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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튀는 유전자’ 로 튄 매클린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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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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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근대과학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객관성’이고, 이는 절대 진리를 표방하는 근대과학이 정당성을 갖는 최고의 근거였다. 또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합해 평균치를 찾는데, 평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예외로 처리하는 통계학적 이해는 대단히 효율적인 방법론으로 통용되었고, 이들을 다시 간단한 식으로 요약하는 재주를 발휘하는 사람은 훌륭한 과학자로 추앙받았다.

평균치는 곧 보편성이 되고, 여기서 어긋나는 개체는 왕따시킨다. 여기에 딴지를 걸다 왕따당하고 30년 넘는 세월을 ‘맛이 간 여자’로 살다 1983년 생리·이화학 분야에서 여성 단독으로는 노벨상을 처음 받은 그녀의 이름은 바버라 매클린톡(1902∼92)이다.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진정으로 객관적이기 위해 ‘스스로를 잊는 연습’을 열심히 하던 매클린톡은, 학기말 시험 답안을 작성하다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객관성의 훈련’에 매진했다. 엉뚱하게도 ‘관찰하는 대상과 하나되기’의 경지에 빠져들곤 했던 그녀의 독특한 체험들은, 관찰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완전한 분리를 표방하는 근대과학적 방법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현미경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싶을 때, 분명 거기 존재하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내 안의 다른 것이 내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매클린톡은 주장했다. 그래서 먼저 내 안의 문제를 치워버리고, 다시 말해 진정으로 객관성을 확보한 뒤 다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그 미세한 존재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더라!

“너무 낯설어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 현상이라 해서 예외나 이탈 혹은 오염 정도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들이 실은 거기 담겨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중요한 비밀은 늘 그런 곳에 숨어 있어요.”

그녀의 업적은 옥수수 세포 속의 유전자 중 원래 자리를 이탈해 옮겨다니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s)에 대한 상세한 보고였다. 유전자는 중앙정보부 사령실에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며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을 내리는 존재라고 확신하던 사람들에게 “생명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스스로를 조절한다”며 시시콜콜한 사연을 늘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동안 무시하는 게 상책인 ‘미친 소리’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유전자의 ‘자리바꿈’은 모든 생명에서 벌어지는 현상임이 그녀가 작업을 완료한 지 30여년이 흐른 뒤 확인된 것이다.

평소의 누추한 차림 그대로 노벨상을 받으러 온 그녀, 평생 독신이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여든한살 할머니 매클린톡은 또 한번 ‘그녀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건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다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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