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오래전 입담 좋은 이웃 할머니한테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어린 시절 남사당패가 들어오면 마을이 얼마나 떠들썩하고 신이 났던지. 하지만 그 패거리는 워낙 짐승이나 다름없는 족속이라 아이들을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니 가까이 가면 큰일 나는 거였다고. 이들은 특히 지배층의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에서 풍속을 해치는 패륜집단으로 묘사되는데, 그야말로 불가촉천민인 동시에 요즘 말로 한류 스타의 잠재 세력이기도 했던 것 같다.
원래의 사당패는 여자들이 떼지어 다니며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매춘을 부업으로 삼는 집단에서 출발했지만, 조선 후기 남자들만의 사당패로 바뀌면서 ‘꼭두쇠’라 불리는 대장의 능력에 따라 그 규모가 수십에서 100여명의 남성 단원으로 구성된 대중문화 공연단체로 변모했으니, 그 꼭두쇠는 당연히 남자였다. 그런데 조선 최초이자 최후의 여자 꼭두쇠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우덕이다. 1848년 유럽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 혁명이 발발해 수많은 왕조가 무너지고 코뮌이 수립됐으며 바리케이드 곳곳에서 인간의 평등이 제창된 해, 레닌과 마오쩌둥, 호치민과 카스트로에서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숱한 혁명가들의 심장에 불을 놓았던 인류 역사상 가장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해, 세도정치가 극성을 떨던 조선왕조의 얼굴 없고 이름 없는 천민으로 출생한 우리들의 언니 바우덕이는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중 다섯살 때 누가 잡아갈 것도 없이 머슴이던 아비가 병이 나 남사당에 넘겨졌는데, 스님들 어깨 너머로 배운 염불을 외면 구경꾼들이 자지러지며 넘어갔다니 타고난 끼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바우덕이는 열다섯 나이에 여자로는 처음으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어 외줄을 타는 허궁잡이 인생을 살기 시작해 데뷔 3년 뒤인 1865년, 경복궁 중건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기예를 뽐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당상관 벼슬에 해당한다는 옥관자를 받을 만큼 꼭두쇠치고는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한다. 뛰어난 미모와 기량으로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끌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신기에 가까운 끼와 재능 그리고 애잔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남사당 풍물놀이는, 세월만 잘 탔으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해 장나라나 보아 정도의 몫은 너끈히 해냈을 터다. 허나 전국을 무대로 공연하며 떠돌다 스물셋 되던 해, 그녀는 폐병을 얻어 요절하고 말았다. 2000년부터 안성시에선 매해 10월 ‘남사당패’란 이름을 ‘바우덕이’로 바꿔버렸던 그녀의 예술혼을 기리는 바우덕이 축제를 열고 있다. 옛부터 흘러온 노랫가락은 애간장을 녹인다. “덕아 덕아 바우덕아, 바람에 손목 잡혀 이 세상에 왔느냐/ 길 따라 가도 편히 못 가는 인생, 어찌하여 너는 외줄을 타려 하느냐/ 청룡사 푸른 하늘 멍텅구리 구름같이, 갈 곳 없어도 남사당이 좋아/ 바람 부는 청춘아….”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원래의 사당패는 여자들이 떼지어 다니며 술자리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매춘을 부업으로 삼는 집단에서 출발했지만, 조선 후기 남자들만의 사당패로 바뀌면서 ‘꼭두쇠’라 불리는 대장의 능력에 따라 그 규모가 수십에서 100여명의 남성 단원으로 구성된 대중문화 공연단체로 변모했으니, 그 꼭두쇠는 당연히 남자였다. 그런데 조선 최초이자 최후의 여자 꼭두쇠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우덕이다. 1848년 유럽 대부분의 큰 도시에서 혁명이 발발해 수많은 왕조가 무너지고 코뮌이 수립됐으며 바리케이드 곳곳에서 인간의 평등이 제창된 해, 레닌과 마오쩌둥, 호치민과 카스트로에서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숱한 혁명가들의 심장에 불을 놓았던 인류 역사상 가장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된 해, 세도정치가 극성을 떨던 조선왕조의 얼굴 없고 이름 없는 천민으로 출생한 우리들의 언니 바우덕이는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중 다섯살 때 누가 잡아갈 것도 없이 머슴이던 아비가 병이 나 남사당에 넘겨졌는데, 스님들 어깨 너머로 배운 염불을 외면 구경꾼들이 자지러지며 넘어갔다니 타고난 끼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바우덕이는 열다섯 나이에 여자로는 처음으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어 외줄을 타는 허궁잡이 인생을 살기 시작해 데뷔 3년 뒤인 1865년, 경복궁 중건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기예를 뽐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정3품 당상관 벼슬에 해당한다는 옥관자를 받을 만큼 꼭두쇠치고는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한다. 뛰어난 미모와 기량으로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끌던 여성 꼭두쇠 바우덕이의 신기에 가까운 끼와 재능 그리고 애잔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남사당 풍물놀이는, 세월만 잘 탔으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진출해 장나라나 보아 정도의 몫은 너끈히 해냈을 터다. 허나 전국을 무대로 공연하며 떠돌다 스물셋 되던 해, 그녀는 폐병을 얻어 요절하고 말았다. 2000년부터 안성시에선 매해 10월 ‘남사당패’란 이름을 ‘바우덕이’로 바꿔버렸던 그녀의 예술혼을 기리는 바우덕이 축제를 열고 있다. 옛부터 흘러온 노랫가락은 애간장을 녹인다. “덕아 덕아 바우덕아, 바람에 손목 잡혀 이 세상에 왔느냐/ 길 따라 가도 편히 못 가는 인생, 어찌하여 너는 외줄을 타려 하느냐/ 청룡사 푸른 하늘 멍텅구리 구름같이, 갈 곳 없어도 남사당이 좋아/ 바람 부는 청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