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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기 어린 직접화법, 옐리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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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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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사진/ AP연합)

대학 시절 68혁명을 경험한 전형적인 전후 세대. 작가와 노동자의 이분법을 거부한 순빨갱이. 동구의 와해 무렵까지 당적을 지켰던 공산당 당원. 극우파가 연정에 참여하자 자신의 연극이 상연되는 것을 거부했던 여자. 칸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피아니스트> 덕에 우리에게도 설핏 들어본 이름이 된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59)가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을 때, 그녀를 아는 사람 대부분은 구토를 느껴야 했다.


생물학적으로 암컷인 이상 여성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없다며 절규하고 발작을 일으키다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타협이라곤 눈곱만큼도 할 줄 모르는 편협한 그녀 앞에서 가부장제식 기품이 덜 빠진 독자들은 불편을 넘어 심한 욕지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이런 징한 여자를 두고 노벨상선정위원회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음악적 흐름과 이를 분쇄하는 역류는 통속적 억지와 허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위대함이 있다고 치켜세웠지만, 가부장 사회가 불허하는 금지구역과 적절히 허용하는 남루한 현실에 대한 극단적 묘사로 그녀는 여전히 공공의 적이다.

하지만 옐리네크가 자기 모국에서 공공의 적으로 금치산자가 된 건, 포르노에 시비를 거는 포르노적 작법의 남발 때문이 아니었다. 구역질 나는 과거사, 나치의 적통에 가까이 선 오스트리아 보수당 내부를 관통하는 끈끈한 연속성에 대한 광기 어린 직접화법 때문이었다. 역겹고 추한 여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된 것을 축하하는 일은, 그래서 무지하게 불편하고 어색한 부조리 연극을 연기하는 느낌이다.

<구토>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사르트르는 그게 워낙 싸가지 없는 상이라며 거부했다. 그의 구토가 실존과의 대면에서 올라오는 형이상학적 구토였던 데 견줘, 유명세를 치를 일이 끔찍하다며 집구석에 처박혀 단호한 목청으로 지루하게 긴 수상 소감을 녹음해 주최쪽에 보낸 옐리네크가 조장하는 구토는 비위를 뒤트는 저질 포르노, 그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 토악질이 올라오는 그런 구토다. 그래서 옐리네크의 작품은 히스테리 극렬 페미니스트의 음탕하고 변태적인 광기로 치부되지만, 그녀 자신은 누구보다 냉철하고 빈틈없는 시각으로 현실을 드러내고 분석한다고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가 선정적이야? 그걸 보고 너흰 달아오르니? 정말이야? 그런 욕망이 정말로 일어나는 거야?”

어느 쪽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야 할까? 남자의 눈, 남자의 소리, 남자의 철학으로 지은 유리의 성을 깨부수고 뛰쳐나오느라 온몸이 철철 피투성이가 돼버렸다는 그녀의 기괴한 몰골 앞에서 그녀의 주문에 따라 자꾸 구토가 일어나는 건, 낯설고 황당한 사건이다. 제 속에 똬리 튼 새 생명을 지켜내겠다고 몸이 알아서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들의 입덧과 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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