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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원주민 고통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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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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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계/ <잃어버린 아이들>

18세기 말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된 찬란한 백인문명의 뒤안길엔 200여년 동안 ‘상실의 시대’를 강요당한 원주민들의 한이 자리하고 있다. 선조로부터 내려온 땅은 물론 역사와 문화 심지어는 2세들까지도 빼앗겨온 세월이었다. 특히 ‘보호’라는 명목으로 19세기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지속된 ‘원주민 아동 격리정책’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원주민들을 이산의 아픔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후유증으로 고통받게 하고 있다. 정책적 의도는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유럽식 성장환경을 제공하자는 것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문명적 오만이 깔려 있었다. 2세 격리를 통해 원주민 문화와 생활양식의 재생산을 막고 종국적으로 백인 문화권 안으로 원주민들을 완전히 편입시키자는 것이었다.

이 정책으로 인한 이산의 고통은 차치하고서라도 백인 문화와 원주민 문화 사이에서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원주민 수가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흔히 ‘읽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또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고 불린다. 1989년에 출간된 <잃어버린 아이들>(The Lost Children)은 ‘도둑맞은 세대’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책이다. 이 책은 ‘도둑맞은 세대’에 속한 원주민 13명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육성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증언에는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야 했던 한(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던 성장기와 성인이 되어 다시 가족과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겪었던 고뇌와 갈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이들 13명의 증언이 오스트레일리아 백인 주류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한사코 부정하고 싶었던 야만의 역사가 그 추악한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열등한 문화’로부터 원주민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선진문화’에서 양육하려 한 정책이 뭐가 잘못이냐는 입장에서부터, 솔직히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보상할 건 하자는 주장까지 격렬한 논란이 이어졌다. 논란의 와중에서 ‘도둑맞은 세대’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록 1997년 연방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정부가 배상책임을 지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도둑맞은 세대’의 상처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었다.

이 책에 대한 대중적 반향은 당시 발아기에 있던 원주민 권리 찾기 운동이 단기간에 상당한 지지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도둑맞은 세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원주민 권리신장을 통한 백인과 원주민의 진정한 화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류사회는 원주민과의 화해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원주민들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존 하워드 연방총리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제기한 백인과 원주민과의 진정한 화해라는 화두는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djeo8085@mail.usyd.edu.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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