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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인’으로 돌아간 국왕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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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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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재산이 아니었나… 군사쿠데타로 쫓겨난 전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누스 재산권반환소송에서 승소

(사진/96년 7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콘스탄티누스2세(왼쪽에서 두번째).)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구시대의 유령이 되살아난 것인가.”

그리스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전 그리스왕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기한 재산반환소송에서 승소해 그리스 정가와 국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 11월23일 15 대 2의 압도적 표차로 그리스 정부에 대해 전 그리스왕인 콘스탄티누스2세가 청구한 아테네 외곽과 코푸섬에 있는 두개의 집과 올림포스산 자락의 약 2300만평의 토지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만약 그리스 정부가 이를 반환하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약 14억달러의 보상을 통해 이 문제를 6개월 이내에 상호간의 동의하에 해결할 것을 명령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왕의 재산몰수는 ‘시민 누구나 자신의 소유물을 평화스럽게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인권에 관한 유럽조약의 조항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스의회는 집권사회당의 주도하에 1994년에 왕가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률을 다수결로 통과시킨 바 있다.

다음날, 그리스의 시미티스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 그리스왕의 군사독재(1967∼74)에 대한 책임을 상기시키면서 그와는 아무런 협상도 없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리스 정부대변인도 성명을 발표해 “콘스탄티누스 글릭스버그(전왕의 이름)의 요구는 정치적, 도덕적, 역사적인 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리스 정부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 치열했던 왕정복고 반대 캠페인


그러나 총리나 장관들의 논평을 살펴보면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으며 단지 전왕을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들은 재판 패소의 책임을 덮어버리고 야당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어조로 전왕을 비난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콘스탄티누스는 재판승소 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집들은 “궁전이 아니라 개인의 집이며 부모들의 묘지”임을 강조했다. 또한 ‘한 개인’으로서 가족들과 그리스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돈으로 보상을 받아 그리스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가중시키기보다는 재산을 돌려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1967년 군사쿠데타 뒤 권좌에서 축출돼 망명길에 오른 그리스왕은 군사독재가 무너진 1974년에 치러진 왕정복고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70%의 국민이 반대의사를 표시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당시 왕정복고 반대캠페인을 조직하고 국민투표의 결과를 아테네 중심가인 옴모니아광장에서 국민들에게 발표했던 그리스의 국민배우인 코스타스 카자코스는 “왕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대중적 감정은 재판판결에 분명하게 대립한다. 그리스 정부는 항상 왕가를 물질적으로 지원해왔으며 그들은 그리스에서 엄청난 양의 보물들을 외국으로 반출했다. 또한 그는 더이상 그리스국적을 가진 국민이 아니기에 재산은 국민들에게 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캠페인은 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었으며 정파를 넘어선 국민운동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당시 왕정복고 반대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7년의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하나로 뭉쳐진 민중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코스를 비롯한 예술인들은 국민투표가 있기 한달 전부터 아테네로 버스를 대절해 매일 아침 시골로 캠페인을 나섰다. 유명한 인기배우들을 두명씩 한 그룹에 배치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많은 시골사람들이 왕을 여전히 원하고 있다는 데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었다”면서 한번은 어느 시골의 정육점주인이 칼을 휘둘러대면서 “왕을 욕하면 죽이겠다”는 위협을 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음험한 ‘향수’

(사진/지금은 의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왕의 궁전)
1828년 터키의 오토만제국에 대한 민중봉기로 그리스가 독립을 이룩하자마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왕실들은 오스트리아 출생의 독일왕자를 그리스의 국왕으로 책봉하고 그리스를 왕정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그뒤 약 100년을 그리스 국민들은 전제군주치하에서 신음해야 했다. 그리스의 내전(1974∼51)이 끝나고 좌파가 완전히 무력해졌다고 믿었던 왕당파는 1958년 총선에서 좌파가 4분의 1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데 충격을 받고 온갖 탄압을 자행하고 쿠데타를 준비하게 된다. 당시 유럽의 이익을 대변하던 왕실은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그리스의 청년지도자 람버라키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었으며, 이른바 ‘장군’들의 쿠데타로 알려진 친위쿠데타를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CIA가 이른바 ‘대령들의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었다. 왕권강화를 위해 친위쿠데타를 준비하던 왕실은 선수를 친 ‘대령’들의 쿠데타에 밀려나게 된다. 대령들의 쿠데타가 성공한 뒤 그리스왕실은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나야 했고 다시 영국으로 정착지를 옮겼다. 당시 민중을 탄압하면서 왕권의 강화만을 도모했던 그리스왕실은 지금에 와서는 군부독재에 대항해 투쟁했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그의 선왕들과 마찬가지로 단 한 방울의 그리스인의 피도 섞이지 않은 콘스탄티누스2세는 재산분쟁의 승소로 그리스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그리스 국민들을 찬반양론으로 몰아가면서 그의 건재함을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 가족들과 함께 그리스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그를 단지 ‘한 사람의 개인’이라고 믿는 그리스 국민은 아무도 없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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