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투에서 우리가 밀려나긴 했지만, 버마 정부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냈어.” 항?쥔샤오(黃?軍校) 18기 출신으로 국민당 제93사단 소속이었던 천마오슈(87·타이 북부 치앙마이 거주) 대령의 증언처럼, 버마 공보부가 1953년 발행한 <국민당의 버마 침략>이라는 기록문서를 뒤져보면 실제로 버마 정부군은 켕퉁 지역에서 작전 지휘용 비행기가 추락해 공군 사령관 셀윈을 비롯한 최고위급 군 지휘관까지 잃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음이 드러난다.
한편, 그 무렵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장을 염려하던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게 1950년 초부터 합동참모본부(JSC)는 버마 국경지대에 퍼져 있는 국민당 잔당을 지원하는 특수 비밀작전 실행을 건의했다.
“그 계획은 그때까지 CIA가 실행한 비밀작전 가운데 최고단위 기밀로 취급했던 탓에 합동참모본부나 CIA는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또 그 비밀작전은 랭군 주재 미국대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방부 고위관리와 심지어 CIA 정보부 국장마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완벽한 암흑 속에서 진행했다”고 데이비드 와이즈와 토머스 로스는 <눈에 띄지 않는 정부>(The Invisible Government·1963)라는 책에서 밝힌 바 있다.
국민당 본부가 있던 몽삿에서 CIA 요원들과 함께 한 국민당반공구국군 총사령관 리미장군(왼족 사진. 왼쪽서 두 번째). 이 사진은 CIA의 대 버마 비밀작전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몽삿에 도착한 타이완 정부의 수송기. 대만 정부의 국민당 잔당 지원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중국-인도차이나반도-타이-버마-티베트를 잇는 반공 전략 요충지로 버마를 주목한 트루먼 정부는 국민당 잔당을 중국공산당의 확장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파제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에 따라 트루먼은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해온 프랑스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미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버마 국경지대로 쫓겨난 국민당 잔당들을 재조직하기 시작했다. 트루먼이 CIA를 통해 비밀작전을 명령했던 까닭은 중국공산당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속셈이었다. 트루먼은 1945년 집권하면서부터 장제스의 국민당이 중국공산당에 쫓겨 패퇴하는 과정을 놀란 눈으로 지켜봐왔던 인물이다.
“CIA 요원들이 직접 몽삿까지 날아와서 무기를 제공했고, 또 대만에서 온 군사 교관들이 우릴 훈련했어. 그이들 지원을 받아 리미 장군은 국경에서 새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휘하에 4천여명을 거느리게 됐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뺌하던 레이위톈 장군은 세 번째 만남에서 결국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국민당 잔당은 그 무렵 몽삿에 군사훈련소까지 건설한 CIA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갑자기’ 버마 정부군과 맞설 만한 무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CIA의 대국민당 잔당 지원을 위한 비밀작전은 1년 남짓 지난 1951년 초, 마침내 버마 정부로부터 의심받기 시작했다. 버마 정보요원들이 정체불명의 C-46과 C-47 수송기가 국민당 잔당 본부인 몽삿에 전략물자를 공수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부터였다. 그로부터 국민당 잔당을 낀 버마 정부와 미국 정부 사이에는 국제적인 긴장이 일기 시작했고, 우누 총리는 ‘국민당 사안’을 유엔으로 끌고 가 미국을 성토했다.
그렇게 CIA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 잔당들의 대버마 비밀전쟁에는 ‘마약의 정치경제학’이 숨어 있었다. 반공을 내건 국민당이 인민해방군에 쫓겨나면서 비록 ‘이념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버마 국경을 넘어온 국민당 잔당들은 CIA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라오스·버마·타이 국경지대를 끼고 벌어진 ‘마약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다졌다.
국민당 잔당들은 CIA가 지원한 무기와 병력으로 버마 국경지대 소수 산악민족들을 협박해 1950년 초부터 아편 생산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그리고 소수민족들이 생산한 아편에서 세금을 뜯어내고 운반을 대행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해나갔다. 국민당 잔당이 CIA 수송장비들을 이용해 몽삿에서 타이 북부 치앙마이를 거쳐 방콕까지 실어나른 마약은 다시 CIA 끄나풀이자 타이 정치를 주물렀던 실권자인 경찰 총수 파오 스리야논다 장군의 보호 아래 홍콩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팔려나갔다.
