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을 탐독한 박정희의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나는 위로는 황천(皇天)이 내려준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평소에 독서한 바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길이 잠들고자 하니 진실로 통쾌하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지식인의 모범을 보여준 황현(黃玹·1855~1910)은 유언장에서 죽는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보편적 도덕의 표현인 ‘황천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그에게 ‘평소에 독서한 바’가 죽을 이유로 기능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나’를 만드는 여러 요소 중에서 특히 젊은 시절의 독서 경험이 그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지사들에게는 어릴 때 읽었던 바가 죽어도 한이 없는 ‘아름다움’이 되는가 하면, 정치인에게 ‘교과서’ 격의 독서는 앞으로의 행동 지침이 되기도 한다.
박정희는 청년시절 무슨 책을 읽었나
임금을 억류하여 정적을 도살하는 식의 정변의 전통이 전무한 조선에서 김옥균 등 ‘일본당’의 메이지유신이라는 선행(先行) 쿠데타에 대한 독서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갑신정변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김일성이 어릴 때 즐겨 읽었던 영웅 사관 위주의 민족주의적 저서나 1927년에 길림에서 들었던 “애국의 힘으로, 교육의 힘으로, 민족의 실력을 키우자!”는 안창호의 강연은 그로 하여금 ‘정통’ 사회주의와 상당히 다른 ‘영웅 중의 영웅’인 수령 지도하의 초강경형 민족국가 건립 노선으로 가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다. 다른 사회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지만, 전통적으로 개성의 형성 요소로서의 독서에 중점을 두는 동아시아권에서는 어떤 정치인에 대한 ‘깊이 읽기’는 그의 청년 시절 독서 경험부터 시작해도 좋을 정도다.
우리에게 현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면서도 ‘깊이 읽기’가 제대로 안 된 정치인 중의 하나는 박정희다. ‘공주님’을 지도자로 내세우고 박정희를 역사의 ‘정통’으로 보는 수구세력은 물론이거니와 박정희의 개발지상주의적 야망을 방불케 하는 ‘2만달러 시대론’이나 박정희 식의 민중에의 일방적 희생 강요를 연상케 하는 파견 근로 전 업종 확대 등을 주장하는 집권 여당세력도 아직은 ‘수출 전투’ ‘조국 근대화’ 시대의 그늘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너져가는 민중의 생계에 대한 우려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의 머리에서 박정희 식의 ‘국가 경쟁력’ 주술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재해석됐을 뿐이다.
지배층은 지배층대로 박정희의 ‘성공’을 선망하고 강남 귀족의 전성시대인 오늘에 비해 신분 상승의 가능성이 있었던 성장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피지배층은 피지배층대로 박정희를 가장 나은 대통령으로 보는 나라에서, 박정희의 ‘자아’가 어떤 독서 경험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질문해볼 여지가 있다. 젊은 시절 박정희의 숭배 대상을 안다면 그를 지금도 숭배하는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학교 시절에는 일본인 교육으로 일본 역사에 나오는 위인들을 좋아했고, 5학년 때는 춘원이 쓴 책을 읽고 이순신을 숭배하게 되었으며, 6학년 때는 나폴레옹 전기를 읽고 숭배하게 되었음.”(박정희, <나의 소년 시절>)
나폴레옹이나 히틀러와 같은 유럽의 원조 국가주의·군국주의의 아이콘에 대한 박정희의 숭배나 “오로지 상전에 대한 충성”만을 바친 일본 교과서의 ‘충실한 사무라이’의 이상화 등은 1960년대 이후 남한의 병영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광수가 소설 <이순신>(1931~32)에서 그려낸 ‘성웅(聖雄) 이순신’이 조선의 문화적 이미지들 중 박정희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광수가 그린 ‘최악의 조선’
근대 초기에 전통적인 ‘충군(忠君)의 의인(義人)’에서 ‘영국의 넬슨을 능가하는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재해석된 이순신이야말로 한국적 근대의 지속적이면서도 늘 시대에 따라서 변해갈 수 있는 상징이다. 구한말·일제 초기의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김형직 (1894~1926)이나 그의 아들 김일성이 읽었을 법한 신채호의 <이순신전(傳)>(1908)의 이순신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기를 바랄 뿐인 완벽한 애국자”로 나타나는가 하면,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소비하는 김훈의 <칼의 노래>(2001)의 이순신은 폭력만이 유의미한 허무한 세계에서 죽이고 죽는 역할을 겁 없이 잘 수행하면서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 ‘용기와 환멸의 영웅’이기도 하다. 초기 민족주의다운 ‘국가적 충성’에의 강조부터 생산·소비의 순환에 이미 식상할 만한 후기 자본주의다운 “허무한 세상에서 강력한 남성으로서 홀로서기”까지…. 이 두 이미지가 서로 다른 만큼 그 소비 주체인 사회도 기나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면 그 중간 시점에 해당되는 젊은 박정희의 아이콘 이순신은 과연 어떻게 서술된 것일까?
