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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글 속에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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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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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왜곡된 근대’를 풍자의 칼로 경계한 중국문학의 거인 라오서… 문화혁명기에 투신자살한 그 비극적 운명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혁명을 팽개친 문학은 죽은 것이다.” 현실을 바꾸려는 열정을 잃은 일본과 미국, 심지어 한국의 문학까지도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라는 말은 일본의 저명한 문학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최근의 충격적 선언이었다. 그 말을 필자는 약간 돌려서 표현하고 싶다. 심적 고통과 분노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문학은 애당초부터 사산된 것이다라고. 글 속의 ‘아픈 마음’이 꼭 정치적 혁명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작가는 이 현실을 막다른 골목으로 볼 수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작가는 현세 문제의 해결을 내세에서 찾으려 할 수도 있으니 모두들에게 획일적인 혁명성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쳐들어온 ‘근대’에 아버지를 잃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피가 섞여 있지 않으면 문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니체의 이야기를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반(反)이성의 안개가 짙어지기만 하는데 미국·일본 등의 중심부 국가나 그들을 따르는 추세에 있는 한국에서의 글이 갈수록 상업적이고 편하게 쓰이고 읽히니 문학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 만도 하다.

동아시아를 불시에 강타한 폭력적이면서도 매혹적인 ‘근대’에 대한 열패감, 망국에 대한 좌절과 글 아는 이로서의 자책감, 독자적 문명으로서의 조국의 미래에 대한 의문…. 근대 초기 중국·조선 작가의 많은 글에서 이와 같은 아픈 감정들이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를 감동시킨 것은 망국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는 지식인의 번민을 느낄 수 있는, 근·현대 중국 문학의 거인 라오서(老舍·1899~1966)의 ‘고양이 나라 이야기’라는 뜻의 <묘성기>(猫城記·1932)라는 풍자소설이다. 공상과학(SF)의 형식을 빌린 풍자인 만큼 묘사가 극단적으로 전개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픔이 라오서 자신의 운명과도 직결돼 있어서 그런 것일까?

라오서 그의 풍자적 작품에서 망국의 그림자를 벋어날 수 없는 지식인의 번민을 느낄 수 있다.

라오서(본명 수칭춘(舒慶春))가 태어난 바로 직후 의화단 봉기 진압의 명분으로 구미 각국·일본의 군대가 베이징에 쳐들어왔는데, 그들과의 싸움에서 만주족 출신의 군인이었던 부친이 전사했다. 침략이라는 형태의 ‘근대’는 아버지를 죽이고 형제자매가 8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을 빈한한 처지로 떨어뜨렸다. 친척의 도움으로 라오서는 어렵사리 신식 교육을 받았지만 빈민 학생을 기다린 것은 이유도 없는 체벌과 홀대였다. 그가 선생들로부터 ‘개처럼’ 맞아도 울거나 비는 일이 없었다는 죽마고우의 말로 헤아려보면 이미 그때 그의 마음은 ‘단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 것 같다.

고등사범 학교를 나온 그는 국어국문 교사 자격으로 베이징과 톈진의 학교들을 전전하고 북경교육회, 교육부에서도 일해봤지만 박봉으로 빈곤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곤란 속에서 굳어진 그의 자존심으로 관료 조직의 문화를 견디기도 어려웠다. 결국 그는 한 영국 교수의 도움으로 1924년에 런던에 건너가 런던대학교의 동방 및 아프리카 학부(SOAS)에서 1929년까지 중국어 교원 자리를 맡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제국주의 침략군의 총칼에 죽은 청나라 군인의 아들이 중국에서의 대영제국 영향력 유지·확장의 임무를 맡을 제국주의의 관료나 고등 첩자들의 교육을 맡은 것이다.

런던이나 파리, 그리고 1947년에 건너간 미국은 한편으로는 혼란기 중국 출신의 라오서를 압도했다. 이미 중국에서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이 된 그는 영국에서 디킨스(1812~70)의 소설 세계에 빠져 풍자소설 쓰기 기법을 배웠다. 그 최초 소설인 <장선생의 철학>(老張的哲學·1926)의 산실은 바로 영국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인들을 거지쯤으로 취급하는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의 인종주의적 오만은 라오서로 하여금 조국에 대한 무한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선진국’의 자만에 부딪쳐본 ‘후진국’ 지식인의 자괴감은 일본군 침략이 개시된 위기의 산동에서 쓴 <묘성기>의 주된 감성적 배경이 됐다.

