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아름다운 선각자, 레이첼 카슨

542
등록 : 2005-01-06 00:00 수정 :

크게 작게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였던 레이철 카슨(1907∼64)은 오늘날 미국 어린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과학자 중 한명이며, 미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변화를 이끈 두명 중 한명으로도 꼽힌다. 다른 한명은 <톰아저씨의 오두막집>을 통해 노예제도의 실상을 알리고 자유와 박애정신을 고취한 헤리엇 엘리자베스 비처 스토다. 스토 부인이 19세기 미국의 야만과 폭력을 깨닫게 한 선각자였다면, 레이철 카슨은 20세기 미국의 치명적 모순과 오류를 밝힌 선구자다.

(사진/ Rex Features)


레이철은 얽히고설킨 자연 생태계의 섭리와 생명의 놀라운 힘을 과학자의 전문지식과 시인의 상상력을 결합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말해줬다. <바닷바람 아래서>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등은 과학교양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 특히 살충제와 생태계 파괴의 인과관계를 밝힌 <침묵의 봄>은 1962년 발간되자마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며, 이른바 문명에 대한 성찰의 기폭제가 됐다. 미국 농화학협회는 25만달러를 들여 레이철의 자료가 엉터리임을 주장하는 책자를 배포했지만, 그녀의 자료가 워낙 정확하고 빈틈이 없어 오히려 책의 판매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뒤 는 8개월 동안 이 주제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취재하고 토론에 붙인다. 레이철은 마침 심장마비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 그러나 수천만 시청자가 토론을 보며 판단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기운을 내어 녹화에 임한다. 방송에서 화학회사 연구진들은 스물여덟 차례나 레이철의 말을 막으며 억지를 부렸으나, 그녀는 해박한 지식과 부드럽고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을 해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레이철은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매사를 경쟁관계로 보는 우리 시각이 문제이다. 성숙한 눈으로 자연과 우주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문제를 깨달아야 한다.”

미국 영재교육의 대부인 조지프 렌줄리 교수는 ‘21세기의 이상적인 영재형 인간’으로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가 아닌 레이철 카슨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레이철 카슨은 자신의 영재성을 개인의 명예나 부의 축적에 쓰지 않고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사용했다. 그녀의 빈틈없는 과학지식과 시적 언어는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환경 문제를 다루는 자문위원회’를 만들게 했고, 1970년 그녀를 기리는 ‘지구의 날’이 제정됐고, 레이철 카슨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미국 환경부를 탄생시켰다.”

남이 볼 땐 좋았지만 실제 레이철의 삶은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딸의 영재성을 일찍이 발견했던 어머니의 애정과 집착에 매여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2001년 레이철이 자신보다 열살 많은 한 가정주부와 주고받은 수천통의 찐하고 가슴 아픈 연애편지가 공개돼 전세계 레즈비언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