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기획위원 franzis@hanmail.net
중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조사했는데, 교사와 간호사 말고 다른 선택을 생각하기 힘들었던 반 친구 중 절반 가까이는 ‘현모양처’라는 ‘정답’을 썼다. 개중에는 이 한몸 불태워 가정을 밝히고 싶었던지 ‘현모양초’라고 쓴 아이도 있어 선생님께 불려나갔다. 나는 좀더 멋진 답을 생각하느라 끙끙대다 ‘마술사’라 써서 제출했지만 “장난친 애”는 “맞춤법 틀린 애”와 마찬가지라며 함께 손바닥을 맞아야 했다.
세상이 바뀌어 역사 속에 묻힌 여자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2000년 가을, 독일 전역에선 지구 여성들 가슴에서 ‘그녀들’을 꺼내오는 행사가 열렸다. 가부장제 역사에서 밀려나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나는 잔다르크, 너는 포카혼타스 하는 식으로 저마다 ‘필이 꽂히는’ 인물을 택해 다시 보고 추려내는 것이었다. 2천명의 참가자가 여성의 몸과 눈으로 느끼고 궁리한 2천명의 여자를 재현하는 일종의 ‘집단 초혼제’ 같은 축제였다. 나는 누구보다 ‘만덕할망’을 모셔오고 싶었다. 만덕은 제주 기생 출신으로 자비와 구원의 여신이 된 신화적 인물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고 신하들은 실사구시의 시급함을 깨달았을 즈음, 인디오의 땅을 침탈한 백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즈음, 대영제국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으로 백성이 안 굶고 사는 법을 설파할 즈음, 우리의 만덕할망은 빛나는 기업가 정신으로 사업을 일으켜 큰돈을 모으셨지만 4년에 걸친 기근으로 굶어죽어 가던 제주도민을 구휼하느라 그걸 기꺼이 내놓으셨다고. ‘개처럼 벌어 만덕처럼 쓴다’는 속담은 거기서 유래했으니 만덕할망은 자본주의가 파국을 피하는 길을 보여주신 희망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최근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에 ‘고래소녀 만덕’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덕의 유년기 기록이 없다는 사실 덕분에 이야기는 오히려 마법에 걸린 듯 신명이 난다. 고구려 때부터 한반도 산모들은 젖도 잘 나고 몸도 빨리 추스르게 하는 미역국을 먹었는데, 그 비밀은 미역을 엄청 먹고 젖을 줄줄 뿜는 귀신 고래로부터 전수받았다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귀신 고래와 만덕의 우정으로 나래를 펼친다. 문헌에 실린 대로 객줏집 운영만으로는 그런 갑부가 될 수 없었을 터라 내 상상력의 겨드랑이엔 또 날개가 돋는다. 열한살에 고아가 되어 열일곱에 기생이 되지만 스물셋 되던 해 기적에서 이름을 지우고 양녀의 신분으로 돌아왔던 만덕은 대체 어떤 아이템으로 그 큰 재산을 만들었을까? 임금님 초청으로 한양에 올라와 현재의 남대문시장 입구 선혜청(당시 세무서)에 묵었던 동안, 이재에 밝은 만덕은 칠순이 넘은 영의정 체제공을 비롯해 스물 초반의 임상옥과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실학자들에게 시장의 원리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내 고모할머니를 통해 들은 ‘가믄장 아기’ 전설과 친구 외할머니의 만주 시절 무용담이 만덕의 삶 속에 겹친다.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누덕누덕 상상력의 조각보로 다시 태어난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차현실)
세상이 바뀌어 역사 속에 묻힌 여자들을 발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지난 2000년 가을, 독일 전역에선 지구 여성들 가슴에서 ‘그녀들’을 꺼내오는 행사가 열렸다. 가부장제 역사에서 밀려나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나는 잔다르크, 너는 포카혼타스 하는 식으로 저마다 ‘필이 꽂히는’ 인물을 택해 다시 보고 추려내는 것이었다. 2천명의 참가자가 여성의 몸과 눈으로 느끼고 궁리한 2천명의 여자를 재현하는 일종의 ‘집단 초혼제’ 같은 축제였다. 나는 누구보다 ‘만덕할망’을 모셔오고 싶었다. 만덕은 제주 기생 출신으로 자비와 구원의 여신이 된 신화적 인물이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하고 신하들은 실사구시의 시급함을 깨달았을 즈음, 인디오의 땅을 침탈한 백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즈음, 대영제국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으로 백성이 안 굶고 사는 법을 설파할 즈음, 우리의 만덕할망은 빛나는 기업가 정신으로 사업을 일으켜 큰돈을 모으셨지만 4년에 걸친 기근으로 굶어죽어 가던 제주도민을 구휼하느라 그걸 기꺼이 내놓으셨다고. ‘개처럼 벌어 만덕처럼 쓴다’는 속담은 거기서 유래했으니 만덕할망은 자본주의가 파국을 피하는 길을 보여주신 희망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나는 최근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에 ‘고래소녀 만덕’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덕의 유년기 기록이 없다는 사실 덕분에 이야기는 오히려 마법에 걸린 듯 신명이 난다. 고구려 때부터 한반도 산모들은 젖도 잘 나고 몸도 빨리 추스르게 하는 미역국을 먹었는데, 그 비밀은 미역을 엄청 먹고 젖을 줄줄 뿜는 귀신 고래로부터 전수받았다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귀신 고래와 만덕의 우정으로 나래를 펼친다. 문헌에 실린 대로 객줏집 운영만으로는 그런 갑부가 될 수 없었을 터라 내 상상력의 겨드랑이엔 또 날개가 돋는다. 열한살에 고아가 되어 열일곱에 기생이 되지만 스물셋 되던 해 기적에서 이름을 지우고 양녀의 신분으로 돌아왔던 만덕은 대체 어떤 아이템으로 그 큰 재산을 만들었을까? 임금님 초청으로 한양에 올라와 현재의 남대문시장 입구 선혜청(당시 세무서)에 묵었던 동안, 이재에 밝은 만덕은 칠순이 넘은 영의정 체제공을 비롯해 스물 초반의 임상옥과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실학자들에게 시장의 원리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내 고모할머니를 통해 들은 ‘가믄장 아기’ 전설과 친구 외할머니의 만주 시절 무용담이 만덕의 삶 속에 겹친다. 역사 속에 숨어 있던 여자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누덕누덕 상상력의 조각보로 다시 태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