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한국에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가 있고 미국에 <미즈>(Ms.)가 있다면, 독일엔 <에마>(Emma)가 있다. <에마>의 고향 쾰른은 그 이름부터 식민지란 뜻이다. 로마제국에서 특히 탐을 냈던 곳이다. 파리로 가는 중간기점이며 유럽공동체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도 바로 통하는 라인 강변의 요충지로, 여기서 로마제국 군사들은 원주민인 게르만 군사들과 대치하며 수시로 접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이때 생겨난 전설이 있다. 쾰른에 있는 열댓개 성채 중 ‘바이엔 탑을 점령한 자가 쾰른을 차지한다’.
현재 이 탑을 점령한 세력의 두목은 알리스 슈바르처다. 독일 여성운동의 대모이자 <에마>의 편집장인 슈바르처가 치른 숱한 전투 중 가장 혁혁한 성과를 이룬 두 전투로 일명 ‘슈테른 사건’과 ‘아주 작은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유명 여류인사 28명의 사진을 <슈테른>이라는 주간지 표지에 싣고 ‘우리는 낙태한 여자들’임을 세상에 공표한 1971년의 이 대형 스캔들을 계기로 독일 여성들은 몸에 대한 권리에 눈을 떴고, 제 몸에 대한 권리와 자의식을 확립한 여성들은 남녀관계의 새로운 이해를 구하며 가정과 사회의 부당한 관습에 대항했다. 왜곡된 인간관계의 본질을 바꾸는 시도를 통해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사회의 관행, 일상의 습관들도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차이>는 독일보다 25년 늦게 한국에도 소개됐지만, (유럽 남자들의 침대 매너를 바꿔줬다는) 소문이 퍼진 탓인지 독일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내내 이 분야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언론의 비난 혹은 찬사는 슈바르처를 스타로 띄워주었다. ‘여자의 오르가슴을 위해 싸우는 여자’ ‘행복한 가정에 파탄의 씨앗을 뿌리는 여자’ 등으로 그녀가 퍼뜨리는 성에 대한 거짓 혹은 진실에 대부분의 언론이 시비를 걸어왔다. 스웨덴에서 알제리를 거쳐 한국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의 ‘개인적 운명’이라는 것이 가부장 사회가 유도하는 ‘보편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정치적 소신을 확인시켜준 실증적 실험이기도 했다. 어느덧 이순이 넘은 슈바르처는 상업학교 출신으로 지역신문의 프리랜서를 거쳐 독일 최고의 저널리스트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자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성’답게, 그녀가 거처하는 바이엔 탑 입구에는 “‘우리 알리스’를 만나야 한다”며 초인종을 누루는 인파가 하루에도 스무명 이상 몰려와 줄을 선다. 그녀의 한 말씀이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니 어떻게든 그녀와 줄을 대려는 정치 지망생도 상당수 끼어 있다고 한다. 알리스가 지금 벌이는 전투? 가부장제 최후의 신경증으로 그녀가 진단한 포르노 산업, 왜곡된 ‘성 해방’과 상업주의가 결탁한 이 여성 학대의 최전선에서 그녀는 오늘도 여자와 남자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명의 땅을 확보하겠노라 호언하며 맹렬히 싸우고 있다.

현재 이 탑을 점령한 세력의 두목은 알리스 슈바르처다. 독일 여성운동의 대모이자 <에마>의 편집장인 슈바르처가 치른 숱한 전투 중 가장 혁혁한 성과를 이룬 두 전투로 일명 ‘슈테른 사건’과 ‘아주 작은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유명 여류인사 28명의 사진을 <슈테른>이라는 주간지 표지에 싣고 ‘우리는 낙태한 여자들’임을 세상에 공표한 1971년의 이 대형 스캔들을 계기로 독일 여성들은 몸에 대한 권리에 눈을 떴고, 제 몸에 대한 권리와 자의식을 확립한 여성들은 남녀관계의 새로운 이해를 구하며 가정과 사회의 부당한 관습에 대항했다. 왜곡된 인간관계의 본질을 바꾸는 시도를 통해 절대 바뀔 수 없을 것 같던 사회의 관행, 일상의 습관들도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차이>는 독일보다 25년 늦게 한국에도 소개됐지만, (유럽 남자들의 침대 매너를 바꿔줬다는) 소문이 퍼진 탓인지 독일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내내 이 분야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언론의 비난 혹은 찬사는 슈바르처를 스타로 띄워주었다. ‘여자의 오르가슴을 위해 싸우는 여자’ ‘행복한 가정에 파탄의 씨앗을 뿌리는 여자’ 등으로 그녀가 퍼뜨리는 성에 대한 거짓 혹은 진실에 대부분의 언론이 시비를 걸어왔다. 스웨덴에서 알제리를 거쳐 한국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여자들의 ‘개인적 운명’이라는 것이 가부장 사회가 유도하는 ‘보편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그녀의 정치적 소신을 확인시켜준 실증적 실험이기도 했다. 어느덧 이순이 넘은 슈바르처는 상업학교 출신으로 지역신문의 프리랜서를 거쳐 독일 최고의 저널리스트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자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성’답게, 그녀가 거처하는 바이엔 탑 입구에는 “‘우리 알리스’를 만나야 한다”며 초인종을 누루는 인파가 하루에도 스무명 이상 몰려와 줄을 선다. 그녀의 한 말씀이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니 어떻게든 그녀와 줄을 대려는 정치 지망생도 상당수 끼어 있다고 한다. 알리스가 지금 벌이는 전투? 가부장제 최후의 신경증으로 그녀가 진단한 포르노 산업, 왜곡된 ‘성 해방’과 상업주의가 결탁한 이 여성 학대의 최전선에서 그녀는 오늘도 여자와 남자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명의 땅을 확보하겠노라 호언하며 맹렬히 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