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북부 팡의 반마이 마을에 자리잡은 국민당 잔당 전상자 수용소인 룽민즈자(위). 자잉왕(맨위)씨가 일생 동안 '반공 비밀작전'에 참전한 대가는 잃어버린 다리였고, 잃어버린 인생이었다. (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타이-버마 국경을 맞댄 팡(Fang)의 반마이 마을 한 구석에는 룽민즈자(榮民之家)란 간판을 단 중국식 출입문이 하나 서 있다. 이 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 300여개를 오르면 초라한 합숙소와 마주친다. 이곳에선 ‘레드 메오’ 진압작전과 ‘타이공산당’ 박멸작전에 참전했던 국민당 잔당 전상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1988년 대만 정부가 마련해준 룽민즈자에는 가족 없는 전상자 43명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알 수 없는 시간만 꼽으며 ‘그냥’ 살아가고 있다.
“리미 장군은 우리한테 대만으로 가라고 말한 적이 없어. 그저 우린 리미 장군이 가는 곳만 쫓아다녔을 뿐이야. 난 말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근데 사정이 이러니….”
윈난성 징구(景谷)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양쑹녠(楊松年·78) 룽민즈자 책임자는 한숨부터 쏟아내며 자료를 챙겨갖고 나왔다. 그 자료에는 룽민즈자를 짓기 위해 대만 정부가 350만바트(약 1억원)를 들였다는 사실과, 대만 종교자선단체(慈淸功德基金會) 기부금으로 수용자들에게 매달 1100바트(약 3만원)를 주고 있다는 기록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대만 정부는 10년쯤 전부터 아예 지원을 끊었다.”
양씨는 못내 아쉬워했다. 이는 대만 정부가 국민당 퇴역군인들에게는 계급에 따라 엄청난 돈을 지급해온 사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국민당 잔당으로 1954년 대만으로 철수한 리차오쿠이(李朝魁·73·타이베이 쭝신촌) 대령의 경우 한국 돈으로 매달 200만원쯤 되는 돈을 받고 있다. 리차오쿠이 대령과 똑같은 국민당 잔당 군인 출신으로, 본토 수복을 꿈꾸었던 대만 정부를 대신해 반공전선ㅇ르 뛰었던 룽민즈자의 전상자들은 매달 3만원을 받고 있다. 그 3만원마저도 대만 정부가 아니라 자선단체 기부금이다. 대만 정부는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혔다가 대만을 택한 본토 출신 사병 퇴역자들에게도 매달 40만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고 있다.
이게 대만 국민당 정부를 위해, 중국 본토 수복을 위해, 공산당 박멸을 위해 대만 국민당 군인들과 같은 군복을 입고 평생을 싸우다 중상을 입은 국민당 잔당들의 현실이다.
돈타령을 했지만, 사실은 룽민즈자 사람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윈난성 겅마(耿馬) 출신인 자잉왕(査英旺·60)씨는 14살 소년병으로 국민당에 참전했다. 그는 1972년 파탕의 ‘레드 메오’ 진압작전 때 낙하산 부대원으로 투입됐다가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잃고 목발에 의지한 채 룽민즈자에 살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이는 정신마저 가물가물해서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이에게 유일한 낙이라곤 타이 정부에서 받은 시민증(사실은 국민당 잔당임을 확인하는 증)을 훈장처럼 만지작거리는 일뿐이다.
피부염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윈난성 롱링(瀧陵) 출신 자오잉파(趙英發·85)씨는 알아듣기조차 힘든 가녀린 소리로 하루 종일 세상을 원망하고 있다. “리미 장군은 우리를 초대한 적이 없어. 그리고 자신은 대만으로 떠났어. 갈 수만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근데 난 시민증이 없으니….”
자오씨 같은 이들은 아예 시민증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온 무적자(無籍者)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룽민즈자에서 먹을거리나 입을거리를 눈여겨본다는 건 사치스런 일이 되고 만다. 룽민즈자에는 콧구멍만 한 콘크리트 방만 죽 만들어져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가족도 없고 돌보는 이도 없는 늙고 깨진 전사들 43명이 모여 마지막 가는 인생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누가 이들에게 냄새나는 몸뚱어리를 탓할 것이며, 누가 이들에게 지저분한 옷을 탓하겠는가.
이런 게, 대만 정부의 본토 수복 꿈을 위해 일생을 바친 국민당 잔당들의 현실이다.
이런 게, 타이 정부를 위해 반공전선에 목숨을 바친 국민당 잔당들의 인생이다.
이런 게, 미국 정부를 위해 국제 비밀전쟁에 신명을 바친 국민당 잔당들의 최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