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찰직 포기하겠다”… 콜린 파월 중심의 부시 외교안보팀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부시 당선자는 지난 대선유세 기간중 대외정책에 대해선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외교정책에 문외한이라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 부시가 자신을 위해 일할 각료의 첫 번째로 콜린 파월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전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걸프전의 영웅’으로 불려온 인물이다. 이어 부시 당선자는 자신의 안보보좌관으로 콘돌리자 라이스를 임명했다. 이 두 사람이 지금껏 펼쳐온 색깔로서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 특히 안보정책 방향이 어떤 쪽으로 갈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강한 힘에 바탕해 미국의 국가이익을 관철시킨다는 것이다. 국가이익이란, 코소보전쟁에서 보듯이 인권옹호를 위한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과 같은 ‘추상적’인 게 아니다. 쿠웨이트의 석유가 걸린 걸프전에서 보듯, 이해관계가 뚜렷할 때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신임 안보보좌관은 “미군은 국제 911(한국의 119에 해당하는 숫자) 응급전화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잘라 말한다. 고어 후보 진영에서는 이런 태도를 “신고립주의로 가려는가”라며 비판했다.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정권이 지난 8년 동안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아프리카의 분쟁지역 소말리아를 비롯해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에 평화유지군으로 미군병력을 보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대외정책을 펼칠 전망이다.
파월 독트린 “무력 개입은 최후 수단”
콜린 파월은 장관직 수락연설에서 해외주둔 미군의 규모와 배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여기에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보스니아와 코소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철수문제도 포함된다. “우리 병력들이 너무 널리 얇게 퍼져 있다”고 파월은 주장한다. 이럴 경우 주한미군의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일본주둔 미병력을 중심으로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동아시아권 군사전략을 세울지 모른다는 분석의 소리도 들린다. 현재로서 아무것도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그저 냄새를 피우는 수준이다. 부시 정권의 대외정책을 이끌어나갈 콜린 파월이 합참의장 시절부터 일관되게 펴온 주장이 부시 정권의 대외 안보전략의 가닥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른바 ‘파월 독트린’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주장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 첫째, 무력 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여져야 한다. 외교적 그리고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분쟁을 해결하려다 끝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에 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초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과의 긴장이 높아갈 당시 콜린 파월 합동참모본부 의장(1989∼93)과 노르만 슈와츠코프 미군사령관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기보다 경제제재쪽을 선호했다(그뒤 사태 진전에 따라 적극적으로 무력 개입에 나선 두 사람은 지금도 적어도 미국민들 사이에선 ‘걸프전의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둘째, 무력 개입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 애매모호한 경우에 해외파병을 서둘러선 안 된다는 게 파월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베트남전 개입이란 쓰라린 역사적 체험이 바탕에 깔려 있다. 레바논 내전에 미 해병대를 진주시켰다가 아랍계의 폭탄테러에 혼이 난 것도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93년 10월 소말리아에서 미 해병대를 비롯한 44명이 죽임을 당한 뒤 아프리카는 클린턴 정권 때부터 이미 버려진 땅이 됐다. 이렇다할 분명한 정치적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개입한 베트남전, 그리고 평화유지군으로 출병한 레바논, 소말리아 내전에서 미군은 참담한 희생을 경험하고 물러나야 했다.
셋째, 언제 다시 병력을 철수할 것인가의 시점이 분명한 경우에 한해 무력 개입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무력 개입을 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분명히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걸프전의 경우, “쿠웨이트를 이라크군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목적이 분명했고, 따라서 목적이 이뤄진 경우 즉각 철수가 가능했다. 분쟁 당사자를 향해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또는 다른 한 당사자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과 같은 애매한 무력 개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째, 일단 무력 개입을 하기로 했다면, 엄청난 힘으로 상대를 압도해야 한다. 파월의 논리에 따르면, 그래야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짧은 기간 안에 무력 개입을 끝내고 철수할 수 있다. 점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단번에 적을 압도할 수 있는 병력과 화력을 투입해야 한다. 베트남전처럼 군사개입을 조금씩 늘려가다 끝내는 수렁에 빠져 끌려가는 형태가 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요컨대, 파월 독트린은 △분명한 목표 △여론의 지지 △분명한 철수전략 △압도적인 힘의 우위라는 네 가지 조건이 확보된 바탕 위에서만 미군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세계의 시각에서 보면?