왜병에게 전멸당한 고양이 나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을 때, 항일전쟁 시기에 국민당의 관할 영토에서 항일 문인 활동가로도 유명해진 라오서는 그 작품이 번역되어 잘 팔렸던 미국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좌파라기보다 자유주의적 색채의 온건 민족주의자에 가까웠던 그는 굳이 ‘적색 중국’에 돌아갈 의무가 없었지만, 조국의 ‘후진성’에 마음앓이를 해온 그로서 중국의 ‘근대화’를 담지한다는 공산당의 초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귀국 뒤에 그는 문인 세계에서 각종의 명예로운 벼슬을 가졌지만, 문화혁명이 갓 터지기 시작한 1966년 홍위병들에게 모욕을 당한 뒤 호수에 투신해 사라져버렸다. ‘집단’ 위주의 중국의 비극적인 근대화와 모욕을 참지 못하는 굳건한 ‘개인’의 자존심은 서로 화합하지 못했던 것이다.

<묘성기>, 즉 고양이 나라 이야기의 외피적인 형태는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갔다가 사고로 거기에서 남게 되어 화성의 고양이 얼굴을 가진 ‘묘인’(猫人), 즉 고양이 사람들의 나라를 탐험하게 된 한 중국인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끝에 가서 프랑스 우주선에 구조돼 지구로 귀환하지만 그가 얼마간 살았던 고양이 나라는 결국 난쟁이 나라의 ‘왜병’(矮兵)들에게 전멸을 당하고 만다. 일제 침략을 당한 중국에서 ‘왜병’이 누구를 가리켰는지 곧 짐작이 가는 만큼 <묘성기> 풍자의 대상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몽상의 나무’(迷樹)의 잎(아편의 은유)을 ‘국식’(國食)으로 삼고,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국혼’(國魂)이란 말을 화폐 단위로 정해 늘상 물건만 사고팔고, 적으로부터 도망칠 때만 아니면 빨리 움직이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군인 행세를 하고, 서로 고문해서 죽이고 성매매를 예사로 하고, ‘위생’의 ‘위’ 자도 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더러움 속에서 사는 고양이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 물론 영국이라는 ‘문명의 표준’의 프리즘을 통해서 라오서가 본 당대 중국인들이다. 그들이 이기주의와 나태, 비위생 등 각종 ‘봉건 악습’을 벗어던지지 못한다면 곧 망국이자 멸종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 근대주의적 애국자 라오서의 일차적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과연 사회진화론적 색채가 짙은 한 민족의 ‘생존 실패사’(失敗史)일 뿐일까? 물론 진화론의 ‘피라미드’상의 인류 조상 원숭이만도 못한 고양이가 중국인의 비유로 등장하는 만큼 이 소설은 ‘민족 퇴보’에 대한 한 열렬한 근대주의자의 경종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더욱 심층적 의미는 ‘근대화’에의 애국적인 호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찰력이 비상한 라오서는, 민중 각자의 자율적인 각성이 없는, 과거 지배층의 폐풍(弊風)을 그대로 답습한 왜곡된 근대를 경계하기도 한다. 예컨대, ‘다함께 나누어 먹기주의’(大家夫司基·사회주의의 패러디)를 믿는 한 패의 정치꾼들이 ‘민중 해방’의 명분으로 고양이 나라의 황제를 죽인 뒤에 과거 지배층을 도살해 그 돈을 나누어 가지고 자기 우두머리를 곧 새 황제로 추대해 민중을 과거 이상으로 억압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나, 어른의 잔혹성과 인명 경시의 풍을 배워 화풀이로 마음에 안 드는 교사를 죽여 일시적으로나마 해방감을 맛보는 학생들의 이야기 등이다. 개인과 계급 의식이 제대로 형성 안 된 사회에서의 이식된 사회주의와 혁명의 왜곡 가능성들을 이렇게 예상한 라오서가 마치 홍위병의 손에서 자신이 겪을 모욕들과 궁극적인 비극적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하다.

<묘성기>는 과연 실패작인가

라오서 자신이 <묘성기>를 실패작으로 부르곤 했다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피나는 상처투성이의 마음으로 쓴 인격 없는 사회, 폭력할 줄 모르는 자가 존경받지 않는 사회, 자유라는 말이 바로 남에게 자유롭게 횡포를 부릴 수 있는 신분을 뜻하는 사회, 친구라는 말이 곧 ‘이용 가능한 사람’을 의미하는 사회에 대한 이 풍자적 고발은 인간에 대한 평등한 인격적 대우가 아직도 머나먼 꿈으로 보이는 오늘날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라오서가 개인의 자존심이 폭력자들에게 밟히지 않을 나라를 갈망하면서 써내려간 이 소설에서, 우리가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줄 세상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 <猫城記>, - <老舍全集>, 人民文學出版社, 1999, 제2권, 143-299쪽.

- 曾廣燦, 吳懷斌, <老舍硏究資料>, 北京十月文藝出版社, 1985.

- , transl. By William A. Lyell, Ohio State University Press, 1970.

- , an abridged translation by James Dew, Center for Chinese Studies, Occasional Paper N. 3, University of Michigan, 1964.

- <루어투어 시앙쯔>(駱駝祥子), 라오서 지음, 통나무,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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