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전역을 휩쓴 노동총연맹의 총파업… 독재에도, 내전에도 노동자의 힘은 죽지 않았다
길거리에 한정된 택시를 잡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 소포꾸러미를 들고서 우체국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가는 가정주부, 현금인출을 시도하려다 허탕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발길을 돌리는 중년의 노신사, 배가 움직여주기만 기다리면서 여객선페리대합실을 지키는 많은 여행객들, 철제셔터가 굳게 내려진 공공기관 건물들, 적막감으로 휩싸인 철도역….
12월7일 정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중심가는 수천명의 노동자들의 구호, 노랫소리로 뒤덮였다. 데살로니카, 페트라스 등에서는 파업노동자들과 진압경찰들의 충돌로 도시전체가 최루탄가스로 뒤덮였다.
모든 것이 정지된 하루
지난 10월10일의 1차 총파업에 이은 이날 2차 총파업은 그리스 전체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약 100만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그리스노동총연맹의 호소가 공공부문과 개인부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다시 한번 그 위력을 과시했다. 버스, 지하철, 여객선, 항공기, 철도 등 대중교통은 비상수요만을 남겨놓고 모두 정지했으며 공공기관, 국립병원, 국립은행, 공립학교, 우체국, 전화, 전력, 수도 등 모든 공공서비스부문도 파업에 합류했다. 대부분의 공장노동자들도 기계를 멈추고 파업에 참가하는 바람에 하루 동안 생산이 중단되었다.
수도 아테네에서는 택시를 제외한 대중교통수단이 단절돼 시위동참이 어려웠음에도 5천명 이상의 시위대가 그리스노동총연맹본부 앞에 집결해 집회를 가진 뒤 곧이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의사당까지 2km 정도를 행진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시위 도중 노동자들은 파업지지를 호소하는 유인물을 거리 곳곳에서 배포했으며, 의사당광장에 도착한 노동자들이 정부의 노동정책을 규탄하는 연설과 반정부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이날의 총파업은 개악된 노동법의 의회통과를 저지하고 정부의 노동정책을 항의하기 위해 조직됐다.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법은 중소사업장에서 해고제한규정을 대폭 축소하고 기업주의 의사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임금도 감축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의 합법적인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주 38시간의 노동을 실행하면서 시간외 수당을 별도로 지급해왔다.
노동법 개정 문제는 IMF자문단의 그리스 방문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자문단은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서 최고인 12%의 실업률, 2004년 올림픽을 앞두고 예상되는 엄청난 지출과 국제원유가 상승으로 침체된 그리스경제를 진단하기 위해 지난 9월 중순에 그리스를 방문했다. 그 뒤 그리스 정부는 개악된 노동법안을 확정했다. 이어 11월20일 IMF자문단의 2차 방문이 있은 뒤 개악된 노동법의 의회통과를 서둘러왔다. 공개된 IMF의 문건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해고제한규정들의 축소와 정부의 사회보장지출의 축소’를 노동시장 ‘개혁’의 주내용으로 권고하고 있다.
IMF와 정부가 단지 노동조건 개악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강하게 일면서 사태는 총파업으로까지 번져갔다. 그리스노동총연맹은 정부가 의회에 상정한 노동악법 철폐, 임금삭감 없는 주 35시간 노동, 연령제한 없이 35년 노동 뒤 퇴직연금 보장, 실업기간 동안 기본임금의 80%의 실업수당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리스노동총연맹 대변인인 하로니콜라우는 “총파업은 노동조건 악화를 시도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방어적인 수단”이었다고 밝히고 “이미 총파업을 통해 정부로부터 35년 노동 뒤의 퇴직연금보장을 양보받았다”고 총파업의 성과를 설명했다.
현재 노동인구 30%의 조직률로 1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그리스노동총연맹은 1918년 그리스 북부의 중심지 데살로니카에서 유대인노동자, 그리스노동자, 터키노동자들로 조직됐다. 당시에는 소비에트혁명의 여파로 노동조합운동 자체가 정치적인 운동의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1923년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총파업이 일어나면서 123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로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어 1936년 5월 담배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계기로 총파업투쟁으로 이어졌고, 무장군인들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내전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당시 데살로니카는 사흘간 노동자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었다가 다시 정부군으로 넘어가는 혁명적인 기간을 거치기도 했다. 나치독일의 점령하에서도 그리스 노동자들은 1943년 독일군대의 징용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조직했다. 총파업 당시 독일총독부 건물에 노동자들이 들어가 징용서류를 불태우면서 나치의 징용계획은 저지된다. 그러나 이후 내전과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그리스 노동운동은 거의 초토화된다.
“한국노동운동이 힘을 준다”
그리스 노동운동이 침체에서 벗어난 계기는 군부독재 말기인 1973년 아테네산업대학 시위였다. 이 시위가 확산되자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조직하며 다시 활기찬 투쟁을 하게 된다. 1992년 운수노동자들의 8개월에 걸친 파업과 교사들의 파업, 1998년 선원들의 파업 등을 통해 노동조직의 역량을 확고히 다졌으며 올해 두 차례의 총파업을 전국적으로 조직하는 위력을 보였다.
사회주의노동당 주간지인 <노동자의 단결> 편집장인 코스타스 피타스는 현재 그리스노동운동이 고양되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들었다. 그리스 내의 전반적인 노동조건 악화, 사회민주당정권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치적인 배신감, 국제화로 인한 국제노동계급의 연대증대, 그리고 한국노동운동의 영향 등을 들었다.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언급에 놀란 필자가 재차 묻자 그는 “언론매체를 통해서 자주 전해지는 한국노동자들의 투쟁소식들이 그리스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sig@otenet.gr

(사진/12월17일 총파업중 정부의 노동정책에 항의 하여 가두행진을 벌이는 노동자들)

(사진/그리스노동총연맹본부 앞에서 총파업 집회를 벌이는 노동자들.)

(사진/1950년 카발라에서 열린 그리스 노동자들의 총파업 시위)
인터뷰/ 그리스총노동연맹(GSEE) 사무총장 야니스 마놀리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