베트남전과 걸프전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간에 파월 독트린의 뼈대를 이루는 역사적인 교훈이다. 콜린 파월의 주장은 이 두 전쟁에서 미군의 무력 개입과 관련한 두 가지 정치적 원리를 이끌어냈다. 첫째, 무력 개입은 미국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으로 걸리는 경우에 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파월은 어느 것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결정적이고 어느 것이 아닌가의 분명한 선을 긋지는 않았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판단할 몫이라는 얘기다. 무력 개입에 드는 비용에 비추어 개입 뒤 돌아올 미국의 국익이 훨씬 커야 함은 물론이다. 둘째, 무력 개입은 미국의 여론과 의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베트남전 당시 치열했던 반전데모의 쓰라린 역사적 사실에 바탕해서다.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군사개입이라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압도적인 무력사용으로 사태를 이른 시일 안에 끝내고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여론은 군사개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미국의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파월 독트린으로 볼 때 걸프전은 성공사례다. 그러나 제3세계의 시각으로 보면, 미국인들이 말하는 것만큼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라크 내 소수파인 시아파 교도들과 쿠르드족의 고난이 그러하다. 시아파 교도들은 걸프전이 끝난 직후 무장헬기를 동원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병력에 학살당했으나, 당시 이라크 접경지대에 머물던 슈와츠코프 미군사령관은 이를 못 본 채 했다. 걸프전에서 미군을 주축으로 한 서방연합군에 후세인 정권이 혼이 나는 틈을 타 이라크 북부에서 반기를 들었던 쿠르드족은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급파한 공화국수비대에 무참하게 인종청소를 당했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파월의 판단도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클린턴 정권 초기 합참의장 파월은 당시 미 공군이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해 밀로셰비치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계에 공중폭격을 하는 데 매우 반대했다. 이 때문에 당시 유엔주재 미국대사 올브라이트(현 국무장관)는 “우리가 우수한 공군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당신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라는 게 요점이 뭐냐?”고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미 공군을 포함한 나토군의 보스니아 내전 개입은 파월이 예편한 뒤 이뤄졌고, 세르비아계를 압박하는 작전은 성공을 거두어 95년 말 내전을 끝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불편한 심기
콜린 파월은 군 출신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녔다. 전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문민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 정권의 전통적인 입장에 발맞춰 ‘좀더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실패한 체제”로 규정하고, 경제제재를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라크가 무기사찰을 거부하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에 대한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라크를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80년대 말 공산권 붕괴로 양극체제가 사라진 뒤 지난 10년간 미국은 이른바 일극체제(unipolar system)를 즐겨왔다.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등 부시 정권의 대외안보정책 브레인들은 21세기에도 미국이 전세계를 쥐고 흔드는 패권(hegemony)을 행사해야 한다고 믿는 분위기다.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팀이 그리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다름 아닌 힘에 바탕한 평화, 바로 국방력 강화다. 이는 80년대 레이건 공화당 정권의 정책 그대로다. 부시의 외교안보팀은 공화당 정권의 힘에 바탕한 평화 정책이 끝내는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소연방 해체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부시는 대선유세 과정에서 “클린턴 정권 8년 동안 미국의 국방력이 약화됐고 군의 사기가 떨어졌다”는 비판을 제기해왔다. 부시가 추구하는 포괄적 미사일 방위체제(NMD) 구축은 논란거리다. 부시 당선자는 대선과정에서 지난 19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을 일부 수정, 미사일 방위체제를 재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시는 물론 파월 신임 국무장관도 강력한 미사일방위체제 옹호론자다. 그러나 협약 당사자인 러시아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 ABM조약은 지난 30년 동안 있어온 군축노력의 밑돌이다. 이 조약을 무시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에 나설 경우, 다른 군축조약들도 불안정해진다. 부시 당선자의 부친인 부시 정권이 냉전 말기에 맺은 두개의 핵무기확산금지조약들이 그러하다. 