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독일 녹색당의 상징이던 페트라 켈리가 비운의 죽음을 맞았을 때,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는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1868∼1969)의 전기가 꽂혀 있었다. 1924년에 티베트 라싸를 찾은 최초의 서양 여성 알렉산드라는 어려서부터 어딘가로 떠나는 걸 좋아해 20대 때 인도를 시작으로 평생 구도의 여행을 계속했다. 무정부주의자, 아니 국가 권력의 폐해를 혐오하는 평화주의자였던 그녀는 파리와 브뤼셀 등에서 동양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고 인도·티베트·터키·중국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수많은 글과 책을 쓰는 한편,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며 철학적 이상을 꿈꾸었다.
고집스런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36살에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먼 길 떠나는 아내의 역마살을 이해하고 18개월로 예정된 여행이 14년으로 늘어나도 꾸준히 경비를 지원하고 평생 우정을 지켜주던 성실한 남편이었다. 요즘은 길 떠나는 여성이 많아져 ‘여성 여행’은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여성 여행사에서는 여성 전용 순례지를 개발해 안내하고 여성 전용 호텔에서는 아이를 맡아 돌봐주는 등 친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런 ‘여성의 여행’은 바로 그녀에게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호걸을 따르거나 민족의 대이동을 따라 간 여행들은 대부분 뭔가를 손에 얻기 위한 정복의 목적을 가진 것인 데 견줘, 그녀의 여행은 버리고 사는 삶의 자유와 그것의 고귀함을 깨닫는 작업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3년 넘은 사람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향수병에 걸리고 만다. 평생 나그네처럼 떠돌았던 알렉산드라는 100년 하고도 10개월을 살았으니, 80년 가까운 세월을 향수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여정 삼아 그녀가 유럽에서 아프리카, 인도에서 중국으로 헤매다 드디어 영원한 그리움의 원천, 티베트로 발길을 돌린 까닭도 이런 향수병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50대 중반 그녀는 일본을 거쳐 합천 해인사와 금강산까지 먼 길을 돌아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금단의 땅 티베트에 발을 들인다. 당시만 해도 티베트는 외부 세계와 교류가 없던 터라 10여년에 걸친 5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여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파리 센 강변에 모여 살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흥분시켰다.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은 ‘서양의 뿌리인 인도와 동양의 뿌리인 티베트’라는 식으로 요약돼 알렉산드라가 물꼬를 튼 순례의 길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행에서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변장’을 통해 나를 실험하는 행사다. 망명 중인 정치범이라고 둘러대거나 실성한 사람 노릇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탁발 순례를 나선 시골 노파 행세를 하며 3천km나 되는 길을 걸어서 여행했다. 여행 중에 간혹 장난기가 발동되면 그녀는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읊었다 한다. “직 메 날졸마 가.”(난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수행자)

고집스런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36살에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먼 길 떠나는 아내의 역마살을 이해하고 18개월로 예정된 여행이 14년으로 늘어나도 꾸준히 경비를 지원하고 평생 우정을 지켜주던 성실한 남편이었다. 요즘은 길 떠나는 여성이 많아져 ‘여성 여행’은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여성 여행사에서는 여성 전용 순례지를 개발해 안내하고 여성 전용 호텔에서는 아이를 맡아 돌봐주는 등 친절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런 ‘여성의 여행’은 바로 그녀에게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영웅호걸을 따르거나 민족의 대이동을 따라 간 여행들은 대부분 뭔가를 손에 얻기 위한 정복의 목적을 가진 것인 데 견줘, 그녀의 여행은 버리고 사는 삶의 자유와 그것의 고귀함을 깨닫는 작업이었다. 고향을 떠난 지 3년 넘은 사람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향수병에 걸리고 만다. 평생 나그네처럼 떠돌았던 알렉산드라는 100년 하고도 10개월을 살았으니, 80년 가까운 세월을 향수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여정 삼아 그녀가 유럽에서 아프리카, 인도에서 중국으로 헤매다 드디어 영원한 그리움의 원천, 티베트로 발길을 돌린 까닭도 이런 향수병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50대 중반 그녀는 일본을 거쳐 합천 해인사와 금강산까지 먼 길을 돌아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금단의 땅 티베트에 발을 들인다. 당시만 해도 티베트는 외부 세계와 교류가 없던 터라 10여년에 걸친 5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여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파리 센 강변에 모여 살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흥분시켰다.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은 ‘서양의 뿌리인 인도와 동양의 뿌리인 티베트’라는 식으로 요약돼 알렉산드라가 물꼬를 튼 순례의 길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행에서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변장’을 통해 나를 실험하는 행사다. 망명 중인 정치범이라고 둘러대거나 실성한 사람 노릇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탁발 순례를 나선 시골 노파 행세를 하며 3천km나 되는 길을 걸어서 여행했다. 여행 중에 간혹 장난기가 발동되면 그녀는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읊었다 한다. “직 메 날졸마 가.”(난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수행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