골든 트라이앵글에서의 마약사업
그 과정에서 CIA는 자신들이 앞세운 ‘사우스 이스트 아시아 서플라이스’(South East Asia Supplies Corporation)를 통해 파오 스리야논다 장군에게 대규모 무기를 제공해 해양경찰과 경찰항공대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신 그이가 국민당 잔당의 ‘마약사업’을 돕도록 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연간 60t에 지나지 않던 인도차이나의 전체 아편 생산량이 베트남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무려 1천톤을 넘었고,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가 되었다. 타이는 세계 최대 마약 중계시장으로 떠올랐고. 말하자면,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던 1950년대 ‘국제반공전선’과 ‘국제마약시장’은 CIA의 지원을 받으면서 함께 자라난 쌍둥이었던 셈이다.
몽삿의 국민당 반공대학(왼쪽). 국민당 소속 여군. 국민당 잔당은 여성들을 정보원으로 중국 내부에 투입하기도 했다.
“우린 그런 거 손댄 적 없어, 절대로 없어!” 그러나 국민당 잔당과 관계 있는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마약’에 대한 이야기만은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다. 남녀든 노소든 누구든 마약 ‘마’자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친다.
“리원환 장군도 돤시원 장군도 모두 마약에 손대는 이들을 처벌할 정도로 엄격했는데, 무슨 그런 소릴!” 2004년 2월1일 완공한 도이 매살롱의 태북의민문사관(泰北義民文史館)이라는 국민당 기념관에서 안내자로 근무해온 자오셴짠씨는 마약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발끈했다.
물론, 아편 이권을 놓고 국민당 잔당이 둘로 갈라져 돤시원 장군이 이끄는 제5군 소속 1800여명은 도이 매살롱에, 그리고 리원환 장군이 이끄는 제3군 소속 1400여명은 탐 응옵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깊숙한 내막을 물어본들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더욱이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으며 400여명에 이르는 제1독립부대 스파이를 거느리고 그 두 장군 사이를 중재했던 정보부대장 마쥔궈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그렇게 둘로 쪼개졌던 국민당 잔당들은 샨주에서 새로운 마약 군벌로 떠오른 이른바 ‘마약왕’ 쿤사와 골든 트라이앵글 패권을 놓고 겨룬 1967년 ‘마약전쟁’ 기간 동안 다시 연합했다. 그 전쟁을 통해 쿤사의 협박은 수그러들었고, 국민당 잔당들은 여전히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를 낀 마약 생산과 거래의 90%를 독점해나갈 수 있었다.
‘반공구국전선’ 구호를 외쳤지만, 결국은 ‘마약패권전선’의 깃발 아래 국경 전선을 달렸던 국민당 잔당은 1950년대 내내 버마 정부군과 비밀전쟁을 벌였고, 이어 1960년대 베트남전쟁 기간 동안에는 미국의 용병으로 대라오스 비밀전쟁(Secret War)에 참전했다. 그리고 다시 1970~80년대에는 타이 정부의 대공산당(CPT) 박멸작전에 비밀리에 투입되면서 냉전 기간을 통틀어 이 세상에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길고 지루한 ‘비밀반공전선’을 달린 끝에 도이 매살롱에 정착했다.
반공구국전선, 마약패권전선
그러나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평생을 전선에서 보낸 전사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든지, 이제 도이 매살롱에는 어제의 용사들이 한물가고 그 3세들이 빼곡이 메워가고 있다.
현재 버마와 국경을 이룬 타이 북부 도이 매살롱, 팡, 매홍손 지역 그리고 라오스와 국경을 이룬 파탕에는 국민당 잔당으로 평생 전쟁터를 오갔던 이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런 국민당 잔당 출신 ‘반공용사’들과 그 후손 5만7천여명이 살고 있는 54개 마을을 타이 사람들은 흔히 국민당 약자를 따 ‘KMT 마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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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Generalissimo. Chiang Kai-Shek and the China he lost〉Jonathan Fenby ●〈The Opium Empire〉John M. Jennings ●〈Burma in Revolt〉Berltil Lintner ●〈The Politics of Heroin in Southeast Asia〉 Alfred W. McCoy ●〈China Hands〉James Lilley ●〈The Invisible Government〉 David Wise & Thomas B. Ross ●〈Kuomintang Aggression Against Burma〉 Ministry of Information, Government of the Union of Burma ● <國民黨興哀史> 蔣永敬 ●<李彌部隊退入緬甸期間(1950∼1954)> 覃怡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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