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중·고등학교 시절 한문 시간, 졸음을 확 쫓던 기분 좋은 사자성어가 ‘호연지기’였다. 현모양처 꽁꽁 여민 가슴 풀어젖히고, 치렁치렁 치마폭일랑 죽죽 찢어 빨랫줄에 걸어놓은 채 속곳 바람으로 어디든 질주해도 좋을 것 같은 시원한 깨우침이었다.
300년 전 이런 호쾌함을 제 이름으로 삼은 여자가 살았다 한다. 권력의 중심에선 좀 비껴난 사대부 명문가의 막내딸로, 인류 문명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금실 좋고 다복한 부모님과 아홉 남매에 가솔들까지 호시탐탐 어울려 시 짓고 풍류를 즐기며 한 점 거리낌이나 위축됨 없이 밝고 발랄하게 성장한 호연재(1681~1722)는 ‘마음이 넓고 태연하다’(浩然)는 당호 그대로였다. 하지만 성리학이 뿌리내리던 시기, 요즘으로 치면 수능이나 마쳤을 꽃다운 나이에 배낭여행의 꿈 대신 학연·지연·문벌을 맞춘 혼인에다 서른 넘는 노비 간수하고, 신혼 초부터 그녀 표현대로 적국(敵國·첩)을 배회하며 번번이 과거시험에는 낙방하는 서방님의 답안지를 놓고 이걸 시라고 썼느냐고 그의 짱구 대신 자기 가슴을 쥐어박자니, 이 재기발랄 호호탕탕한 안방마님, 어디 열불 터질 일이 한둘이었을까. 가부장 남성들이 가문의 여성들을 제압하기 위해 “마음이 불타듯 괴로울 때는 이를 벗 삼으라”며 작성한 규훈서의 요지는 ‘투기’에 대한 응징일 뿐이었다. 그에 견줘 호연재 스스로 작성한 수양서 ‘투기를 경계하는 장’은 “창녀와 즐기는 패륜”을 혐오하며, “지아비가 근실하게 행실을 닦으면 어찌 지어미가 투기하는 악행이 있겠는가”라고 왜곡된 현실부터 질타한다. 신혼부터 시작된 시집과의 불화와 관련해 호연재는 짐승 같은 무리에 맞서 이전투구하며 자신을 더럽히는 건 나를 기른 부모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며, ‘착한여자 병’으로 제 인생을 쪽박 내는 부당한 통념을 유쾌하게 물리친다. 한 10년 위태롭고 고단했던 시집살이에 도가 튼 호연재는 사시사철 꽃과 열매와 뿌리 골라 술 담그고, 시집 조카들의 빛나는 누님이 되어 이들을 끌고 주변 경승을 찾아다니며 시 짓고 학문을 논하길 즐겼다. 그러다 잘 익은 술맛에 취해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그만일세. 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즐겁기만 해 잠시 정을 잊었네”라는 시도 남겨두었다. 조금 앞서 사느라 애로가 많았던 그녀, 드디어 때를 만났다. 그녀의 시댁 자리였던 대덕에서는 2004년부터 ‘호연재 여성문학상’을 공모하기 시작했다. 원래 은진 송씨 집성촌으로 현재 대전시 대덕구에 편입된 송촌동 동춘당 공원에 세워진 그녀의 시비에 환한 햇살이 비춘다.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낀 별빛 맑은 샘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300년 전 이런 호쾌함을 제 이름으로 삼은 여자가 살았다 한다. 권력의 중심에선 좀 비껴난 사대부 명문가의 막내딸로, 인류 문명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금실 좋고 다복한 부모님과 아홉 남매에 가솔들까지 호시탐탐 어울려 시 짓고 풍류를 즐기며 한 점 거리낌이나 위축됨 없이 밝고 발랄하게 성장한 호연재(1681~1722)는 ‘마음이 넓고 태연하다’(浩然)는 당호 그대로였다. 하지만 성리학이 뿌리내리던 시기, 요즘으로 치면 수능이나 마쳤을 꽃다운 나이에 배낭여행의 꿈 대신 학연·지연·문벌을 맞춘 혼인에다 서른 넘는 노비 간수하고, 신혼 초부터 그녀 표현대로 적국(敵國·첩)을 배회하며 번번이 과거시험에는 낙방하는 서방님의 답안지를 놓고 이걸 시라고 썼느냐고 그의 짱구 대신 자기 가슴을 쥐어박자니, 이 재기발랄 호호탕탕한 안방마님, 어디 열불 터질 일이 한둘이었을까. 가부장 남성들이 가문의 여성들을 제압하기 위해 “마음이 불타듯 괴로울 때는 이를 벗 삼으라”며 작성한 규훈서의 요지는 ‘투기’에 대한 응징일 뿐이었다. 그에 견줘 호연재 스스로 작성한 수양서 ‘투기를 경계하는 장’은 “창녀와 즐기는 패륜”을 혐오하며, “지아비가 근실하게 행실을 닦으면 어찌 지어미가 투기하는 악행이 있겠는가”라고 왜곡된 현실부터 질타한다. 신혼부터 시작된 시집과의 불화와 관련해 호연재는 짐승 같은 무리에 맞서 이전투구하며 자신을 더럽히는 건 나를 기른 부모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며, ‘착한여자 병’으로 제 인생을 쪽박 내는 부당한 통념을 유쾌하게 물리친다. 한 10년 위태롭고 고단했던 시집살이에 도가 튼 호연재는 사시사철 꽃과 열매와 뿌리 골라 술 담그고, 시집 조카들의 빛나는 누님이 되어 이들을 끌고 주변 경승을 찾아다니며 시 짓고 학문을 논하길 즐겼다. 그러다 잘 익은 술맛에 취해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그만일세. 고요히 자리에 누웠노라니 즐겁기만 해 잠시 정을 잊었네”라는 시도 남겨두었다. 조금 앞서 사느라 애로가 많았던 그녀, 드디어 때를 만났다. 그녀의 시댁 자리였던 대덕에서는 2004년부터 ‘호연재 여성문학상’을 공모하기 시작했다. 원래 은진 송씨 집성촌으로 현재 대전시 대덕구에 편입된 송촌동 동춘당 공원에 세워진 그녀의 시비에 환한 햇살이 비춘다.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낀 별빛 맑은 샘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