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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논개’에 침흘리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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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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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30년 넘게 한국을 떠나 살아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린 친구 하나와 여행을 하다 전북 장수에 있는 논개 사당에 들렀는데, 그는 ‘기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며, 춘향도 기생이 아니냐고 물었다. 한반도에서 보낸 유년기 동안 ‘기생 논개’라는 관습적 표현이 머릿속에 깊이 입력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논개는 우리에게 각인된 기생과는 거리가 먼, 짧은 생애 숱한 고초를 겪었던 무척 기구한 여성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논개는 선조 7년(1574)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서당 훈장인 주달문과 밀양 박씨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난봉꾼이던 작은아버지가 동네 늙은이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먹는 바람에, 기겁을 한 논개의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 잡혀와 판결을 받게 되는데, 당시 장수 부사 최경회는 사려 깊은 인물이어서 이 갈 곳조차 없는 모녀를 무죄 판결로 풀어주고 자신의 식솔처럼 거두었다고 한다. 얼마 뒤 논개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고아가 된 그는 최경회의 부임지마다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다 열일곱쯤 그의 소실이 되었다는데, 당시 최경회의 나이 쉰을 한참 넘었으니 요즘 말로 ‘원조교제’가 아닌가 싶어 잠시 심사가 어수선했다.

하지만 당시의 정국은 내 심사보다 더욱 어수선하여 곧 임진왜란이 터졌고, 최경회는 의병을 일으켜 군사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이때, 논개는 훈련장을 찾아가 의병들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등 훌륭한 남편의 ‘내조자’ 노릇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경회의 의병부대가 무주와 진주에서 수많은 왜군을 무찌른 공로로 그는 의병장에 발탁되고 경상우병사로 임명되는데, 운명의 장소가 된 진주성에 입성할 당시 논개는 열아홉, 최경회는 62살의 노년이었다.

논개가 순절한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 것은 1593년 6월19일, 진주성 주민들은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열흘을 버텼으나, 왜군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살육이 뒤따르는 형국이었다. 성을 함락한 왜군들이 승전을 자축하는 술판을 벌일 때 문득 촉석루에서 난간 아래 바위 위에 ‘가녀린’ 논개의 자태가 드러났고, 그를 범하러 달려온 왜장을 반겨 안는가 싶더니 순간 그를 껴안은 논개는 깊고 푸른 남강으로 몸을 날렸다는, 비장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는 우리 역사가 계속되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장수와 진주 두 지역에서 경쟁하듯 논개를 추모하고 그의 이미지를 문화상품의 소재로까지 넓히는 추세다. 아쉬운 점은, 논개의 캐릭터 설정과 사회문화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이 너무도 게걸스레 침을 흘리며 유교 이데올로기 속에 그를 가두고 있다는 거다. 어느덧 고운 할머니가 되신 그를 위해 거룩한 사당을 짓고, 지루하고 엄숙한 사당 안에서 남자 시인들은 어여쁜 논개 누이의 정조와 청순함을 노래한다. 오히려 조국통일을 향해 땀을 찔찔거리며 질주하던 처연한 눈빛의 임수경과 오버랩되는 그. 우리의 자매로, 우리의 언니로 논개가 돌아올 그날을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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