<이순신>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이 소설이 작가의 머릿속의 이분법적 구조에 문학적 서술의 ‘살’을 붙임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이순신의 인기를 의식한 이광수의 붓이 만들어낸 16세기의 조선은 한 점의 빛이 안 보이는 지옥 같다. 왜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울며불며 엎어지고 자빠지고’ 도망 다니는 비겁한 백성, 적군 조총의 위력에 ‘울고불고 두 팔 들고 땅바닥에 앉아 맞아죽기만 하는’ 육군, ‘어리석고 당파싸움만 할 줄 아는’ 관료들…. ‘산에서 한 포기의 나무조차 안 나고 강에서 물이 마르고 백성이 어리석고 가난한’ 이광수의 ‘조선’은 단순히 열등한 후진국이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가리키는 표상이다. 불가치병 환자인 조선인들을 구출하려다 죽은 완벽한 인격자 이순신은 바로 이 소설의 유일하다 싶은 긍정적 주인공이다. 일체 조선인들이 사리사욕과 나태와 비겁함에 빠진 반면, ‘국가의 경절(명절)’이 아니면 풍악을 가까이하지 않을 정도로 멸사봉공에 투철한 ‘성웅’의 비장한 연설을 듣는 이마다 ‘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은 쭈뼛쭈뼛 하늘을 가리킬’ 지경이었다.
선과 악, 속(俗)과 성(聖)의 극단적 대립은 소설 전개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시기심과 당파심밖에 없는 무력한 관리들과는 달리 이순신은 ‘의지할 것 없는 백성’에게 부모 이상의 구심점이 된다. 그의 교화는 ‘자기 희생적 애국심’에도 있지만 이광수를 압도한 ‘내가 남을 쏘아 죽여도 남이 나를 쏘아 죽일 수 없는’ 거북선이라는 근대적 기술에도 있다.
약자에 대한 멸시적 시선의 뿌리
백성을 구휼해주고 왜인에게 잡힌 백성을 풀어주고 전쟁 고아를 맡겨 기르게 하는 만능의 지도자 이순신과 백성의 관계를 보면, 이광수 자신이 ‘애국적이며 계몽적인’ 부르주아·지식인들의 ‘중추계급’과 우둔한 백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성인(聖人) 이순신과 우매한 조선의 관계만큼이나 이광수 등의 ‘지도자’와 밑의 수백만명의 ‘피지도자’의 관계는 철저하게 일방적인 시혜와 수혜, 계몽과 학습의 관계였다. 서술의 이분법은 수직성과 강제성, 지도·복종의 절대성으로 이어졌다.
‘민족의 구세주’를 자임한 식민지 예속 부르주아들의 이 문학적 선언을 박정희는 과연 어떻게 학습했는가? 이광수의 구호 ‘민족개조’를 박정희가 ‘인간개조, 인간혁명’이라고 고쳐 불렀지만, ‘성웅’의 정신을 이어받은 지도자가 우둔한 민초들을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은 이광수의 이념과 별 차이 없었다. 개조 방법도 애국적인 역사 이야기와 전쟁, 스포츠를 신성시했던 이광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책 과목으로서 국방 사관 위주의 국사, 예비군과 교련, 그리고 조기 축구나 태권도, 유도의 보급은 다 같이 비겁하고 나태하고 비애국적인 전(前)자본주의적 조선인을 생산·폭력 능력을 갖춘 자본주의적 주체로 ‘개조’하는 데 필요했던 것이다.
이광수·박정희 식의 지도자 숭배나 우민관(愚民觀) 등 초기 근대적 발상들은 젊은 세대에게 이미 과거형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순신이나 박정희가 아직도 흠모 대상으로 남아 있는 나라는 이광수·박정희의 이상형인 강자·승자의 상(像)을 결코 탈피하지 않았다. 미국 몇 군데의 명문대에 복수 입학한 학생이든 국제경기의 우승자든 경쟁에서 이긴 승자는 여전히 거의 전국민적으로 선망된다. 반면 경쟁력 없는 약자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열등한’ 조선민족에 대한 이광수의 시선만큼이나 멸시적이다. 이광수·박정희의 힘과 경쟁력이 아닌 정의와 인권, 각자의 희망대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우리에게 일차적인 가치가 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1963년 현충사 충무공 영정 앞에서 연설 중인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그가 춘원 이광수(오른쪽)를 통해 읽은 <이순신>은 그의 정신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 / 연합)

성인(聖人) 이순신과 우매한 조선의 관계만큼이나 이광수 등의 ‘지도자’와 수백만명의 ‘피지도자’와의 관계는 철저히 일방적인 시혜와 수혜, 계몽과 학습의 관계였다. 한국방송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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