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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동인 ‘갈증’ 달래는 위성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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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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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요르단 시가모습. 건물 곳곳에 위성수신기가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설치돼 있다)
400여명 가까운 인원이 죽어가고 3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 혼란의 와중에 요르단에서 호황을 맞이한 이들이 있다. 다름 아닌 위성수신기 설치 업소 관계자들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평년보다 7∼8배에 달하는 위성수신기가 팔려나간다고 한다. 이제는 두세집 건너 한대씩의 위성수신기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건물 옥상에는 둥근 위성수신기들이 해바라기처럼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다. 심지어 양과 염소를 모는 일부 유목민들도 위성수신기를 달고 다닐 정도이다. 이들은 천막을 옮길 때에도 위성수신기를 가지고 다닌다. 이 열기에 힘입어 동네마다 한두개 이상의 위성수신방송 기기 판매 및 설치업체들이 없는 곳이 없다. 수신안테나 리모컨, 리시버 세트 가격은 400∼500달러 안팎. 요르단 노동자들의 월 평균 급여가 250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한다면 적지 않은 비용이다. 그런데도 왜 위성수신기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요르단인들의 3분의 2 정도가 팔레스타인에 연고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점령지역 곳곳의 출입이 봉쇄되어 지금은 친지 방문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은 서안 점령지구와 가자에 두고온 친지와 가족들의 안부를 몹시 걱정하고 있다. 때문에 충돌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위성방송 시청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나 <알자지이라> 방송을 비롯한 몇개의 뉴스 전문 아랍 방송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아랍 방송들은 연일 속보를 전하고 있다.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부르는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충돌 사태를 신속히 현장 생중계를 겸하여 보도하고 있기에 소식에 목말라하는 요르단 국민들의 갈증을 덜어준다. 전문가들은 지난 10월 이스라엘 육해공군에 의한 가자와 라말라지역 대공습 과정이 아랍 방송에 생방송되면서 위성방송 수요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동지역이 ‘라마단’ 기간을 맞이하면서 위성방송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한달 동안 진행되는 라마단 기간에는 중동인들은 낮 시간에 금식을 하고 밤이면 가족, 친지들이 둘러앉아 하루의 금식을 정리하면서 때늦은 식사를 한다. 이 기간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기도 한다. 늦은 시각에 점심과 저녁을 먹는 이들이 많고, 자연스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늦어지는 데 반해 남는 시간을 활용할 별다른 대안이 없다. 이렇다할 레저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중인지라 경건한 분위기로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게 된다. 일반 방송에는 볼거리가 신통치 않지만 위성방송은 다양한 볼거리로 넘쳐난다. 남는 시간을 ‘죽이려’는 요르단인들이 위성방송 앞에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에서는 위성방송 열기의 원인으로 포르노에 대한 수요의 증가를 꼽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르단은 위성방송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10여개 안팎의 포르노 방송이 수신된다. 아랍어판 도색 채널이 운용되거나 프로그램 도중에 아랍어로 유혹하는 장면들이 들어 있다. 이들 위성방송 도색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한 비디오도 시중에 공공연히 돌고 있다. 어쨌든, 이제는 요르단에서 위성방송을 수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돼가는 분위기다.

암만=김동문 통신원yahiya@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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