드 멋진 군복을 차려입은 병사들, 그 하나하나가 목숨을 부지 못하면 3대가 눈물로 세월을 보낼 거라며 궁궐 마당의 사열대에서 나폴레옹 비슷한 차림의 장군에게 느닷없이 호령을 하고 있었다. 어이없는 웃음을 참다가 대체 어느 시공간에 빨려온 건지 궁궐의 시녀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짐이 누구인고?” “마마께서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시옵니다.”
그런 여자가 실제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기왕 맡은 역, 갈 데까지 가보기로 작정한 채 마차를 타고 시골로 가니 추수에 분주한 농민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채 “백성을 아끼는 여제 덕분에 요즘은 살기가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궁궐로 돌아와, 천재 소년의 피아노 연주에 감탄도 하고(모차르트였다!), 어깨가 다 드러난 호사스런 드레스의 여자들이 호호 깔깔 실내악에 맞춰 왈츠로 돌아가건만, 어깨가 짓눌린 마리아 테레지아는 양미간을 찌푸린 채 세상만사가 근심이었다. 바쁜 일로 새까맣게 잊고 있다 몇달 뒤 문득 기억이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봤더니, 그녀는 1717년 태어나 1740년에 왕위에 오르고 40년 동안 통치하다 1780년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로 ‘유럽의 어머니’란 별칭이 붙어 있었다. 그건 합스부르크 가문 최고의 권력자로 왕실들의 추종을 받은 까닭만은 아니었다. 학교제도를 도입하고, 고문과 사형을 금지시켰으며, 근대국가의 초석이 될 복지개념을 설정한 계몽주의 군주의 선량함 때문이었다. 더욱이 아시아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동서문화연구소의 설립도 그녀의 치적 중 하나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였던 그녀는 갑작스런 부친의 서거로 스물세살에 아무 준비 없이 왕위를 물려받고, 여성에게는 절대 왕위를 허용하지 않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남편과 아들을 차례대로 임명해 실질적 계승자 노릇을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체코를 포괄하는 영토를 다스렸지만, 프로이센은 왕위를 인정하는 대가로 슐레지엔(현재 폴란드)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전쟁을 걸어왔고, 그 밖에도 주변국과의 갈등을 감당하지 못한 탓에 많은 땅을 잃어야 했다. 18세기, 남성 중심의 엄격한 서유럽의 어느 나라 황제보다 유능하고 힘 있는 지도자였던 그녀였지만, 열여섯의 자녀를 낳고 순종적 아내 역할을 자처하며 정치에서 소외된 남편의 자존심을 세우는 노련함까지 발휘했다. 전쟁을 피하려고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성장한 자식 열 모두를 정략결혼시켜야 했던 그녀가 치러냈을 피로와 스트레스, 그 어깨를 짓누르던 중압감이 아마 내 습관 중 어느 것과 파장이 맞아 잠시 그녀의 삶 속에 빠져든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 사건 이후 나는 다시 어깨를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있거든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얼른 털어버리게 됐다.

그런 여자가 실제 있었을까? 궁금했지만 기왕 맡은 역, 갈 데까지 가보기로 작정한 채 마차를 타고 시골로 가니 추수에 분주한 농민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채 “백성을 아끼는 여제 덕분에 요즘은 살기가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궁궐로 돌아와, 천재 소년의 피아노 연주에 감탄도 하고(모차르트였다!), 어깨가 다 드러난 호사스런 드레스의 여자들이 호호 깔깔 실내악에 맞춰 왈츠로 돌아가건만, 어깨가 짓눌린 마리아 테레지아는 양미간을 찌푸린 채 세상만사가 근심이었다. 바쁜 일로 새까맣게 잊고 있다 몇달 뒤 문득 기억이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봤더니, 그녀는 1717년 태어나 1740년에 왕위에 오르고 40년 동안 통치하다 1780년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로 ‘유럽의 어머니’란 별칭이 붙어 있었다. 그건 합스부르크 가문 최고의 권력자로 왕실들의 추종을 받은 까닭만은 아니었다. 학교제도를 도입하고, 고문과 사형을 금지시켰으며, 근대국가의 초석이 될 복지개념을 설정한 계몽주의 군주의 선량함 때문이었다. 더욱이 아시아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자료들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동서문화연구소의 설립도 그녀의 치적 중 하나였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였던 그녀는 갑작스런 부친의 서거로 스물세살에 아무 준비 없이 왕위를 물려받고, 여성에게는 절대 왕위를 허용하지 않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남편과 아들을 차례대로 임명해 실질적 계승자 노릇을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체코를 포괄하는 영토를 다스렸지만, 프로이센은 왕위를 인정하는 대가로 슐레지엔(현재 폴란드)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며 전쟁을 걸어왔고, 그 밖에도 주변국과의 갈등을 감당하지 못한 탓에 많은 땅을 잃어야 했다. 18세기, 남성 중심의 엄격한 서유럽의 어느 나라 황제보다 유능하고 힘 있는 지도자였던 그녀였지만, 열여섯의 자녀를 낳고 순종적 아내 역할을 자처하며 정치에서 소외된 남편의 자존심을 세우는 노련함까지 발휘했다. 전쟁을 피하려고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해 성장한 자식 열 모두를 정략결혼시켜야 했던 그녀가 치러냈을 피로와 스트레스, 그 어깨를 짓누르던 중압감이 아마 내 습관 중 어느 것과 파장이 맞아 잠시 그녀의 삶 속에 빠져든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 사건 이후 나는 다시 어깨를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있거든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얼른 털어버리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