러시아가 소연방 해체, 그리고 경제사정 악화로 이미 미국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해도, 부시 정권이 러시아의 반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NMD 체제 구축에 나설 경우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를 대신하는 21세기 신흥 패권국가의 야심을 지닌 중국도 부시 정권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의 미사일방어망으로도 중국의 장거리미사일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데 왜 NMD를 구축하려는가 의아해하는 태도다. 중국은 미국과 어떠한 핵무기 제한협정도 맺고 있지 않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재구축에 자극받아 새로운 대륙간 미사일들을 생산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아온 클린턴 정권과는 달리 부시 정권은 ‘전략적 경쟁자’란 시각을 지니고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도 마땅찮은 눈길을 부시와 파월에게 보내는 중이다. 냉전시대 80년대 중반 최고조에 이르렀던 무기경쟁이 엉뚱하게 다시 벌어져 재정을 악화시킬 가능성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NMD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도 할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북한-미국간 미사일협상이 바로 이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후유증이 우리 한국에도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알려진 바처럼, 지금까지 클린턴 정권의 대북한 정책 기조는 ‘페리 보고서’였다. 페리 보고서는 북한을 포용하고 핵무기 등 위협요소를 제거하는 바탕 위에서 공존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게 뼈대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이 뼈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북한에 좀더 위압적인 정책을 펼 전망이다. 2001년 상반기까지 페리 보고서를 가름하는 새로운 정책보고서가 나올 것이란 소식도 들린다. 지난 99년 초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방차관보, 폴 월포비츠 존스 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장(전 국방차관) 등 공화당계의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아미티지 보고서’를 펴내 클린턴정권의 대북한정책에 영향을 끼치려 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대북관계에서 엄격한 상호주의를 강조하면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등에서 미국 요구를 잘 듣지 않을 경우 힘의 우위에 바탕한 강력한 제재를 촉구하고 있다. 부시 정권의 대북한정책 지침서가 될 새 보고서는 ‘아미티지 보고서’에 바탕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의 변화된 상황을 감안, 아미티지보고서를 현시점에 맞게 고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의 배후에는 군산복합체가
부시 정권이 포괄적인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를 새로 구축하려는 배후에는 군산복합체란 이름의 거대한 미 군수산업체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였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텍사스 석유업체, 담배업체, 총기제조업체들과 함께 부시에겐 주요 정치헌금자들이었다. NMD 구축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엄청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따라서 이들 군산복합체에 NMD는 천문학적인 몫돈이 걸린 중대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전면 재검토, 미사일체제 구축 등 힘의 논리에 바탕한 부시 정권의 정책 변화를 반길 나라는 거의 없을 듯하다.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정책은 대선 기간중 고어 후보가 비판했듯이 신고립주의, 신냉전주의로 비판받을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주변국가들의 의혹어린 시선을 의식해 콜린 파월을 비롯한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팀은 해외 주둔 미군철수문제는 우방과 상의한 다음에 결정될 것이라 덧붙인다. 그들은 미국이 새로운 고립주의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손을 내젓는다. 파월 신임국무의 용어를 빌리면, “특이한 미국 국제주의”(unique American internationalism)다. 용어야 어떠하든, 무게중심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가이익을 확실히 챙기는 쪽에 실려 있다. 부시 집권기간 동안 미군이 분쟁지역에 평화유지군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뉴욕=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사진/99년 6월 코소보평화유지군(KFOR)이 파괴된 자코바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부시 정권은 파월 독트린에 바탕해 해외파병을 극도로 제한할 태세다.

사진/부시는 자신을 위해 일할 각료의 첫 번째로 콜린 파월(왼쪽)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AP연합)

사진/미국의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파월 독트린으로 볼때 걸프전은 성공사례다. 당시 이라크로 출격하는 미 전투기들.(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